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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사회일반

“선생님이 다 받아줘서”…지역아동센터에서 ‘어른’이 되었다

등록 :2021-05-18 04:59수정 :2021-07-01 16:48

한겨레33살 프로젝트
지역아동센터 한 달 르포
따돌림, 우울증 딛고
‘평범한 어른’이 된 이들
ㄱ지역아동센터를 다니는 아이들의 장래희망이 적힌 포스트잇. 김혜윤 기자 unique@hani.co.kr
ㄱ지역아동센터를 다니는 아이들의 장래희망이 적힌 포스트잇. 김혜윤 기자 unique@hani.co.kr

연정(고1)이는 입천장이 갈라진 채(구개열) 태어났다. 수술을 하고 오랜 치료도 받았다. 하지만 구개열은 언어장애를 동반한다. 웃거나 말할 때 갈라진 입천장·목젖이 드러난다. 구개열은 연정이의 삶을 할퀴었다. 어렸을 때부터 학교에서 따돌림을 당했고 우울증의 늪에 빠지기도 했다.

연정이는 지금 ‘타고난 트롬본 연주자’라고 선생님들에게 칭찬을 받는다. ‘음악치료사’라는 꿈도 생겼다. 트롬본이라는 악기를 만나면서 생긴 변화다. 음악을 하기엔 형편이 넉넉하지 않은 연정이가 악기를 접한 건 지역아동센터 덕분이다. 지역아동센터는 돌봄 공백을 메우면서, ‘조금 다르다’는 이유로 학교와 사회에서 겉도는 아이들의 ‘텅 빈 마음’을 채우기도 한다. 지난 9~13일 사이, 연정이처럼 지역아동센터에서 마음을 다잡고 ‘평범한 어른’으로 성장하고 있는 이들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살려고 악기에 매달렸어요”

연정이가 다닌 서울 ㄱ지역아동센터에서 아이들은 악기를 하나씩 받는다. 월드비전 등의 지원을 받은 센터와 세종꿈나무오케스트라가 악기를 빌려준다. 연정이는 초등학교 때 처음에 바이올린을 잡았지만 재미를 못 붙였다. 중학교 입학 뒤 어느 날 센터 선생님이 “한번 불어볼래?”라고 트롬본을 내밀었다. 연정이는 1m에 달하는 거대한 금관악기를 자유자재로 다루는 여성 연주자들을 동경해왔다. 입술을 대고 바람을 불어봤다. 처음엔 바람 소리가 났지만, 5분 뒤 ‘부우우’ 제소리가 났다. “이게 딱이다. 너 어디 가지 말고 트롬본 해.” 연정이는 선생님의 칭찬에 이날부터 트롬본을 잡았다. 두 입술의 떨림으로 소리를 내는 트롬본을 불기에 구개열은 걸림돌이었지만 연습에 매달렸다. “중학교 때 우울증이 가장 심했어요. 할머니, 아빠와 매일 싸우고…. 살려면 뭐라도 해야겠다 싶더라고요. 안 하면 죽을 것 같았어요.”

학교서 심한 따돌림…센터선 가정사 안물어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중학교 3학년까지 경남의 ㄴ지역아동센터를 다닌 서희(22)씨도 중학교 1학년 때 심한 따돌림을 당했다. 연정이가 그랬듯, 매일 학교에 가는 게 고통이었다. “쟤 돈 없어. 거지인가 봐.” “우릴 무시한다.” 어려운 집안 형편을 숨기려 분식집·노래방에 같이 어울리지 않으니 학교 친구들 사이에서 이런 소문이 돌았다. “(괴롭힘, 따돌림 때문에) 수업 시간 45분보다 쉬는 시간 10분이 더 길었어요.” 그러나 하교 뒤에 가는 지역아동센터 친구들은 서희씨에게 ‘거지’라고 하지 않았다. “누구네 집이 못산다” “누구네 부모님이 이혼했다” 같은 말도 하지 않는다. 대학생이 된 서희씨가 지금까지도 연락하는 친구들은 학교가 아닌 센터 친구들이다.

경찰관 경수(30)씨도 아직까지 센터 친구들과 만나며 마음을 터놓고 이야기한다. 경수씨가 ‘말썽’을 부리던 시절, 그의 투정을 받아준 곳이 지역아동센터다. 그는 어린 시절 빛이 잘 들어오지 않는 4평짜리 집에서 아빠, 여동생과 살았다. 엄마가 암으로 돌아가신 뒤 아빠는 일하러 나가지 않았다. 아빠와 자주 싸웠고 학교에서도 문제를 일으켰다. 14살 때 ㄱ지역아동센터에 다니면서 경수씨에게 변화가 찾아왔다. 늘 그를 따라다니던 배고픔이 사라졌다. 물론 한참은 투정을 부리며 센터 선생님들의 속을 썩였다. “그래도 모두 받아주시는 선생님들이 계셔서 마음을 좀 풀었던 것 같아요.” 어느 날 자신 때문에 눈물짓는 선생님의 모습을 보고 ‘내가 계속 이러면 사람이 아니다’라고 생각했다. 공부에 마음을 붙이자 점차 성적이 올랐다.

문제아였던 경수씨 “선생님이 다 받아줘”

서희씨는 현재 한 대학의 간호학과에 다닌다. “간호사가 돼보는 건 어때? 잘할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해주는 가족들과 센터 선생님들의 말에 용기를 냈다. 서희씨는 큰 병원 수간호사가 돼 아픈 사람들을 치료하고, 가족들에게 자랑스러운 딸이 되고 싶다고 했다.

경수씨는 경찰 시험에 합격해 현재 서울에서 일한다. 폐지 줍던 할머니가 고급 외제차에 치였을 때, 할머니에게 도움이 될 만한 법 조항을 찾아봤던 경험을 이야기하며 경수씨는 뿌듯해한다. “공정하되, 약자의 시선에서 민원 서비스를 하는 경찰이 되고 싶어요.”

연정이는 음악치료사가 되기 위해 음대 진학을 준비하고 있다. 다른 친구들에 비해 개인 레슨도 부족하고, 연습실도 따로 없지만, 꿈꿀 수 있다는 것에 만족한다. “저처럼 우울증에 시달렸던 친구들을 치료하고 싶어요. 제가 센터에서 마음을 치료받은 것처럼 다른 친구들에게 도움이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채윤태 기자 chai@hani.co.kr

지역아동센터란? ‘공부방’이 시초…전국에 4천개 넘어

지역아동센터의 시작은 ‘공부방’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인천도시산업선교회의 조화순 목사가 1962년 세운 ‘민들레 공부방’이 최초로 꼽히지만, 공부방이 본격적으로 생겨난 것은 도시 빈민 지역에서 강제 철거가 대대적으로 진행된 1980년대부터다. 서울 월곡동이나 경기 부천 등에서 종교단체나 민간단체가 공부방을 세우며 지역의 돌봄과 교육을 국가 대신 떠안았다.

민간에 맡겨진 공부방을 법과 제도의 울타리 안으로 끌어들여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게 된 것은 1997년 외환위기 때부터다. 가정이 급속히 해체됐고 아동 빈곤 문제가 나타났기 때문이다. 특히 결식아동이 1999년에만 15만명을 넘어서면서 ‘급식소’로서 공부방의 구실이 주목받기도 했다.

2002년 공부방 교사 중심으로 ‘아동복지법 법제화를 위한 지역아동센터 전국모임’이 결성돼 공청회와 토론회, 서명 활동 등을 통해 법제화를 촉구하는 운동이 진행됐다. 같은 해 국회에서 이를 제도화하는 내용의 아동복지법 개정안이 발의됐으나 보건복지부의 반대로 보류됐다. 아동복지법에 명시하고도 사실상 운영되지 않고 있던 아동복지관이 지역아동센터의 기능과 유사하다는 이유에서였다. 이후 2003년 민간 공부방 단체 ‘전국지역아동센터공부방협의회’가 재공론화를 이끌었고, 법 개정안이 국회에서 통과돼 2004년 1월29일 공포됐다.

법제화 초기인 노무현 정부 시절 지역아동센터는 눈에 띄게 늘었다. 첫해인 2004년 895곳을 시작으로 2005년 1051곳, 2006년 523곳, 2007년 729곳이 새로 생겼고 2019년에는 4217곳까지 늘었다. 이용 아동 수도 2004년 2만3347명에서 2010년 10만233명, 2019년 10만8971명으로 늘면서 대표적인 아동 돌봄 기관으로 자리 잡았다. 전국 아동의 약 2%가 지역아동센터를 이용하는 셈이다. 이용 아동의 절반(49.2%)이 맞벌이 가정의 아동이다. 올해 지역아동센터에 배정된 예산은 1874억원이다.

이우연 기자 azar@hani.co.kr

본 기획물은 정부광고 수수료로 조성된 언론진흥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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