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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C] 비건이면 밥 먹기 어렵다고요?

등록 :2021-07-23 11:01수정 :2021-07-23 11:06

비건하고 있습니다
식생활 까다롭다는 건 편견
식당도 미리 문의하면 해결
결국 내가 행복한 게 중요해!
일러스트 백승영
일러스트 백승영

어쩌다 보니 비건이 되었다. 어쩌다 보니 비건이 된 이유는, 비건이 환경에도 좋고, 건강에도 좋고, 비인간 동물을 해하고 싶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사실 그냥 쉬워서다. 비건으로서의 나의 삶은 간단하다. 아침에 일어나면 대충 스트레칭을 하고 (건강한 비건은 요가를 한다) 바게트를 살짝 구워 잼과 땅콩버터를 발라 먹는다. (건강한 비건은 페스토를 발라 먹는다) 시리얼이나 오트밀이 먹고 싶을 때는 집 주변에서 산 견과류 볶음을 올리고 두유와 함께 먹는다. 출근 전에는 우아하게 모카 포트로 에스프레소를 내려 마신다. (건강한 비건도 커피는 마신다)

점심은 보통 회사 주변에서 해결하는데, 회사 주변에 ‘뚫은’ 집이 많아서 편하다. 식당을 뚫는 방법은 다음과 같다. 여러 식당과 카페를 돌아다니며 “여기에 젓갈 들어가나요?”라든지, “육수 말고 맹물로 만들어주실 수 있나요?”라든지 “아직도 두유 옵션이 없다고요? 다른 카페 가야겠네…”라고 말한다. 남들이 다 먹는 걸 빼달라는 주문은 기억에 남을 수밖에 없는지라 몇 번 가지 않아도 대부분 친근하게 받아주시고 금방 알아서 척척 해주신다. 가끔 “이렇게 먹으면 힘 안 나지 않아요?” (힘이 너무 남아돌아 매일 아침 고민이다)라고 하시거나 “학생 또 왔어? 이렇게 먹는 거 종교 때문이야?” (종교가 아니라 윤리 때문이지만 매일 철저하게 지키고 아침, 점심, 저녁으로 실천한다는 점에서 종교와 별반 다르지 않은 것 같다)하고 묻는 분들도 계신다. 한번은 청국장집에 미리 전화해 “혹시 육수 빼고 주문 가능한가요?”라고 물었다가 “청국장에 육수나 고기 넣는 곳이 어디 있어! 그냥 와!”라며 호통을 들은 적도 있었다. 그렇다. 태백산맥의 나라 한국은 원래 채식이 기본이었던 것이다. 청국장은 원래 발효된 메주콩에 물을 넣어 끓이면 완성이다. 돼지고기와 고기 육수가 들어가는 현대식 청국장이 너무 익숙해졌을 뿐이다.

식당 주인이나 점원과 말을 거는 것이 조금 어렵다면 비건 음식이 이미 준비된 곳을 찾는 방법도 있다. 개인적으로는 김○천국 콩나물 돌솥비빔밥, 마라탕 식당의 마라샹궈, 서○웨이 베지 샌드위치, 그리고 롯○리아 식물성 버거를 제일 좋아한다. 이제는 채식으로 먹고살기가 워낙 편한 세상이라 오래전부터 채식을 해오신 분들을 보면 저절로 경외심이 느껴지기도 한다. ‘저 때는 비건 식당이나 마라샹궈도 없던 시절인데….”

저녁은 기분에 따라 다르다. 외식하고 싶을 때는 비건 식당을 찾아간다. 비건 식당은 힙하고, 힙한 만큼 비싸기도 하다. 초반에는 비건으로 요리를 잘할 수 있을까 걱정이 되어 비건 식당을 자주 다녔고, 그 결과 나의 지갑만큼 멘탈도 탈탈 털리고 말았다. 이제는 주로 집에서 직접 해먹는데 미역국, 두부채소볶음, 파스타, 후무스(병아리콩을 으깨 만든 소스), 곤드레밥, 감자튀김, 카레 등 별별 음식을 다 해먹는다. 최근에는 들기름 메밀 막국수와 사랑에 빠졌다. 메밀을 삶아서 차가운 물로 행군 뒤 물기를 빼고 위에 간장, 들기름, 들깻가루와 김 가루를 뿌려 5분이면 끝! 와, 신세계다. ‘왜 이렇게 맛있는 걸 이제야 먹었지’ 눈물이 절로 난다. 후식으로는 다크 초콜릿이나 참외 또는 수박을 잘라 먹는다.

비건이 이렇게나 쉽다. 나는 쓰레기를 줄이는 삶인 ‘제로 웨이스트’도 실천하는 중인데 제로 웨이스트는 한 100배는 더 어렵다 할 수 있다. 하지만 처음부터 이렇게 쉬웠던 것은 절대 아니다. 단지 개구리 올챙이 적 생각 못 하는 것일 뿐. 속담처럼 진짜로 개구리가 올챙이 시절을 기억 못 하는지는 잘 모르겠지만(개구리를 이해할 수 있다는 인간의 오만이다) 앞에서 이야기했듯 맛있는 것을 먹으며 살아가기 때문에 비건 초기에 어려웠던 나의 삶은 아득한 추억으로, 그리고 이런 글을 쓸 때 느껴지는 미미한 어색함으로만 남았다.

식사는 하루에 세 번 하는 행위이기 때문에 삶에 가장 중요한 부분으로 자리 잡을 수밖에 없다. 그리고 비건은 동물을 착취하거나 해를 주지 않기 위해, 그리고 생태발자국을 줄이기 위해 실천하는 것이다. 그만큼 충만하며 이것을 실천하는 매일매일, 나는 행복해진다.

내가 비건을 시작한 이유가 쉬워서라면, 비건 생활을 지속하는 이유는 이런 삶이 행복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정말 어쩌다 보니 비건으로 먹고, 비건으로 글을 쓰고, 비건으로 살아간다.

홍성환(비건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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