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구는 신림동에서 10여년 전 서울생활을 시작했다. 월세 몇 만원짜리 쪽방에 살면서 지하철역에 신문을 돌리며 소설을 썼다. 새벽 일찍 일어나 지하철 입구에 신문을 배포해 놓은 뒤 다시 이불 속으로 들어가 잠들면 되는 간단한 일이었다. 어느 날 우연히 자신이 돌린 신문이 문 앞에 배달된 것을 보고 번쩍 집어든 꿈을 꾸던 날, 칠구는 회사에서 잘렸다. “내일부턴 아침까지 자시오.” 신문에서만 보았던 ‘문자메시지 해고 통지’였다.
칠구는 쪽방시절의 첫날, 옆방에서 밤새도록 들려오던 밭은 기침소리가 잊히지 않는다고 한다. 칠구는 자신의 방 꽃무늬 벽지에 말라붙은 핏물을 보고 몸을 움츠렸다. 벽 속에서 흐드러지게 핀 꽃들이 핏물 몇 송이를 품은 채 잠들어 있었다. 이불 속으로 들어가 칠구는 소설 첫 페이지를 쓰기 시작했다. 제목은 <종이학이 사는 방>이었다. 칠구는 얼마 후 기침을 하면서 소설을 써가고 있는 자신을 발견했다. “내 소설이 너무 추웠으니까. 난 항상 그 곁에 있었거든.”
쪽방에서 고시원으로 옮긴 것은 대세의 흐름이었다. 칠구는 우리나라 방방곡곡 중 신림동만한 디스토피아도 보기 드물다고 한다. “모두들 여기를 벗어나고 싶은 욕망으로 살지. 굳이 묻지 않아도 다들 목표는 ‘올해까지’거나 ‘이번 시험’이야.” 어느 날 아침 칠구는 오락실에서 ‘거리에서 싸움질’하는 게임을 하고 있었다. 옆에 있던 수부룩, 덥수룩, 까치집, 왕대갈 하나가 옆구리를 쿡 찔렀다. 옆구리를 보니 귀엽게 생긴 도루코 칼날 끝이 반짝였다. “오백원만 빌려줘라!” 3만원이 당첨된 복권을 주고 합의봤다.
며칠 후 골목에서 삥을 뜯기고 있는 왕대갈을 다시 보았다. 칠구는 주머니 속 호루라기로 그를 구해주었다. 왕대갈은 경찰공무원 시험 준비로 몇 년째 학원비만 날리고 시골에서 원조가 끊기자 고시원비를 못 내 복도에서 잔다고 했다. 둘은 오락실에서 2인용 조가 되어 미사일을 적에게 열심히 날렸다. 절치부심 끝에 마지막 판 ‘왕’(王)을 깨던 날, 왕대갈은 아는 선배와 함께 파고다공원 쪽으로 태극기를 팔기 위해 자리를 옮긴다고 했다. “난 태극기 파는 건 관심없어. 애국심 같은 걸 제대로 배운 적이 없어서.”
칠구가 몇 년 동안 신림동 고시원에서 거친 직업은 스펙터클하다. 피시방 알바, 호프집 서빙, 통닭집 ‘찌라시’ 돌리기, 벌초작업, 조계사 보일러공사 보조 용역, 생수 배달, 불량과자 공장 등등. 칠구는 이제 짝퉁별 3개짜리 모텔 벨보이를 한다. 손님방 벨이 울리면 칠구는 계단을 뛰어올라 음료수건 새 콘돔이든 똥집여자번호이든 가져다준다. 칠구는 어느 날 <파이란>이라는 영화 포스터를 고시원 벽에 붙여 두었다. ‘세상은 나를 삼류라고 부르고 이 여자는 나를 사랑이라 부른다.’ 칠구는 손등에 뚝 떨어지는 눈물을 벽지에 발랐다. 칠구는 고시원에서 고시(考試)가 아닌 고시(孤試)를 치르고 있다. 불 꺼진 고시원의 초인종을 누르며 구상중인 소설 첫 페이지를 떠올린다. ‘나는 매일 사랑하는 사람의 집 초인종을 누르며 살고 싶다.’
김경주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