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이버성폭력대응센터
한국사이버성폭력대응센터

[토요판] 친절한 기자들

광고

양진호 한국미래기술회장이 16일 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송치됐습니다. 경찰은 정보통신망법과 성폭력처벌법 위반, 상습폭행, 강요 등 10개 혐의를 적용했습니다. 그가 ‘헤비업로더’를 관리한 점, 필터링업체를 소유했음에도 필터링을 제대로 하지 않아 불법영상 유통을 주도했다는 점도 사실로 확인됐습니다. 양 회장의 ‘갑질’과 ‘웹하드 카르텔’ 혐의에 대해 마땅한 처벌이 나오길 많은 분들이 기대하고 있을 겁니다. 저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하지만 그가 어떤 처벌을 받든 양 회장의 폭행 영상이 공개되고 송치될 때까지 사태를 지켜보며 느낀 씁쓸함은 쉬이 가시지 않을 것 같습니다.

안녕하세요. 여성가족부를 출입하고 있는 박다해 기자입니다. 저는 이번 사태를 보며 여성과 남성이 각각 폭력의 피해자가 됐을 때 대중의 분노가 얼마나 달라지는지, 여성이 겪는 폭력은 어떻게 사소한 문제로 취급받는지 절감했습니다. 제 씁쓸함의 근원은 바로 이 여론의 온도차였습니다.

광고
광고

국내 웹하드 업체의 문제는 이미 지난 7월 수면 위로 떠올랐습니다. <그것이 알고싶다>(SBS)는 여성의 동의 없이 촬영된 불법영상 유통에 웹하드 업체가 적극 개입해왔다는 사실을 고발했습니다. 불법영상을 다량 올리는 헤비업로더의 신상정보를 경찰이 요구해도 웹하드 업체는 이를 주지 않거나 중국인 등 다른 신상정보를 제출하는 방식으로 그들을 보호해왔다는 겁니다. 업체의 자체 아이디로 성인물만 올린 정황도 있었고, 이 업무가 회사의 공식적인 업무 지시였다는 주장도 나왔습니다.

방송 직후 웹하드 업체인 ‘위디스크’와 ‘파일노리’, 필터링업체 ‘뮤레카’와 디지털장의업체 ‘나를 찾아줘’의 이름도 공개됐습니다. ‘웹하드 카르텔과 디지털성범죄 산업에 대해 특별 수사를 요구한다’는 청와대 청원을 통해서입니다. 위디스크와 파일노리가 뮤레카와 기술 협약만 맺고 제대로 된 필터링 조치를 취하지 않았으며, 불법영상 유통으로 거액의 이득을 취했다는 주장이 담겨 있었습니다. 뮤레카가 디지털장의업체를 운영하며 영상 삭제를 요청한 피해자들을 기망했다고도 했습니다. 물론 이 청원에는 양진호 회장의 이름도 등장했습니다. 한국사이버성폭력대응센터를 중심으로 청원 독려 운동이 벌어졌고, 20만명의 서명을 받았습니다.

광고

딱 거기까지였습니다. 위디스크나 파일노리, 그리고 두 업체를 통해 부를 축적했던 양진호 회장에게 분노하는 목소리는 더 커지지 않았습니다. 심지어 극단적인 선택을 한 피해 여성들을 향한 비난과 조롱이 튀어나왔습니다. “빨리 자살녀 품번 좀, 유작 보면서 편한 밤 보내고 싶다”, “솔직히 유작이 더 끌림”, “못생긴 X들이 야동 찍히고 자살하더라”…. <그것이 알고싶다> 방영 이후 실제로 온라인 커뮤니티에 올라온 글입니다.

양 회장의 이름이 다시 등장한 건 직원을 폭행하고 살아있는 닭을 죽이는 엽기행각이 공개되면서입니다. 갑자기 그는 전국민의 공적이 됐습니다. 양진호란 이름은 포털 검색어 순위에 오르며 이슈가 됐고, 첫 보도영상은 80만건이 넘는 조회수를 기록했습니다. “양진호 배불려주는 것 싫다”며 위디스크를 탈퇴했다는 인증 사진도 여러 개 올라왔습니다.

물론 고통은 경중과 우열을 가릴 수 있는 문제가 아닙니다. 그럼에도 많은 여성들이 불법영상 유포로 극단적인 선택까지 해야했단 사실이 드러났을 땐 왜 일부의 분노로 그쳤던 걸까 의문이 남습니다. ‘극소수 여성이 겪는 예외적인 문제’란 생각 때문이었을까요? 포털에서 ‘전 여자친구 협박’을 검색하니, 남성이 ‘성관계 영상 유포 협박’, ‘알몸사진 협박’을 했다는 뉴스가 끝없이 나옵니다. 한국사이버성폭력대응센터가 지난해 6월 웹하드를 전수 조사한 결과 ‘국노’(국산 노모자이크)와 같은 단어를 달고 피해 촬영물임을 암시하는 영상이 6만5천건 넘게 올라와 있었습니다.

저작권이 없는 피해 촬영물은 웹하드 업체의 가장 큰 수익원이었습니다. 여성의 몸은 100원∼150원에 거래됐습니다. 피해 여성은 자신의 영상을 지우기 위해 웹하드와 결탁 의혹이 있는 디지털장의업체에 돈을 지불해야 했습니다. ‘1건당 3개월 동안 55만원’ 같은 방식입니다. 이 말은, 3개월이 지난 뒤에 같은 영상이 올라오면 그 영상을 삭제하기 위해 피해자가 추가로 돈을 업체에 지불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이 거대한 디지털성폭력 시장에서 여성의 인권은 사고 팔리는 재화에 불과했습니다.

광고

웹하드 카르텔을 깨는 건 수사기관만의 몫이 아닙니다. 그동안 양 회장에게 수익을 가져다 준 사람은 과연 누구였는지 저는 묻고 싶습니다. 여성이 겪는 폭력에 대한 둔감함, 남성이 피해자가 됐을 때야 비로소 터져나오는 분노의 온도차는 대체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지도요.

박다해 사회정책팀 기자 doall@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