낮은 성범죄 양형에 대한 여성들의 분노 속에 만들어진 누리집 ‘디지털교도소’가 무고한 이들에게 피해를 끼친 사실이 잇따라 확인되고 있다. 앞서 이 누리집에 신상정보가 공개된 대학생이 결백을 호소하다 숨진 데 이어, 또 다른 피해자의 결백이 경찰 수사에서 확인됐다. 성범죄로부터 여성을 보호하겠다고 나선 이들의 행동이 다른 사람의 인권을 크게 침해한 것이다. 국가의 사법 기능을 무시한 ‘사적 제재’를 우리 사회가 어떻게 봐야 할지 질문을 던진다.

디지털교도소에 게시된 뒤 채정호 교수에게 잇따른 협박 문자.
디지털교도소에 게시된 뒤 채정호 교수에게 잇따른 협박 문자.

“죽을 준비 해라.” “죽어, 제발.” 채정호(59) 가톨릭대 의대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이런 저주와 욕설이 담긴 문자를 하루에도 수십 통씩 받는다. 그나마 많이 줄었다. 지난 6월 하순 디지털교도소가 채 교수의 휴대전화번호, 사진, 직장 등 신상정보를 누리집에 올렸을 때는 하루에 수백 통의 욕설 문자와 협박 전화가 왔다.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도 그를 처벌해 달라는 글이 올라왔다. 이 사실이 알려지자 학회에선 ‘비윤리적인 의사’라며 윤리위원회에 회부했고 치료했던 환자는 ‘믿을 사람이 없다’고 연락을 해왔다. 어느 날 갑자기 사회적 죽음을 선고받은 것이다.

그러나 지난달 하순 경찰 수사 결과가 나오면서 상황은 반전됐다. 채 교수가 디지털교도소를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하자 수사에 나선 대구지방경찰청은 그의 휴대전화에서 메시지 10만건 등을 분석한 뒤 “디지털교도소와 대화를 나눈 이는 채 교수가 아니다”라고 결론 냈다. 디지털교도소가 주장하는 시간대에 채 교수가 텔레그램에 접속한 적도 없으며, 휴대전화 속 메시지 9만9962건에서 드러난 언어 습관이 디지털교도소가 게시한 메시지 속 말투와는 전혀 다르다는 게 경찰의 설명이다. 채 교수를 사칭한 이가 디지털교도소에 메시지를 보냈거나, 누군가 메시지를 합성해 조작했을 가능성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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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지방경찰청이 대한신경정신의학회에 보낸 의견서.
대구지방경찰청이 대한신경정신의학회에 보낸 의견서.
대구지방경찰청이 대한신경정신의학회에 보낸 의견서.
대구지방경찰청이 대한신경정신의학회에 보낸 의견서.

피해를 입은 이는 채 교수만이 아니다. 앞서 3일엔 서울의 한 대학생이 ‘성착취물 제작을 의뢰했다’며 디지털교도소가 신상정보를 공개하자 자신은 결백하다고 주장하다 숨졌다. 7월엔 엉뚱한 사람을 성범죄자로 지목했다가 “법적 책임을 지겠다”며 삭제한 일도 있다. 성범죄에 미온적인 공권력을 대신해 성범죄자들의 신상을 공개해 피해자를 위로하겠다며 출발했지만 무고한 이들의 삶까지 뒤흔든 것이다. 신상공개 제도는 ‘사회적 매장’에 가까운 효과를 낳기 때문에 성폭력 범죄자에 대해서도 심사를 통해 제한적으로 적용하고 있다.

무고한 피해자가 된 채 교수는 사건 이후 울분장애와 우울증에 시달리고 있다. 그는 8일 “누가 나를 때렸으면 경찰에 신고해 잡게 할 텐데 누가 했는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고통을 받아왔다. 그나마 수사 결과가 나온 뒤 죽음의 고통에서 벗어난 것 같다”고 말했다. 채 교수는 “트라우마 연구자로서 성폭력 피해자들의 트라우마가 얼마나 큰지 알기에 나 또한 성폭력을 엄벌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아무리 의로운 일을 해도 생명보다 귀할 수는 없다”며 “죄가 확인되지 않은 이들을 이렇게 공개하는 건 범죄행위”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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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은 현재 디지털교도소 관련 고소·고발 사건들을 취합해 수사를 벌이고 있다. 대구지방경찰청 관계자는 “서버는 해외에 있으며 운영자는 여러 명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한겨레>는 디지털교도소 운영자에게 입장 표명을 요청했으나 답변을 받지 못했다. 디지털교도소는 이날 오전 10시30분께부터 폐쇄된 상태다.

전광준 기자 ligh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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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검증 없이 사회적 매장…“사법체계안 성범죄 단죄 강화를”

신상공개 ‘디지털교도소’ 논란 확산
성범죄자에 관대한 처벌 맞서 탄생
정의 내세워 혐의자들 ‘사적 응징’

공익 인정받은 ‘배드 파더스’와 달리
자의적 신상공개, 명예훼손 처벌 소지
사실 아닐 경우 회복 불가능한 피해

“국민 눈높이 맞는 신상정보 공개나
양형기준 상향 등 공론의 장 돼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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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범죄자에 대한 사법부의 ‘솜방망이 처벌’을 대신해 가해자를 응징하겠다는 명분으로 형사처벌 여부와 무관하게 성범죄 혐의자들의 신상정보를 공개해온 누리집 ‘디지털교도소’의 위법성 논란이 확산되고 있다. 전문가들은 무분별한 신상 공개는 현행법 위반 소지가 있고 사실이 아닐 경우 회복될 수 없는 피해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를 나타내고 있다.

디지털교도소는 지난 6월 “사법부의 솜방망이 처벌로 범죄자들은 점점 진화하며 레벨업을 거듭하고 있다. 대한민국의 악성 범죄자에 대한 관대한 처벌에 한계를 느끼고, 이들의 신상을 직접 공개해 사회적인 심판을 받게 하려 한다”며 누리집 문을 열었다. 활동을 시작한 직후에는 ‘웰컴투비디오’ 운영자 손정우(24)의 사진과 출신 학교 등을 공개했다. 세계 최대 규모 아동·청소년 성착취물 누리집을 운영하고도 징역 1년6개월형에 그친 사법체계에 대한 문제 제기였다. 최근 대법원 양형위원회가 2014년부터 2018년까지 디지털성범죄 관련 1심 징역형 선고 1823건을 조사한 결과, 아동·청소년 성착취물 제작·배포 등의 혐의로 기소돼 실형을 선고받은 비율은 12%뿐이었다. 디지털성범죄 피해자들은 온라인상에 계속 떠도는 성착취물로 2차 피해를 겪는데도 가해자의 절대다수는 집행유예 등의 가벼운 처벌을 받고 있는 현실에, 디지털교도소는 신상 공개라는 자체 징벌을 기획한 셈이다.

그러나 성범죄자 신상 공개는 자칫 공개 대상자에게 회복할 수 없는 피해를 주기 때문에 현행 형사법 체계 안에서도 신중하게 활용되고 있다. 죄를 저질렀다고 믿을 만한 충분한 증거가 있어야 하고, 국민의 알 권리 보장과 범죄 예방 등 오직 공익을 위해 필요한 경우에만 경찰 신상공개심의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가능하도록 엄격히 제한된다. 심의위가 공개를 결정해도 공개 대상자가 행정소송을 낼 수 있는 불복 절차도 규정돼 있다.

이 때문에 디지털교도소처럼 자의적인 성범죄 피의자 신상 공개는 명예훼손으로 처벌될 소지가 있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정보통신망법에서는 ‘비방 목적’으로 사실을 적시하면, 그 내용의 진위와 상관없이 명예훼손이 인정되기 때문이다. 형법에서는 진실한 내용을 공익 목적으로 알린 경우에는 명예훼손으로 처벌하지 않지만 디지털교도소의 신상 공개가 이런 위법성 조각 사유에 해당할지는 확실치 않다.

양육비 지급을 위한 ‘배드파더스’ 누리집은 공익 목적을 인정받은 사례다. 이혼 뒤 양육비를 지급하지 않는 부모의 인적사항을 공개한 배드파더스 관리자가 명예훼손 혐의로 기소됐지만 지난 1월 법원은 “다수의 부모와 자녀가 양육비를 받지 못해 고통받는 상황에 대한 문제를 제기하고 양육비 지급 촉구를 주된 목적으로 한 것으로, 공익을 위한 것”이라며 무죄 판단했다. 그러나 익명을 요구한 한 변호사는 “양육비 지급 촉구를 목적으로 공익성을 중시한 배드파더스와 달리 디지털교도소는 범죄 예방 효과라는 취지를 상쇄할 만큼 폐해가 크고 충분한 검증 절차나 피해를 최소화할 장치도 부족해 공익성이 있다고 보긴 어렵다”고 설명했다. 김보라미 변호사도 “사적 제재는 현행법 위반 소지가 있고 사실이 아닐 경우 회복할 수 없는 피해를 줄 수 있다”고 지적했다.

대법원 판례에서는 ‘국민이 알아야 할 공적 관심 사안으로, 여론 형성이나 공개 토론에 기여하는지’ 등을 고려해 명예훼손적 표현의 공익성을 판단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승재현 한국형사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피의자 인권을 고려한다는 이유로 신상 공개마저 제한돼 피해자를 구제할 공론의 장이 부족했다”며 “국민 눈높이에 맞는 신상 공개 제도나 양형기준 등을 촉구하는 공론의 장이 돼야 한다”고 말했다.

조윤영 장필수 기자 jyy@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