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텐더 ‘단감’은 10년이 넘게 바에서 일한다. 여러번 닉네임이 바뀌었지만 지금은 단감으로 홍대에서 활동한다. 단감은 ‘플레이’를 잘한다. 그가 핫!한 음악을 틀어놓고 저글링을 하면 손님들은 입을 쩍 벌리고 놀란다.
단감은 전국바텐더대회에 나가 ‘플레이’로 수상도 몇차례나 했다. 하지만 그는 아직까지 자기 바가 없다. 바텐더가 바 주인인 경우는 드무니까. 아직까진 비정규직이다. 단감의 입천장은 행주처럼 늘 헐어 있다. 하루에도 몇번씩 70도가량 되는 바카디를 머금은 채 불을 뿜는 플레이를 연습하면서 얻은 입천장이다. 서울에 처음 올라오던 날 바텐더 단감은 잘 곳이 없어서 바의 한쪽 구석에 딸린 쪽방에서 자곤 했다. 쪽방 안엔 주인이 키우는 썰매 개 맬러뮤트가 지내는 왕창 큰 개집이 있었다. 그곳으로 들어가 개 이불을 덮고 자면서 단감은 생각했다. ‘정말 사람만한 개가 자는 곳이라 그런지 꽤 넓구나. 나는 이곳이 아무리 추워도 자면서 개처럼 침을 흘리진 말아야지.’
10년 넘게 단감은 바 안에서만 활동하는 바텐더다. 바텐더가 바를 넘어 테이블로 나가기 시작하면 그건 구걸이 된다. 어쩌다가 예쁘장한 여학생들이 아르바이트 삼아 바텐더를 하고 싶다고 하면 스트레이트 진 한 잔 사주고 돌려보낸다. 단감은 진짜 바텐더가 되기 위해 필요한 것이 이빨이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요즘 사장들은 용모단정(?)과 손님의 취기를 고려한 적당한 구력이면 손님은 30분 안에 맥주에서 양주로 금방 주종을 바꾼다고 믿는다.
단감은 고집 때문에 바 유목민이 되어 전국을 옮겨 다녔다. 단감은 외로우면 가끔 다른 바에 손님으로 간다. 유니폼 입고 술 따라주는 여종업원의 손을 가로막는다. “내가 따라 먹을래요.” 단감은 바텐더가 호황을 누리던 90년대 중반 플레이를 배우기 위해 전국의 선수들을 스승 삼아 찾아다녔다. 난이도 있는 플레이를 배웠고 수많은 술 이름과 도수를 외우며 칵테일 레시피를 개발하기 위해 애썼다.
하지만 이제 단감은 서른 중반이 넘은 패색이 짙어가는 바텐더다. 풍운의 꿈을 안고 한국 땅에서 바텐더라는 직업의 전선을 세운 선배들은 어디로 갔는지 하나둘 사라졌고 운 좋게 자신의 바를 가진 선배들은 이제 손님몰이용 여종업원 오디션을 보고 있다. 단감의 플레이는 이제 눈에 띄게 줄어가고 있다. 어쩌다가 플레이를 하면 광대 보듯이 하는 눈초리가 자꾸 삶을 서럽게 느껴지게 한다. 바텐더 단감도 자신의 ‘바’를 가질 뻔한 적이 있었다. 어느 날 생일을 맞은 여대생 두명에게 이벤트성 플레이를 하던 중 손뼉을 치고 좋아하던 그녀들의 얼굴에 불을 붙여버린다. 놀란 나머지 머리통을 변기에 처박아서 간신히 불을 껐다. 성형수술비로, 모은 돈을 훌러덩 넘겼다.
이제 단감은 동안을 유지하기 위해 안간힘을 쓴다. 나이를 속인 채 월급을 줄여서라도 일을 하기 위해서다. 나이만 먹고 기술 있다고 높은 월급을 요구하는 바텐더보다 같은 값에 젊은 여종업원 몇을 두는 것이 요즘 바가 구색을 갖추는 것이라고 믿으니까. 어디서든 ‘직업의식’ 따위는 ‘질색’이라고 하니까.
김경주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