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 타버렸어. 어떻게 해.”
잿더미가 돼버린 2층 공장 앞엔 까맣게 타버린 콩나물 원두가 나뒹굴었다. 성치 않은 몸을 가누며 공장 앞에 선 박아무개(33)씨의 얼굴이 충격으로 일그러졌다. 화마가 쓸어가 버린 공장에서 나흘 전까지 박씨는 콩나물을 길렀다. 노란 콩나물이 희망처럼 피었던 330㎡(연면적) 크기의 콩나물공장 앞엔 노란 소방통제선이 둘러졌고, 나물 풋내 대신 매캐한 탄내만 그득했다.
10일 아침 <한겨레>가 인천 강화의 발달장애인 공동체 ‘우리마을’에서 만난 박씨는 3년 동안 이곳 공장에서 일해왔다. 인천의 한 보육원에서 자란 그는 성인이 된 뒤 시설에서 자립해 일자리를 구했지만 적응이 쉽지 않았다. 사회는 발달장애인을 반기지 않았다. 2016년 우리마을을 만난 것은 박씨의 삶에 작은 빛이었다. 지난해 뇌혈관 수술을 하고 왼손에 마비가 온 뒤에도, 콩나물공장 일은 크게 힘들지 않아 생계를 이어올 수 있었다. 그런 삶의 터전이 하룻밤 새 폭삭 재가 되었다.
공장에 불이 난 건 지난 7일 새벽이었다. 콩나물을 배달하는 운송기사가 연기를 처음 확인하고 새벽 4시44분께 화재신고를 했다. 강화소방서 쪽은 “비가 온 날이라 누전일 가능성이 커 보인다”고 밝혔다. 신고 7분 만에 소방대가 도착했지만, 화재에 취약한 샌드위치 패널 구조 건물이 이미 있는 대로 화기를 빨아들인 뒤였다. 기숙사와 공장동이 떨어져 있어 인명 피해는 없었지만 콩나물공장은 뼈대만 남기고 전소했다. 기숙사에서 사는 김성태(36)씨는 “새벽에 삐용삐용 소리가 나서 소방서 훈련을 받는 줄 알았는데 아침에 보니까 다 타버려서 많이 놀랐다”고 말했다.
화재 현장을 보는 이대성 신부의 속도 까맣게 타들어 간다. 2000년 김성수 전 대한성공회 대주교가 발달장애인들의 자립을 위해 우리마을을 만든 뒤 이 신부는 50여명이 함께 일하는 우리마을의 살림을 도맡아왔다. 발달장애인들이 최저임금보다 많은 급여를 받는 동시에 공동체 안에서 문화생활까지 누릴 수 있게 하자는 게 우리마을의 목표였다. 단자 조립 공장도 있지만 풀무원, 아이쿱생협 등에 질좋은 콩나물을 납품해온 콩나물공장은 그 중심이었다. 하루에 2톤의 콩나물을 수확해 1년이면 20억원을 벌었다. 그러나 하룻밤 새 기계 비용을 포함해 20억원 가량의 손실이 났다. 복구 기간도 6개월 넘게 걸릴 것으로 보인다. 이 신부는 “공동체 구성원들 50명의 생계가 달려있던 곳인데 보험금으론 턱없이 부족하다”며 “연고가 없는 이도 있고, 가족의 생계를 혼자 꾸려가는 친구도 있는데 현재로선 막막할 뿐”이라고 말했다.
운전기사 보조로 일하다 2017년 이곳으로 온 유준성(40)씨도 화재 현장을 보며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하루빨리 다시 공장이 만들어졌으면 좋겠어요. 제 꿈은 그냥 다시 친구들과 같이 일하는 거에요.”
강화/배지현 기자 beep@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