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리는 불량배들
달리는 불량배들

ㅈ은 내가 아는 연극배우다. 취하면 구석에 쭈그려 앉아 이집트나 알제리 군가를 한곡씩 메들리로 불러 젖힌다. 말을 배우는 아이들의 옹알이처럼 그 발음들이 울렁울렁하게 묘한 정서를 동반한다. ㅈ은 그 낯선 국가정서를 구수하게 부른다. ‘저 양반 혹시 글로벌 마초?’ 오해가 몰려들 무렵, 하지만 어쩐지 그 표정이 처연해 보이기까지 한다. 물론 그 외국어로 된 음송이 군가라는 사실을 알기까지는 옆사람의 귀띔이 조금 필요하다. ‘이해하쇼. 저 양반 외인부대 출신이라오.’

그를 알게 된 계기는 몇 해 전 내가 쓴 희곡작품의 공연연습 때였다. 그는 내 작품의 배우 중 하나로 연습중이었다. ㅈ은 아이엠에프가 터질 무렵 18살의 나이로 혈혈단신 프랑스의 외인부대를 지원했다. 아이엠에프를 전후해서 집안 경제사정 탓에 잠시 군으로 유배(?)를 가준 청년들은 다들 아는 사실이지만, 그 시절 군대의 정훈교육 시간에 외인부대 홍보 동영상은 흔하게 볼 수 있는 것이었다. 외인부대 역사상 유례가 없을 정도로 한국인 지원자가 몰려들던 무렵이었다. 용병을 모집하는 동영상의 말미엔 외인부대에서 한국인은 상당히 성실한 용병 취급을 받는다는 사실이 강조되곤 했다. 이유인즉슨 한국인은 대부분 돈을 거의 받지 않고도 군복무를 해 본 경험이 있기 때문에 외인부대의 훈련 정도는 가뿐히 소화해낸다는 것이다.

여하튼 복무계약제도를 거친 뒤 손에 쥐게 되는 비용과 프랑스 시민권의 유혹은 자국에서 불한당으로 취급받는 치들에겐 상당한 매혹이었을 것이다. 그는 헬기를 타고 그곳에 내려 죽기살기로 6년 가까운 시간을 버틴 몇 안 되는 한국인이었다. 어느 날 그는 술자리에서 자신은 그곳에서 공병대 소속 기병대였다고 했다. 한마디로 말을 타고 다니는 군인이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고국에 돌아와서는 말을 타본 적이 없다고 했다. 대신 지금은 새로운 말을 배우는 중이라고. 하긴 여기선 그만한 키의 준마를 타보려면 돈을 왕창 내야 할 테니까.(그는 현재 비정규직이다.) ㅈ은 용병기간을 마친 뒤 아이러니하게도 연극에 관심을 가졌다고 한다. 더욱 아이러니한 사실은 막상 연극을 하려고 레블뢰극단에 들어갔지만 거기서 다시 이방인의 설움을 겪어야 했다는 것이다. 하긴 ㅈ은 완전한 프랑스인이 아니니까. 그러니까 꿈을 갖게 되자 또다시 이방인의 신분으로 모국을 다시 찾게 된 셈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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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술자리에서 느닷없이 학벌 라인을 묻는 한 사람의 질문에 그는 버럭 대답했다. ‘저는 외대 불어과 나왔수다!’ ㅈ은 가끔 자신이 용병으로 머물렀던 세계의 분쟁지역들이 그립다고 했다. 벙커에 쭈그려 앉아 몽상을 많이 했다고 한다. ㅈ은 지금 연극용병으로 매일 자신의 표정에서 새로운 광경을 목격한다고 한다. 외인부대도 비정규직, 여기서도 비정규직이지만 언젠가는 돈을 벌면 말을 한 마리 사서 달려보고 싶다는 중얼거림을 이해한다고 겁없이(?) 말해버린 것을 고백한다. 가끔 스크린 경마장 지나칠 때 생각한다. ㅈ은 지금 자신이 선택한 트랙에 만족할까? 오늘도 그는 이방의 트랙에서 헐떡이며 새로운 말 연습을 하고 있음은 분명하다고.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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