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수 겸 배우 설리(본명 최진리·25)가 떠난 지 1년이 지났다. 한국 사회에서 설리의 존재는 다른 20대 여성 아이돌과 조금 달랐다. 그는 ‘사고뭉치’처럼 여겨졌다. 때로 ‘무대에서 최선을 다하지 않았다’며 입길에 올랐고, 연애 사실을 밝히거나 방송에서 욕설을 했다. 누군가에겐 ‘균열’로 받아들여졌을지 모른다. 그저 갑갑한 ‘브래지어’를 하지 않았다는 이유만으로.
“인생은 설리처럼.” 설리가 살아 있을 때 20대 전후의 여성들 사이에서 유행처럼 퍼졌던 구호다. 1년 전 그가 갑작스레 세상을 떠났을 때 젊은 여성들이 절망과 분노를 느낀 이유다. 설리를 응원하던 여성들은 이제 그가 남기고 간 균열을 마주하고 섰다. 1주기를 맞아 13일 <한겨레>와 인터뷰한 20대 여성들은 “‘나’를 넘어 ‘우리’를 생각하게 됐다”고 입을 모았다.
기본소득당 대변인 신민주(26)씨는 설리 때문에 브래지어를 착용하지 않는 ‘탈브라 운동’을 시작했다. 브래지어를 ‘액세서리’로 이야기하는 여성 연예인은 처음이었다. ‘탈브라 운동’과 관련해 신씨가 한 언론과 인터뷰한 뒤, 그를 공격하는 수만건의 악성 댓글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외모를 지적하고 몸매를 품평하는 것은 물론, 구체적인 방법을 적으며 “죽이겠다”고 협박하는 댓글도 있었다. ‘내 몸, 내 인생은 내가 주체적으로 결정한다’는 당연한 선언에 이런 고통이 따라오는 줄은 몰랐다. “‘설리 노브라’가 48시간 동안 실시간 검색어 1위를 하는 나라에 나만 살고 있는 게 아니라 설리도 살고 있었던 거잖아요. 그걸 미처 생각지 못했던 것 같아 미안한 마음이 들었어요.”
지난해 4월 헌법재판소의 낙태죄 헌법불합치 결정이 나왔을 때 설리는 ‘영광스러운 날’이라고 지지했다. 대학원생 원아무개(25)씨는 그런 여성 이슈들에 공개적으로 목소리를 냈던 설리가 항상 고마웠다. 연예인이기 이전에, 여성을 둘러싼 억압과 차별에 예민하게 반응한다는 점에서 같은 세대라는 동질감도 느꼈다.
“젊은 여성은 ‘2등시민’이다.” 원씨는 설리를 통해 그걸 깨닫게 됐다. “배우 이성민한테 ‘성민씨’라고 했다가 설리가 누리꾼들에게 욕을 먹었어요. 예의가 없다고…. 방송에서도 다른 이들이 설리의 행동을 문제 삼는 게 눈에 보였어요. 많이 외로웠을 것 같아요.” 언론에서 설리가 “문제적 존재”로 묘사될 때면 “문제는 설리가 아닌 이 사회”라며 반발하고 싶었지만 그러지 못했다. 원씨는 설리가 떠난 뒤 자신이 ‘방관자’처럼 여겨진다고 했다. 그는 말했다. “대놓고 ‘페미니스트로서 싸우겠다’고 말하지 않았어도 설리만의 평화로운 방식으로 세상을 바꾸려고 했던 것들이 이제 와 회자되잖아요. 이제는 그런 이들에게 연대해야겠다는 다짐을 해요.”
직장인 이아무개(30)씨는 “지난 1년 우리 사회는 조금도 변하지 않았다”며 한숨을 쉬었다. 설리가 떠난 뒤 포털 연예 기사에선 댓글이 사라졌다. 하지만 지난 8월 한 여성 아이돌은 ‘페미니스트’ 문구가 적힌 티셔츠를 입어 입길에 올랐다. “댓글이 사라진 뒤 자극적인 반응을 일일이 확인하지 않을 수 있게 됐지만 비난하는 분위기까지 없어지진 않은 것 같아요. 사회는 지겹도록 변하지 않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모두의 페미니즘’ 대표 김예은(24)씨는 “설리를 규정하고자 했던 우리의 욕망을 돌아봐야 한다”고 말했다. 김씨는 설리가 입체적인 사람이라 좋았다고 했다. “의도했건 의도하지 않았건, 그냥 그렇게 자기 인생 태연하게 살아가는 모습이 되게 많은 힘이 되었던 것 같아요.” 설리는 떠나기 두달여 전 인스타그램에 자필 편지를 올리며 “삶은 저 혼자 살아가는 것이 아니란 생각이 듭니다”라고 했다. 1년이 지나 김씨도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다. “연대가 정말 중요하다는 걸 알게 됐어요. 이제는 설리와 비슷한 행보를 걷는 여성을 보면, 큰 힘이 되지 않을지라도, 꼭 응원을 보내야겠다고 다짐해요. 우린 혼자 걷는 게 아니에요.”
박윤경 기자 ygpark@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