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체 비누가 대세로 떠오르면서 오래 우리 욕실을 지켰던 비누들도 주목받고 있다. 윤동길(스튜디오어댑터 실장)
고체 비누가 대세로 떠오르면서 오래 우리 욕실을 지켰던 비누들도 주목받고 있다. 윤동길(스튜디오어댑터 실장)

친환경 비누부터 럭셔리 브랜드의 고급 비누까지, 고체 비누가 대세로 떠오르면서 ‘조상님 비누’도 돌아왔다. 도브, 아이보리, 다이알 등 오래 우리 욕실을 지켰던 비누들 말이다.

사실 ‘돌아왔다’는 정확한 표현이 아니다. 이들 비누는 늘 같은 자리를 지켜왔다. 지난 9일, 서울의 한 대형마트 비누 판매대를 살펴봤다. 동구밭 등 친환경 브랜드와 해피바스 등 일반 세안 비누, 도브, 알뜨랑 등 오래전 출시된 비누들이 나란히 놓여 있다. 최근 기후위기 문제 등으로 고체 비누가 대세로 떠오르면서 기능도 모양도 다양한 비누들이 쏟아지지만 마트 비누 코너만큼은 수십년의 세월이 비껴간 듯했다.

한국기업평판연구소가 지난해 12월 발표한 비누 브랜드 빅데이터 분석에 따르면 브랜드 평판 지수가 높은 순위 1위는 도브다. 그 뒤를 아이보리, 동구밭, 다이알, 러쉬 등이 잇는다. 구창환 한국기업평판연구소장에 따르면 “온라인상의 소비자 활동 빅데이터를 분석한 지수로, 순위가 높은 브랜드가 대중적으로 인기가 많은 것으로 이해하면 된다”고 설명했다.

광고

고체 비누가 유행하면서 2030들은 새로운 브랜드의 비누만큼이나 전통적인 브랜드 비누도 주목하는 듯하다. 최근 트위터와 유튜브 등 에스엔에스(SNS)에서는 도브 뷰티 바 ‘간증’이 이어졌다. 도브 비누로 머리를 감으면 두피 가려움이나 탈모가 줄어든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의사, 헤어 디자이너들이 직접 써보고 “탈모 예방은 느낌에 불과하다”는 반박도 이어졌다. 왜 이런 갑론을박이 벌어졌을까. 비누 공방을 운영하는 조유진 무중력스튜디오 대표에게 물으니 “도브는 일반 비누와 같은 약알칼리성이 아닌 중성 제품이어서 누리꾼들 사이에서 논쟁이 있었던 것 같다”고 설명했다. “중성 제품은 약알칼리성 제품보다 세정력은 조금 떨어지지만 자극이 덜하기 때문에 순하게 느껴진다”는 것. 도브 뷰티 바는 한장에 1천원도 하지 않는 가격 때문에 제로 웨이스트를 시도해보려는 이들이 자주 찾는 비누이기도 하다.

이들 비누가 한때는 유행의 최전선이었던 사실도 흥미롭다. 도브, 아이보리 등 수입 비누가 본격적으로 들어오던 1990년 전후로, 이들에 맞서기 위해 출시된 비누들이 오이비누, 살구맛사지비누 등이다. 당시 이 비누들은 ‘천연식물 비누’, ‘자연 비누’ 등으로 표현되며 큰 인기를 얻었다. 1991년 3월 한 일간지의 기사를 보면 이들 비누는 일반 비누보다 2배 정도 비싸지만, 전체 화장비누 판매 성장률을 앞지를 정도로 대세였다고 한다. 일찍이 1981년에는 아이보리 비누의 대항마로 국내산 ‘하이보리비누’가 고급 비누로 출시되기도 했다.

광고
광고

오래 사랑받아온 비누들은 우리 후각에 강렬하게 각인되어 있기도 하다. 온라인 향수 커뮤니티를 살펴보면 “지금 막 비누로 씻고 나온 것 같은 향”을 찾는 이들이 많다. 산타마리아 노벨라의 프리지아·멜로그라노·무스치오오로 등은 도브, 다이알 비누 향과 비슷한 향수로 유명하다. 클린의 웜코튼은 포근한 세숫비누 향, 프라다의 아이리스 인퓨전은 호텔 비누 향으로 알려져 있다. 그래서 비싼 향수 대신 비누 한장을 서랍이나 옷장 속에 넣어두고 향을 즐기는 이들도 있다. 비누, 오랜 익숙함으로 기분 전환을 해보는 것도 좋겠다.

신소윤 기자 yoon@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