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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여성

“임신 6개월에 병원 찾는 여성도 많은데…정부는 ‘주수’ 타령만”

등록 :2020-11-04 04:59수정 :2020-11-04 09:31

[산부인과 전문의가 본 낙태죄 관련 입법안 문제점]

인터뷰 / 고경심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이사
스트레스 등 영향 생리불순 허다
주기만으론 임신 자각 못할수도
오랜기간 ‘낙태죄 조항’ 존재 탓
산부인과 학회내 논의도 걸음마
임신중지도 ‘필수 의료서비스’
WHO 규정대로 건보적용 필요
지난달 29일 오전 서울 세종로 서울정부종합청사 앞에서 대학생 페미니즘 연합동아리 ’모두의 페미니즘’ 관계자들이 정부의 낙태죄 존치 시도를 규탄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달 29일 오전 서울 세종로 서울정부종합청사 앞에서 대학생 페미니즘 연합동아리 ’모두의 페미니즘’ 관계자들이 정부의 낙태죄 존치 시도를 규탄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임신 5~6개월이 지났는데도 전혀 임신이라고 생각하지 못하고 병원을 찾아오는 여성도 상당히 많다.”

30여년간 일선 현장에서 임신중지를 원하는 여성들을 만나온 고경심 산부인과 전문의(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이사)는 최근 <한겨레>와 한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여성의 임신 경험은 결코 한가지 형태로 단일하지 않기 때문에, 낙태죄 관련 정부의 형법·모자보건법 개정안과 같이 주수를 기준으로 처벌 조항을 남겨두는 것은 비합리적이라는 얘기다.

고경심 산부인과 전문의
고경심 산부인과 전문의

고경심 전문의는 “임신 28주가 된 학생을 보건교사가 데려온 적이 있다. 두통 외엔 별다른 증상이 없던데다 살이 쪄서 배가 조금 나왔다고 생각해 임신 인지가 늦었던 것”이라고 전했다. 스트레스와 불규칙한 생활, 환경호르몬 등의 영향으로 여성의 생리불순이 늘어 생리주기만으론 임신을 자각하지 못하는 경우가 상당하다는 것이다. 그는 “수개월간 무월경이거나 한달에 두세번씩 하는 불규칙한 사례가 많다. 다낭성난소증후군이 가임기 여성에게 흔한데, 이 경우 3~6개월에 한번씩 생리를 한다”며 “이런 현실이 법안에 반영되지 않았다”고 짚었다.

그는 낙태죄 관련 국회 입법 논의에서 핵심은 모든 여성이 임신중지에 관한 정보를 차별 없이 받고 이를 통해 의료서비스 접근성을 높일 수 있도록 하는 것이라고 강조한다. 보건소에서 지금처럼 난임 상담만 받을 수 있게 하는 것이 아니라, 임신중지를 포함해 여성의 생식 건강 전반에 대해 자유롭게 상담이 가능하도록 관련 담당자들의 훈련이 뒤따라야 한다는 것이다. 유엔 자문기관인 국제가족계획연맹(IPPF)은 ‘권리에 기반한 임신중지 상담 지침’에서 “임신중지 당사자를 상담자가 재단하지 말고, 태아 이미지처럼 부정확한 언어와 이미지를 써서 낙인을 씌우면 안 된다”라고 명시하고 있다. 오랜 기간 ‘낙태죄 조항’이 존재한 탓에, 산부인과 학회 내에서도 임신중지와 재생산권에 대한 논의는 걸음마 수준이다. 최근 대한산부인과학회 등 일부 단체는 “임신부 요청에 따른 임신중지 기간을 10주 내로 제한해야 한다”며 14주로 규정한 정부안보다도 보수적인 입장을 내놨다. 의사들이 이와 관련한 재교육을 받지 못한 것도 영향이 크다는 설명이다. 임신중지 관련 교육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다 보니, 여성이 유산했을 때도 자궁을 긁어내는 ‘소파술’과 같은 방식에 의존하게 된다는 우려도 있다. 그는 “지난해 헌재 결정 이후 처음으로 산부인과 학회의 연수교육 과정에 미프진(자연유산 유도제) 복용과 사후관리에 대한 교육이 이뤄졌다. 의사들이 다양한 중절수술의 방법에 대해서도 연수교육을 받아야 한다”고 말했다.

※ 이미지를 누르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국내에서 임신중지와 관련한 논의가 규제 위주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데 대해, 고경심 전문의는 “임신중지를 전면 비범죄화할 경우 여성이 ‘무분별’하게 임신중지를 할 거란 말을 아무렇지 않게 한다. (정책 입안자들이) 여성들이 산부인과 진료대에 올라가는 것도 모멸감을 느끼며 고통스러워한다는 현실을 전혀 모른다”고 지적했다. 낙태죄 조항을 유지하는 것은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인정하지 않고 무시하는 처사라는 것이다. 특히 태아의 생명은 여성의 건강이 담보될 때 가능하고 ‘안전한 임신중지’를 해야 향후 가임력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데, 이런 점은 간과한 채 처벌 조항을 유지하는 것은 오히려 여성을 안전하지 않은 상황에 처하도록 한다고 그는 강조한다.

이와 함께 고경심 전문의는 세계보건기구(WHO)의 규정대로, 임신중지를 ‘필수 의료서비스’로 보고 건강보험 적용이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그는 “경제적으로 어려워 임신중절을 받지 못하고, 부양능력이 없어 아이를 베이비박스에 두는 일을 방치할 수는 없지 않느냐”고 되물었다.

박다해 기자 doal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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