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무부가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업무보고에서 윤석열 대통령 당선자의 ‘성범죄 처벌 강화’ 공약에 대해 밝힌 의견은 새 정부 출범이 가져올 성범죄 대응 체계 변화의 윤곽을 드러낸다. ‘스토킹 처벌법 반의사불벌 조항 폐지’와 같이 여야 간 이견이 적은 공약부터 ‘성범죄 무고죄 신설’처럼 반발도 적잖은 공약까지, 새 정부의 성범죄 대응 공약에 대한 평가를 전문가들에게 물어 실현 가능성을 따져봤다.
가장 빠르게 이행할 수 있는 공약으로는 스토킹 처벌법의 반의사불벌 조항 폐지가 꼽힌다. 지난해 10월 시행된 스토킹 처벌법은 “피해자가 구체적으로 밝힌 의사에 반하여 공소를 제기할 수 없다”고 규정하고 있다. 주로 주변인이 가해자인 스토킹 범죄의 특성 때문에 피해자가 추가보복을 당할까 ‘처벌을 바라지 않는다’는 의사를 밝힐 수 있다는 우려가 법 시행 직후부터 나왔다. 법무부는 인수위 업무보고에서 “스토킹 범죄의 특성상 합의 과정에서 추가 피해 가능성 등을 고려해 법의 실효성을 높일 수 있도록 국회 입법 논의를 지원하겠다”고 보고했다.
입법 상황은 유리하다. 지난 대선에서 윤 당선자뿐 아니라 이재명·안철수 후보도 이 조항 폐지를 대선 공약으로 내걸었다. 여성계도 폐지 필요성을 꾸준히 주장해왔다. 송란희 한국여성의전화 상임대표는 “반의사불벌 조항이 포함된 스토킹 처벌법을 발의했던 법무부가 입장을 바꾼 것은 환영할 부분”이라며 “하지만 처벌법에서 스토킹을 지나치게 협소하게 정의하고 있는 부분이나, 피해자에 대한 보호조처가 부재한 것에 대한 논의도 함께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법무부는 ‘디지털 성범죄 위장수사 확대’ 공약에도 호응했다. 윤 당선자는 현행법상 아동·청소년 대상 디지털 성범죄로 제한된 위장수사를 성인으로 확대하겠다고 약속했다. 법무부도 업무보고에서 ‘추진’ 의견을 냈다. 지난해 9월 개정된 아동·청소년 성 보호법은 경찰이 아동·청소년 대상의 디지털 성범죄 수사 때 법원의 허가를 받아 위장수사를 할 수 있도록 규정했는데, 이를 성인에게도 확대하겠다는 것이다.
다만 전문가들 견해는 갈린다. 위장수사는 ‘기망’(속이기)을 포함한 수사기법인 만큼 이를 아동·청소년과는 처벌 조항이 다른 성인으로 확대할 때는 신중한 법리적 검토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신진희 대한법률구조공단 변호사는 “아동·청소년은 동의 여부와 상관 없이 성착취물에 해당해 처벌이 가능하지만, 성인인 경우 동의 없이 편집·가공·유포한 ‘불법 촬영물’만 처벌 대상”이라며 “성인과 아동·청소년의 처벌 양태가 다르기 때문에 위장수사의 범위를 확장하는 데는 법리적 검토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반면 서혜진 변호사(한국여성변호사회 인권이사)는 “아동·청소년 대상 디지털 성범죄 위장수사 이후 경찰 내에 사후·사전적 통제 절차와 매뉴얼이 충분히 마련된 상황이다. 디지털 성범죄의 심각성을 생각하면 이를 성인으로 확대하는 것도 검토가 필요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른바 ‘권력형 성범죄 은폐 방지 3법’을 두고는 인수위와 법무부의 의견이 엇갈렸던 것으로 전해졌다. 전주혜 국민의힘 의원이 지난해 1월 발의한 이 법에는 업무상 위력에 의한 성폭력 피해자의 경우 사실적시에 따른 명예훼손 처벌에 위법성 조각 사유를 신설하는 내용이 포함됐다. 법무부는 업무보고에서 형법에 이미 “사실적시 명예훼손 행위가 진실한 사실로서 오로지 공공의 이익에 관한 때는 처벌하지 않는다”고 규정하고 있기 때문에 ‘추진이 어렵다’는 입장을 밝혔다고 한다. 서혜진 변호사도 “굳이 위력 성폭력 피해자만 골라내 위법성 조각 사유를 신설하는 것은 법의 형평성에 맞지 않고, 오히려 성폭력 피해자는 예외적으로 대우해야 한다는 편견을 줄 수 있다”고 우려했다.
가장 큰 논란이 예상되는 것은 ‘성범죄 무고죄 신설’ 공약이다. 법무부는 업무보고에서 “전문가의 의견을 청취하고, 해외 입법사례 조사분석을 위해 연구용역 발주를 추진할 계획”이라고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여성계에서는 사실상 추진을 전제로 ‘명분’을 쌓겠다는 것 아니냐는 비판이 나온다. 송란희 대표는 “안 그래도 성범죄에 대한 사회적 낙인으로 신고를 꺼리는 피해자를 위축시킬 것이 자명한 법안이다. 추진 시 강력한 반발이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임재우 기자 abbado@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