팡은 지난 1년 동안 서른세살의 남자 ‘조태기’로 살았으며 연봉 5000만원대 아이티 중소기업 회사 팀장 역할에 걸맞은 말투를 썼다. 그는 협심증 환자였다. 아무에게도 협심증이 있다는 것을 말하지 않았지만 대개의 사람들은 그가 어떻게 사는지도 별로 궁금해하지 않았다.

팡은 얼마 전까지 국시원(한국보건의료인 국가시험원) 알바생이었다. 의사고시의 일부, 즉 예비의사들의 실기시험 상대가 되어주는 일을 한 것이다. 한마디로 가짜 환자 역할이다. 이 알바는 어떤 아르바이트보다 시급이 높고 일단 시작하면 몇 년간 지속적으로 할 수 있는 일이라서 일명 ‘뚬바’(고직종 아르바이트를 잘 찾아내는 사람들을 일컬음)들에겐 상당한 매물로 취급받는다. 이 일을 천직으로 여기는 사람들도 있다. 원래 직업이 연극배우도 있고 성악가도 있지만 전세계 어느 매장에 가서도 일을 구할 수 있는 맥도널드 아르바이트처럼 쉽게(?) 취급받긴 싫다는 것이다. 인원을 뽑는 수가 워낙 적고(매년 초 1년에 한번만 정식절차를 통해 뽑는다) 대부분 유경험자에게 다시 돌아가기 때문에 물어오기가 녹록지 않다.

팡은 꽉 물었다. 단기 직종에서 나름 산전수전 겪은 자부심이 그에게 한턱 쏘았는지 팡은 한번의 오디션으로 통과했다. 몇 가지 까다로운 입문 절차 같은 것이 필요한데, 첫째, 자신이 어떤 환자가 될지 선택할 수 없다. 나이도 이름도 주어질 병(학명)의 상태도 선택불능이다. 면접을 통해 파악된 포괄적인 데이터에 근거해 저쪽에서 필요한 샘플에 맞추어지는 것이다. 일테면 경상도 사투리, 큰 콧구멍, 30대 중반 중소기업 간부, 협심증이 필요하면 거기에 적합한 ‘샘플’이 뽑히는 식이다. 주어진 시나리오(한 의학적 병인 상태에 해당하는 다양한 임상데이터)의 항목들을 완전히 숙지하고 묻는 것에 정확히 대답해야 하기 때문이다. “치질 때문에 요즘 많이 괴로우시죠?”라고 물었는데 진짜 경험에 해당하는 답인 “네”로 해버리거나 “가슴이 많이 시리고 외롭습니다”라고 답하면 ‘나가리’다. 반대로 “언제부터 조루증이 시작되었죠?”라고 물어도 “저는 심장이 벌렁벌렁하다구요”라고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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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기수업을 받는 기분도 들지만 일년 내내 같은 연기를 해내야 하는 지루함도 있다. 물론 가끔 어리바리한 학생의사가 예상 질문과 다른 것을 물어올 때도 있다. “저기요, 지금 그렇게 물으면 당신 위험한데?”라고 말해줄 수도 없다. 그런 경우 학생은 바깥의 카메라에 의해 감점처리된다. 예비의사들은 자신 앞에 있는 사람들이 진짜 환자라고 믿으니까. 예비의사도 가짜 환자도 떨어지면 추후 생계가 막막해지는 필사각오다. 팡은 수많은 예비의사들 앞에서 ‘씨팔! 우린 결코 다시 만나서는 안 되는 관계를 잘 맺어야 합니다’라고 다짐한다. 뭐, 나중에 병상에서 진짜 환자와 의사로 만날 수는 있겠지만, 그때 서로의 상태가 어떨지는 두고 봐야 할 테니까. 팡은 1년 동안 두 종류의 삶을 살아갔다. 내년엔 아예 스파이 알바가 없나 찾아볼 생각도 있다. 하지만 영문도 모른 채 가슴이 아픈 스파이라면 거절할 생각이다.

김경주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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