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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사회일반

라면, 정말 소울푸드일까…영혼의 물과 공기, 그냥 소울인데

등록 :2021-04-17 11:22수정 :2021-04-17 22: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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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판] 기획
라면은 어떻게 문화가 되었나

‘라면왕’ 별세에 추억 꺼내는 누리꾼들
글감, 먹방, 노래 가사, 라면 소리까지
라면은 왜 대중문화 주인공 됐나

“고난과 역경 이기는 저렴한 음식”
“유혹하는 맛 그 자체로 매력적”
라면은 이제 가볍게 한끼 때우는 인스턴트 음식이 아닌 훌륭한 식사로 지위가 높아졌다. 게티이미지뱅크
라면은 이제 가볍게 한끼 때우는 인스턴트 음식이 아닌 훌륭한 식사로 지위가 높아졌다. 게티이미지뱅크

▶ ‘짜파구리’의 국제적 인기에 힘입어 지난해 우리나라의 라면 수출액이 6730억원(농림축산식품부 집계)을 달성했다. 전년 대비 29.3%가, 5년 전과 견주면 200% 이상 오른 수치다. 한국인 한명이 한해 평균 75개를 먹는다는 라면은 어떻게 국민들의 ‘솔(soul) 푸드’가 되었을까.

“고 신춘호 회장님의 명복을 빌며…. 신라면에 곱창 조금, 계란, 다진 마늘, 파, 들깻가루에 부추 넣고 끓여봤습니다.”

지난달 27일 한 누리꾼은 라면 한 그릇을 끓여 인증샷을 올렸다. 매콤해 보이는 빨간 국물에 살아 있는 면발, 노른자를 도톰하게 품은 신라면이었다. 이날은 국내 라면시장 점유율 1위 기업 농심의 창업주인 신춘호 회장이 세상을 떠난 날이었다. 신 회장은 ‘라면왕’이었다. 1965년 “값이 싸면서 맛있고, 밥을 대신할 만큼 영양도 충분한 라면을 만들자”며 자본금 500만원으로 회사를 세웠다. 55년 만인 지난해 농심의 라면 매출이 2조원을 넘는다. 특히 1986년 자신의 이름 첫자를 따서 이름 붙인 ‘신라면’은 신춘호 최고의 역작이었다. 2001년 둘째 글자를 딴 ‘춘면’을 내놓기도 했지만, 마지막 글자를 딴 라면은 끝내 내놓지 못했다. 온라인에서는 추모 물결이 일었다. 그의 부고 기사엔 어릴 적 라면에 대한 추억 이야기가 댓글로 줄을 이었다. “돈이 없을 때 라면으로 배고픔을 얼마나 달랬는지 모릅니다”, “어릴 적 라면을 사기 위해 500원짜리 동전 2개를 쥐고 동생과 골목을 돌아 동네 슈퍼에 갔습니다. 가난해서 힘들었어도 추억은 풍성합니다.”

한국인 한명이 한해 평균 75개를 먹는다는 라면은 단순한 ‘먹거리’가 아니다. 한그릇 라면은 ‘추억이 담긴 음식’으로 수십년간 사랑받았다. 먹방 프로그램 레시피 대결의 주인공으로, 문학적 에세이나 대중가요 가사의 소재로, 라면은 그 쓰임새를 넓혀왔다. 최근에는 라면을 끓이거나 먹는 소리를 오디오로 즐기는 소리파일(ASMR)까지 나오고 있다. 라면이 ‘먹고 즐기는 음식’ 이상의 문화가 되어 사람들의 관심을 끄는 이유는 무엇일까.

라면은 일종의 물과 공기 같은 것

푹 익힌 면발을 좋아하는 남자와 설익힌 꼬들꼬들 면발을 좋아하는 여자. 그들이 만나 합을 맞춰가는 이야기를 담은 연극 <라면>은 2015년 첫선을 보였다. 이후 7년째 연극 부문 스테디셀러 10위권을 유지할 만큼 인기를 지속하고 있다. 연극의 주인공들은 매번 ‘스프부터 넣을까? 면부터 넣을까?’로 싸운다. 끝이 아니다. 그다음 ‘계란을 넣을까 말까’를 결정하는 단계에서 또 다툼이 이어진다. 라면을 두고, 고민스러운 선택을 하는 과정 하나하나가 누구나 일상에서 한번쯤 겪었을 법한 모습들이다.

특히 라면과 관련된 조리법은 인터넷을 뜨겁게 달구는 단골 소재다. 지난 2월 물리학자 김상욱 교수(경희대)가 자신의 페이스북에 ‘라면의 새 역사를 연다’며 찬물에서 면을 넣은 상태로, 불을 올리고 끓이면 ‘완벽한 면발’을 즐길 수 있다고 제안해 화제가 됐다. 당시 라면 회사 쪽이 ‘찬물 라면’ 실험까지 거치며 “찬물로 시작하면 (화력 등에 따라) 면 삶는 시간을 일정하게 맞추기 어려워 한결같은 맛을 내기 어렵고, ‘완벽한 면발’이라는 표현도 김 교수의 개인적 취향일 것”이라고 공식적인 설명을 냈다. 결국 김 교수가 “제대로 실험하려면 우선 면발의 쫄깃한 정도를 정량화할 수 있는 물리량을 찾아야 한다”는 식으로 정리를 했다. 라면에 대한 한국 사회의 뜨거운 관심을 다시 확인한 유쾌한 소동이었던 셈이다. 라면을 맛있게 끓이는 방법뿐만 아니다. 라면과 어울리는 식재료 조합을 발굴하는 블로거와 유튜버들이 쉬지 않고 새 조리법을 개발하고 있다.

탁자에 늘어놓은 다양한 색깔과 모양의 라면 사리들. 라면 블로거 지영준씨 제공
탁자에 늘어놓은 다양한 색깔과 모양의 라면 사리들. 라면 블로거 지영준씨 제공

라면이 일종의 ‘공기와 물 같은 것’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올해 1월 출간된 책 <라면의 재발견>(따비) 지은이 한종수(52) 작가는 라면에 관한 책을 쓰게 된 계기에 대해 “물과 공기를 다룬 책이 별로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너무 흔하고 당연한 것들에 대해서는 탐구심이 적어지기 때문인데, 라면도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일상적이고 소소하지만 꼭 필요한 것들에 대한 관심을 가졌으면 하는 마음에서 펜을 들었다는 것이다.

한 작가는 라면에 대한 가장 생생한 기억으로 분식점의 조리된 라면 한그릇이 900원이었다가 1000원으로 올랐을 때를 꼽는다. 그는 “1990년 전후로 생각된다. 분식점 라면 가격이 1000원을 넘기자 충격을 받았다. 세자릿수의 돈으로 한끼를 때울 수 없는 게 현실이라는 걸 깨달았기 때문”이라고 했다. 누군가에겐 1990년 시대의 변화 중 라면값의 변화가 어떤 충격 못지않게 강렬한 기억이었던 것이다.

또 자주 가던 라면집이 없어졌을 때, 20대 시절 한 토막이 잘린 듯한 기분이 들었다고도 전했다. 이처럼 라면은 한 시대의 시간과 장소에 대한 기억을 지배하기도 한다. 그는 “라볶이가 참 맛있었던 대학교 정문 앞 분식점이 없어졌을 때 청춘의 한 조각이 사라진 듯한 느낌이 들었다. 가끔 가는 서울 동대문의 만화가게 라면이 참 맛있었는데, 주인이 바뀐 건지 맛이 달라졌다. 그러니 만화가게도 안 가게 되더라”고 말했다. 라면의 위력은 이런 것이다.

‘국민 솔(soul) 푸드’ 라면

2년 전 ‘고시원에서 라면으로 세끼 때우는 법’이란 영상이 높은 조회수를 기록해 화제였다. 자신을 ‘생존 유튜버’라고 소개한 한 청년은 고시원에서 무료로 제공하는 밥과 김치를 활용해 식비를 절약하는 영상을 올렸다. 우선 라면 한 봉지를 끓여 면발만 건져 먹고, 국물은 냉장고에 보관한다. 이튿날 아침엔 국물에 우동사리를 넣어, 국물은 그대로 두고 면으로만 다시 한끼를 때운다. 이번엔 학교 수업을 듣고 돌아와 남은 국물을 데워 밥을 말아먹는 것이다. 취업난에 힘겨웠던 청년들이 ‘라면 아껴 먹기’ 영상에 공감을 아끼지 않았다. 이 유튜버는 최근 자신의 유튜브 채널에서 “당시 고시원 생활 초창기에 뭘 요리해 먹을지 모르겠고, 대학 생활을 하면서 지출이 많아졌다. 식비에서 돈을 최대한 아끼려고 라면만 2~3주 먹으면서 만든 영상이다. 그러다 건강이 나빠지는 게 느껴져 지금은 우유, 계란 등 다양하게 섭취하고 있다”고 근황을 전했다.

수십년간 힘겨운 이들의 먹거리가 되며, 서민들의 눈물, 콧물, 애환이 섞였던 게 라면이다. 그만큼 라면은 오랜 기간 저렴한 음식으로 판매됐다. 1963년 국내에 등장한 삼양라면의 값은 애초 10원이다가, 1970년대가 돼서야 20원대로 올라섰다. 1960년대 중반 서울의 시내버스 요금은 10원이었다. 지금 기준으로 보면, 현재 서울의 간선버스 기본요금은 현금가 1300원인데, 신라면 정가가 830원이다. 이에 농심 관계자는 “한끼 식사를 대신할 수 있는 신라면 한개 값이, 버스 한번 타는 값보다 낮다. 라면이 국민들에게 오래도록 사랑받는 음식이 될 수 있었던 이유는 그만큼 저렴하면서, 편리한 음식이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마트에서 라면을 다량 구매한 모습. 라면 블로거 지영준씨 제공
마트에서 라면을 다량 구매한 모습. 라면 블로거 지영준씨 제공

김훈 작가의 에세이집 <라면을 끓이며>(2015, 문학동네)에서 보듯, 라면은 문학 작품에서도 어려움과 슬픔, 고난을 이겨내는 계기가 되는 식품으로 그려진다. 최근 작가들은 라면을 가볍게 한끼 때우는 인스턴트 음식이 아닌, 훌륭한 식사로 지위를 높인다. 올해 3월 출간된 책 <지금 물 올리러 갑니다>(세미콜론) 저자 윤이나 작가는 “라면이 흔히 ‘가난한 사람이 먹는 음식’이란 이미지로 취급되지만, 그렇게 통속적이고 전통적인 방식으로만 라면을 소구하고 싶지 않다. 왜냐면 나만 해도 어려운 시기에만 라면을 먹은 것이 아니기 때문”이라고 했다. 윤 작가는 라면이 ‘유혹하는 맛’을 가졌으며 어떤 음식 못지않게 충분히 매력적이고 가치 있는 음식이라고 평가한다.

이제 라면은 한류의 한가운데에서 국제적 음식 문화를 선도하는 케이(K)푸드 역할도 톡톡히 하고 있다. 올해 초 농림축산식품부는 지난해 라면 수출액이 6730억원을 달성하며 전년도에 견줘 29.3% 증가했다고 밝혔다. 그 이유 중 하나가 미국에 랍스터맛, 과일맛, 스파게티맛 등을 수출했고, 중국에는 3배 매운맛 제품을 판매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라면은 오늘도 꾸준히 진화하고 있다.

김미향 기자 arom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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