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마사회 비리를 폭로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은 고 문중원 기수가 지난 9일 영면에 들어갔습니다. 사망 102일만입니다. 장례는 순탄치 않았습니다. 한국마사회가 영결식을 두 시간 앞두고 돌연 합의안 ‘공증’을 거부했기 때문입니다. (※문중원 기수 시민대책위는 일단 영결식을 치렀고 수일 내에 공증 절차를 재개할 방침입니다.)
이에 앞서 영결식 3일 전인 지난 6일 유가족을 대리해 협상을 진행한 민주노총과 한국마사회는 경마제도 개선과 경쟁성 완화를 골자로 한 합의안에 합의했습니다. 유가족이 1순위로 요구해 온 ‘책임자 처벌’에 대한 대책은 여전히 미흡했습니다. 유가족은 책임자 파면까지 요구했으나, 한국마사회는 ‘경찰수사 결과를 지켜보고 추후에 징계 여부를 정하겠다’는 입장을 고수했습니다. 결국 이 부분은 ‘고 문중원 기수 사망사고 책임자가 밝혀질 경우 형사 책임과 별도로 마사회 인사위원회에 면직 등 중징계를 부의하겠다’는 선에서 마무리됐습니다. 정찬무 공공운수노조 조직쟁의 국장은 “‘꼭 경찰이 아니더라도 시민대책위가 책임자의 잘못을 입증할 결정적 증거를 확보한다면 징계를 하겠다는 의미”라며 “결국 마사회가 자체적으로 무언가를 하겠다는 내용은 담지 못했기에 부족하지만 100일 넘게 장례를 치르지 못한 유가족 마음이 오죽할까 싶어 합의할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습니다.
유가족이 그토록 원했던 책임자 처벌, 과거엔 제대로 이뤄졌을까요? 결론부터 말하면 ‘아니다’에 가깝습니다. 2017년에도 고 박경근 이현준 마필관리사가 석 달 간격으로 목숨을 끊었습니다. 한 사업장에서 두 노동자가 자살했지만, 누구도 사내 징계를 받지 않았습니다. 최아무개 부산경남경마본부장과 박아무개 부산경마처장을 비롯해 총 4명이 대기발령을 받았지만, 대기발령은 말 그대로 징계수위가 확정되기 전까지 대기하라는 명령일 뿐이지 징계로 보기는 어렵습니다. 실제 한국마사회 인사규정도 ‘견책·근신 ·감봉 ·정직· 면직’만을 징계로 규정하고 있습니다. 이들 가운데 누구도 인사위원회에 회부되지 않았고, 대기발령이 끝나고 업무에 복귀했습니다. 이에 대해 한국마사회 관계자는 “커리어를 쌓는 데 있어서 업무에 배제되는 것 자체가 큰 압박이고, 징계로 이어질 만큼 업무상 큰 과오가 없었다”고 말했습니다.
한 사업장에서 사망사고가 연이어 발생하면 고용노동부가 특별근로 감독을 합니다. 한국마사회도 특별근로감독을 받았습니다. 마사회에 따르면 이양호 전 회장이 기소유예 처분을, 당시 부산·제주 본부장이 벌금형을 선고받았습니다. 이처럼 수사기관으로부터 형사처분을 받았는데도 이에 뒤따르는 사내 징계는 없었습니다. 이에 대해 한국마사회 관계자는 “형사처벌을 받을 경우 사내 징계 사유가 되는데, 이 건 같은 경우 특별근로감독 결과를 수사기관이 마사회에 통보해주지 않아 사후에 인지한 것으로 보인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폰터뷰 취재진이 입수한 <2019년 하반기 내부감사> 자료는 이 관계자와 다른 얘기를 하고 있습니다. ‘2017년 부산경남경마공원 고용노동부 특별감독에 대한 수사결과가 통보됐으나 적정한 내부조치(징계벌)가 이뤄지지 못했다, 형사처벌을 받았더라도 이와 별개로 내부적 징계가 이뤄져야 하나, 이와 관련한 기준이 없어 적정한 조치가 이뤄지지 못했다.’라는 겁니다. 정리하면 한국마사회는 ①형사처벌을 받은 사람을 사내 징계해야 한다는 걸 알았고 ②형사처벌이 이뤄졌다는 사실도 알았으나 아무 조치도 취하지 않은 겁니다.
문제는 또 있습니다. 2017년 한국마사회는 최아무개 부산경남본부장과 박아무개 부산경마처장을 대기발령하고, 두 사람 대신 사태를 수습하라며 김아무개씨를 부산경마처장 자리로 보냅니다. 이 김아무개씨는 고 문중원 기수가 유서에 마사대부 심사 관련 의혹을 폭로하며 유일하게 실명을 적었던 바로 그 인물입니다. 그러니까, 2017년 두 노동자 자살 사건을 수습하기 위해 온 책임자가 2년이 흐른 뒤 또 다른 자살 사건의 가해자로 지목된 셈입니다. 2017년 노동자 자살의 책임자가 밝혀지고 그에 합당한 처벌이 내려졌어도 2년 만에 또다시 두 명의 노동자가 죽음을 택하는 비극이 되풀이됐을까 의구심이 드는 대목입니다.
‘징계의결을 요구해야 할 사건 또는 인사위원회에서 심의 중인 사건은 감독기관 또는 수사기관에서 조사 중이거나, 법원에 계류 중인 것과는 관계없이 징계 절차를 진행해야 한다. 다만, 그 결과를 고려해 처리하는 것이 공정한 판단에 도움이 된다고 인정될 때는 그러하지 아니한다.’
한국마사회 인사규정 제45조입니다. 수사와 재판이 진행 중인 것과는 관계없이 징계 절차를 진행해야 한다는 원칙을 말하고 있습니다. 한국마사회는 경찰수사 결과가 나와야 징계할 수 있다는 입장을 고집하고 있지만, 이는 마사회의 원칙에도 부합하지 않는 셈입니다.
2005년 개장 이후 한국마사회 부산경남경마센터에서만 일곱 명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습니다. 고 문중원 기수 아내 오은주씨는 인터뷰 내내 울먹이며 “제8의 문중원을 막아달라”고 호소했습니다. 제8의 문중원을 막는 가장 빠르고 정확한 길이 이 원칙에 담겨 있습니다.
취재: 최윤아 기자 ah@hani.co.rk
연출: 김현정 피디 hope0219@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