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리는 불량배들’
달리는 불량배들’

작곡가 모자는 다락방에 산다. 성북동 달동네에 다락방 하나를 얻어 살면서 음악을 작곡한다. 주인은 3층에 세들어 사는 그가 무엇을 하는지 잘 모른다. 며칠 동안 방 안에서 인기척이 들리지 않으면 늙은 주인은 계단을 타고 올라와 다락방에 귀를 대어본다. 연필 깎는 소리가 사각사각 들리고 북북, 지우개 움직이는 소리만 들린다. 주인은 새로 이사 온 그가 밤마다 방 안에서 하는 짓이 사람을 토막내기 위해 톱으로 썰고 있는 것만 아니라면 상관없다는 듯이 흐뭇해한다. 월세가 밀리면 그때 가서 몰래 보조 열쇠를 들고 방 안을 열어보아도 되니까.

모자는 현대음악을 전공했고 외국에서 10여년 동안 작곡을 공부하고 돌아왔다. 그가 만드는 음악은 난해하고 음울하다. 사람들은 그의 음악을 이해하기 힘들어한다. 모자는 다락방의 피아노에 앉아 밤마다 연필로 수많은 음표들을 그리며 지우는 일로 밤을 지새우는 사람이다. 그의 재산은 연필 몇 자루, 지우개 두 개, 낡은 피아노 한 대뿐이다. 모자는 어느 날 일기에 자신은 현재 ‘다락방에 세들어 사는 새’라고 써 두었다. 다락방의 새는 야위어 간다. 모자는 음악을 만드는 일은 하나의 자연을 만드는 일이라고 믿는다. 그가 만들고자 하는 음악이 무슨 종류의 음악인지 어떤 종류의 소리인지 궁금한 사람들을 위해서라도 끊임없이 자신은 은밀한 음악을 만들어 가겠다는 듯이 그는 고집스럽다. ‘아직 아무도 시도하지 않은 음악입니다. 꽤 오래 걸리죠’ ‘그러니까 제가 이번 음악극에서 시도하고 싶은 느낌은 어느 날 우연히 발견한 몇 백년 된 연애편지의 뒷부분을 다시 써보는 심정 같은 겁니다.’

그는 주당 30시간이 넘는 대학 시간강사로 산다. 그는 제대로 연애를 해본 적이 없는 사람이다. 자신의 음악에 구애를 하는 듯이 보이지만 자신의 음악을 한번도 만나본 적이 없는 것처럼, 쓸쓸해 보인다. 어느 날 모자는 비 오는 날 산책을 나간다. 그는 비 오는 날 오히려 산책하기를 좋아한다. 사람들이 우산으로 자신의 눈을 가리고 다니기 때문에 좋다는 것이다. 공원 벤치에 앉아 200원짜리 자판기 코코아를 마시며 자신이 며칠 전까지 끙끙거린 음률들을 떠올린다. 책상에 펼쳐 두고 온 악보를 상상하며 머릿속에 자신이 만들고 있는 그 자연을 초대하려는 듯이 입술을 움직여본다. 휘파람이 흘러나온다. 이미 부패되기 시작한 바닥의 죽은 비둘기 한 마리의 귀가 살짝 움직였다. 그렇게 믿는다. ‘음악을 작곡하는 일은…인간이 상상할 수 있는 소리의 체온을 만들어 가는 거예요.’ 그건 당신과 나의 상상계에 해당하는 것이 아니라 당신과 나 사이에 있는 인간계에 일어나야만 하는 사건 같은 것이죠. 우리가 사랑을 이야기하기 위해서 반드시 필요한 중얼거림 같은 것이 음악이 아닐까요. 그는 오늘따라 센티하다. 비 오는 날 산책을 했기 때문이 아니라 그가 산책이라는 것을 너무 오랜만에 한 나머지 집으로 돌아가는 길을 잃어버렸기 때문이다. ‘다락방에 세들어 사는 새’는 오래전 사랑하는 한 여자에게 불러주었던 애칭이었다.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