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5일 오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코로나19 주거 대책 마련 및 주거권 보장 촉구’ 기자회견에서 참가자들이 세입자 주거보호 대책을 요구하고 있다.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지난달 5일 오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코로나19 주거 대책 마련 및 주거권 보장 촉구’ 기자회견에서 참가자들이 세입자 주거보호 대책을 요구하고 있다.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현행 ‘주거기본법’은 최저주거기준을 14㎡(4평)으로 규정한다. 그 정도는 돼야 최소한의 인간다운 생활을 할 수 있다는 의미다. 하지만 이런 법 규정은 고시원이나 쪽방촌 사람들에게는 초현실적이다. 가장 열악한 주거공간으로 ‘최후의 주거전선’이라 불리는 쪽방은, 77.3%가 한 사람이 간신히 몸을 누일 수 있는 정도인 6.6㎡(2평) 미만이다. 채광이나 통풍은 사치다. 화장실이나 주방도 공동으로 쓴다. 방문 앞 좁은 골목길이 이웃과 만나 대화하는 유일한 ‘사회적 공간’이다.

서울시가 18일 1인당 주거면적을 15㎡(4.5평) 이상으로 규정하는 내용을 담은 지침을 발표했다. 이 지침은 지금 진행 중인 영등포 지역 쪽방촌 공공주택(소형 아파트) 사업에 먼저 적용한다. 서울시는 앞으로 다른 지역 쪽방촌과 고시원, 빈집 등을 활용한 임대주택 사업을 추진할 때 이 지침을 적용할 계획이다.

지침은 쪽방 거주자의 건강과 생활 방식 등을 고려해 세가지의 맞춤형 주거형태를 만들었다. 1인가구를 기본으로 하되 거주자의 특성에 따라 △1인실 △다인실 △특성화실 등 세가지로 구분했다. 1인실 넓이는 15㎡로 비교적 젊고 건강한 거주자를 대상으로 한다. 45㎡(13.6평) 크기의 다인실은 신체는 건강하지만 심리적으로 불안정해서 다른 거주자들과 함께 지내며 관리나 자극을 받을 필요가 있는 거주자를 위한 공간이다. 침실은 따로 쓰지만 화장실·주방·거실 등은 같이 쓴다. 33㎡(9.9평) 크기의 특성화실은 보호자의 도움을 받아야 하는 거주자를 위한 공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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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공주택의 ‘조합·배치’ 방식도 쪽방 주거자들의 생활방식을 배려했다. 기존 쪽방촌의 골목길을 본떠 입주민 집 가까이에 공용공간을 마련했다. 심리치료실, 자활프로그램실, 직업훈련실도 배치해 치료뿐 아니라 사회적인 역할을 경험할 수 있도록 배려했다. 기존에도 쪽방촌 주변에서 상담소가 운영됐지만, 상담기관이 거주공간 안으로 들어온 건 이번이 처음이다.

쪽방 거주자에 관한 서울시의 연구용역을 진행한 한영근 아키폴리건축사사무소 대표는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2012∼2017년 영등포 쪽방촌 리모델링 사업 총괄추진 단장으로 쪽방 거주자들을 만났던 경험을 활용해 연구용역을 진행했다”며 “쪽방 거주자들도 나이나 아픈 정도가 다르다. 공간을 탄력적으로 구성하는 게 이번 가이드라인의 핵심”이라고 말했다. 그는 “다인실의 경우 다른 사람과의 접촉을 통해 ‘내가 사회적으로 내 역할을 할 수 있구나’ 하는 의식을 가지도록 의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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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연구용역 결과를 보면 쪽방 거주자들은 59.1%가 기초생활수급자일 정도로 경제적으로 어렵다. 65살 이상인 1인가구가 35.5%로 가장 많았다. 절반 이상이 눈에 띌 정도로 신체적·정신적으로 아프다.

서울 시내 쪽방은 영등포동과 돈의동, 동자동 등 5개 지역에 모여 있다. 지난해 말 기준으로 314개동, 3830호에 3085명이 산다. 김양진 기자 ky0295@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