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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사회일반

물음표가 느낌표로…지리산에서 들썩이는 ‘작은 변화’

등록 :2021-02-15 09:57수정 :2021-02-15 10:05

“공동체 활성화와 대안적 삶 가치 확산”
마을카페에서 시작된 변화의 날갯짓
아름다운재단 만나 ‘지리산권’으로

지역의 활동가 발굴하고 키우고 연결
지리산 작은변화지원센터의 실험 ‘눈길’
“일상의 작은 변화가 사회 바꿀 것”
2019년 10월 ‘작은 변화의 씨앗을 나누는 숲’을 주제로 열린 제5회 지리산포럼 참가자들이 손을 흔들고 있다. 지리산포럼은 지금과는 다른 사회를 열망하는 사람들이 지리산에 모여 아이디어와 경험을 나누는 행사로, 사회적협동조합 ‘지리산이음’이 주관한다. 지리산 작은변화지원센터 제공
2019년 10월 ‘작은 변화의 씨앗을 나누는 숲’을 주제로 열린 제5회 지리산포럼 참가자들이 손을 흔들고 있다. 지리산포럼은 지금과는 다른 사회를 열망하는 사람들이 지리산에 모여 아이디어와 경험을 나누는 행사로, 사회적협동조합 ‘지리산이음’이 주관한다. 지리산 작은변화지원센터 제공

서울에서 태어나 고등학교 교사로 일하던 김한범씨는 2016년 뭔가에 이끌리듯 지리산 자락에 스며들었다. 12년간의 교직생활을 뒤로하고 연고도 없던 경남 산청으로 덜컥 귀촌을 한 것이다.

“이곳 산청에 귀농·귀촌을 한 분들이 많고, 여러 가지 대안적인 움직임이 있다는 얘기를 전해 들었어요. 그런 곳이라면 내가 하려는 일에 공감하고 지지해주실 분들이 있지 않을까 기대했던 것 같아요.”

그가 마음에 두었던 일은 청소년 공간을 만드는 것이었다. 기존 학교교육 시스템에 회의를 품고 있던 터여서 갈증이 컸다. 여러 후원자들의 도움에 힘입어 2018년 10월 산청 청소년 자치공간 ‘명왕성’이 문을 열었다. 명왕성 설립과 운영 과정에서 가장 큰 도움을 준 곳은 ‘지리산 작은변화지원센터’(이하 변화센터)였다. 명왕성의 코디네이터로 일하는 김씨는 변화센터가 ‘지리산권’의 공익활동을 활성화하기 위해 지원하는 ‘작은 변화 활동가’이기도 하다. 지리산을 둘러싸고 있는 5개 시·군(전북 남원, 경남 함양·산청·하동, 전남 구례)을 뜻하는 지리산권에는 김씨를 포함해 15명의 작은 변화 활동가가 있다. 명왕성과 같은 커뮤니티 활동이나 새로운 실험들이 활발하게 이뤄진다.

■ “사람을 지원한다”

변화센터는 지리산권의 공익활동 지원을 통해 지역사회의 ‘작은 변화’를 만드는 것을 목표로 설립된 ‘변화지원조직’이다. 2018년 3월 아름다운재단과 남원지역 사회적협동조합 ‘지리산이음’이 함께 설립해 운영 중이다. 변화센터의 가장 큰 특징은 ‘사람’에 집중한다는 점이다. ‘지역을 바꾸는 것은 사업이 아니라 사람’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임현택 센터장은 “우리 센터의 역할은 선한 의지를 가진 사람을 찾아내고, 그들이 지역의 변화를 위해 벌이는 일이 잘 진행될 수 있도록 돕는 것”이라고 말했다. 여느 중간지원조직과는 달리, 지원에서 유연성을 발휘한다는 점도 돋보인다. 까다로운 조건 탓에 원하는 활동을 못하는 일이 없도록 최대한 활동 주체의 자율성을 보장한다.

지난해 4월 열린 작은 변화 활동가 워크숍을 마친 뒤 활동가들이 다른 이들이 그려준 자신의 얼굴을 손에 든 채 기념 쵤영을 하고 있다. 지리산 작은변화지원센터 제공 ​
지난해 4월 열린 작은 변화 활동가 워크숍을 마친 뒤 활동가들이 다른 이들이 그려준 자신의 얼굴을 손에 든 채 기념 쵤영을 하고 있다. 지리산 작은변화지원센터 제공 ​

‘작은 변화 활동가’ 지원 프로그램은 ‘사람 지원’이라는 변화센터의 지향을 잘 보여준다. 작은 변화 활동가는 ‘지리산권’에 변화의 씨앗을 뿌리는 사람들이라 할 수 있다. 5개 시·군에 한 곳당 3명씩 모두 15명이 활동 중이다. 자신이 사는 지역의 변화를 이끌면서 각자 하고 싶은 공익활동을 한다. 마음껏 활동을 펼칠 수 있도록 변화센터가 정기적으로 활동비를 지급한다. 새로운 활동에 나설 때는 씨앗기금을 지원한다. 활동가들 간의 교류와 소통, 교육 프로그램 등을 통해 스스로 성장할 기회도 주어진다.

‘사람’과 ‘자율성’이라는 지향점은 명왕성의 운영 방식에서도 엿볼 수 있다. 명왕성은 변화센터의 지원을 받는 ‘작은 변화’의 현장 가운데 하나다. 명왕성의 주인은 청소년들이다. 예산 편성과 집행, 이용 규정 등 모든 것을 청소년 운영진이 결정한다. 비청소년인 코디네이터는 조력자 역할에 머문다. 이곳에서 가장 ‘핫한’ 것은 ‘꿀알바’ 프로젝트다. 청소년의 자발적인 활동을 급여로 지원하는 사업이다. 친구에게 공부 가르쳐주기, 영화평 쓰기, 지역 단체 행사 도와주기 등 하고 싶은 일(알바)을 신청하면 청소년 운영진이 심사를 거쳐 급여를 지급한다. ‘쓸데없는 일’로 치부되곤 하는 청소년들의 활동에 대해 가치를 인정해준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코디네이터인 김한범씨는 “명왕성은 청소년들이 아무것도 하지 않고 쉴 수 있는 공간이다. 다만, 하고 싶은 일이 생기면 적극적으로 지지하고 후원해준다”며 “이런 새로운 실험을 시작하는 데 변화센터의 지원이 큰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꿀알바 프로젝트에는 변화센터의 씨앗기금이 지원됐다.

지난해 10월 남원시 산내면 마을카페 ‘토닥’에서 2020 지리산포럼의 한 주제섹션이 진행되고 있다. 지난해 지리산포럼은 ‘로컬 라이프’를 주제로 열렸다. 지리산 작은변화지원센터 제공
지난해 10월 남원시 산내면 마을카페 ‘토닥’에서 2020 지리산포럼의 한 주제섹션이 진행되고 있다. 지난해 지리산포럼은 ‘로컬 라이프’를 주제로 열렸다. 지리산 작은변화지원센터 제공

■ 마을카페에서 시작된 들썩임

지리산권 작은 변화의 날갯짓은 자그마한 마을카페에서 시작됐다. 2012년 남원시 산내면 주민들이 만든 ‘토닥’이다. 산내면은 1998년 시작된 실상사 귀농학교를 통해 귀농자가 꾸준히 모여든 곳이다. 주민 2000여명 가운데 500여명이 귀농·귀촌자다. 마을카페를 만들자는 논의도 귀농·귀촌자를 중심으로 이뤄졌다. 부산의 시민단체에서 일하다 귀촌한 임현택 센터장도 그중 한명이다. 토닥에서는 영화 상영, 크고 작은 공연, 강연 등이 끊임없이 이어졌다. 처음엔 낯설어하던 주민들의 발길도 차츰 잦아졌다. 문을 연 지 1년이 채 안 돼 토닥은 마을 커뮤니티 활동의 구심점으로 자리잡았다.

산내면 사람들은 토닥의 성공을 마중물 삼아 더 큰 꿈을 꾸기 시작했다. 지리산 주변 5개 시·군을 하나로 묶는 ‘지리산권’ 구상이다. 2013년 아름다운재단의 ‘변화의 시나리오 지원사업’에 이런 구상을 담은 ‘지리산 커뮤니티 이음’ 프로젝트 제안서를 제출해 선정됐다. 지역공동체 활성화와 대안적 삶의 가치 확산을 위해 ‘지리산이음’이라는 단체도 설립했다. 임현택 센터장은 “토닥의 경험을 지리산권으로 확장해, 지리산에 깃들여 사는 다양한 사람들의 삶과 이야기를 연결해보고 싶었다”고 ‘이음 프로젝트’의 취지를 설명했다.

지리산이음은 지리산권 곳곳에서 커뮤니티 활동을 하는 단체와 사람들에 대한 조사를 시작으로, 마을신문·공간·적정기술 등 마을공동체에 필요한 정보를 공유하는 각종 워크숍을 진행했다. 2014년에는 시골살이를 위한 정보와 기술, 지혜를 나누는 지리산 시골살이학교를, 2015년에는 전국의 혁신적인 활동가들이 모여 한국 사회의 대안적 미래를 상상하는 지리산포럼을 열기 시작했다. 이 과정에서 토닥은 ‘거점 공간’으로서의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비영리 임의단체였던 지리산이음의 조직 형태도 공익법인인 사회적협동조합으로 바뀌었다.

지난해 10월 열린 2020 지리산포럼 기간에 남원 작은변화포럼이 로컬섹션의 하나로 연 원탁토론이 끝난 뒤, 참가자들이 남원의 미래에 대한 소망을 적은 종이비행기를 날리고 있다. 원탁토론은 ‘포스트코로나 시대와 남원 시민사회의 역할’을 주제로 진행됐다. 지리산 작은변화지원센터 제공
지난해 10월 열린 2020 지리산포럼 기간에 남원 작은변화포럼이 로컬섹션의 하나로 연 원탁토론이 끝난 뒤, 참가자들이 남원의 미래에 대한 소망을 적은 종이비행기를 날리고 있다. 원탁토론은 ‘포스트코로나 시대와 남원 시민사회의 역할’을 주제로 진행됐다. 지리산 작은변화지원센터 제공

■ 작은 변화가 아름답다

이음 프로젝트의 ‘시즌2’라 할 수 있는 변화센터 설립은 시민사회 지원의 패러다임 전환을 모색하던 아름다운재단의 구상에서 비롯됐다. 바로 ‘지역의 작은 변화’ 지원이다. 홍리재희 아름다운재단 지역사업팀장은 “여러 해 동안 전국을 대상으로 공모지원사업을 해왔는데 수도권이 아닌 지역사회의 참여가 너무 저조했다. 지역에 그런 일을 할 만한 주체가 없었던 거다. 사람을 키우는 일이 무엇보다 시급하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지역에서 활동 주체를 발굴하고 그들의 역량을 강화하고 서로 연결하는 일을 할 ‘거점 조직’이 필요하다고 봤다는 얘기다. 거점 조직 모델 개발을 위한 6개월간의 현장조사를 거쳐 후보 지역 4곳 중 지리산권이 선정됐다. 마침 그곳에는 산내면을 넘어 지리산권으로 점차 활동 보폭을 넓혀가던 지리산이음이 있었다.

두 단체의 협업으로 문을 연 변화센터가 맨 처음 벌인 일은 지역의 활동가들을 찾고 연결하는 것이었다. 5개 시·군에 한명씩 협력 파트너를 두고 지역 사람들을 두루 만날 수 있도록 지원했다. 유지선 남원 작은변화포럼 대표도 그중 한명이다. 유 대표는 “남원지역의 활동가들을 만나 인터뷰를 해보니 다들 각자 분야에서 열심히 활동하는데 네트워크가 안 되어 있는 게 문제였다. 한달에 한번 저녁에 식사하면서 이야기하는 모임에서 시작해 점차 네트워크를 만들어 나갔다”며 “사람을 키우는 것을 중시하는 변화센터의 지원이 없었다면 불가능한 일이었다”고 말했다. 남원지역 시민단체 18곳이 참여한 작은변화포럼은 이런 과정을 통해 만들어졌다.

변화센터의 공모지원사업 중에는 ‘작은 변화의 시나리오’ ‘작은 교육’ ‘작은 조사’처럼 ‘작은’이라는 말이 들어간 것이 많다. 사회의 변화가 사람과 일상의 작은 변화에서 시작된다고 믿기 때문이다. 산내면에서 직조공방을 운영하며 지난해 ‘우리 동네 수공예 작업자들’에 대한 ‘작은 조사’ 활동을 한 조회은씨는 “변화센터 지원사업의 장점은 문턱이 높지 않아서 누구나 해보고 싶은 일을 할 수 있게 해준다는 점”이라며 “일상의 작은 변화가 큰 변화의 원동력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지리산 사람들은 올해 다시 한번 도약을 준비 중이다. ‘작은 변화 베이스캠프 들썩’이라는 공간을 마련하는 일이다. 전국 곳곳에서 작은 변화를 만들어가는 사람들이 일상적으로 모여 더 나은 변화를 모색하는 공간이다. 변화의 ‘물음표’가 지리산을 만나 ‘느낌표’가 될 수 있도록.

남원 산청/이종규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연구위원 jk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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