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인권위원회(인권위)가 유엔(UN) 경제적·사회적·문화적 권리규약위원회(사회권위)에 한국 정부가 제출한 보고서에 대한 의견서를 제출하면서 차별금지법 제정에 대해 정부가 이행 노력을 보이지 않고 있다고 비판했다.
인권위는 한국 법무부가 유엔 사회권위에 제출한 ‘기업과 인권’, ‘차별금지법’, ‘노조 할 권리’ 등 3개 권고에 대한 후속조치 상황 등을 담은 보고서에 대한 인권위 의견서를 사회권위에 제출했다고 13일 밝혔다.
인권위는 먼저 ‘기업과 인권’과 관련해 “지난해 12월 태안화력발전소에서 일하는 비정규직 하청노동자의 사망 사건을 계기로 ‘산업안전보건법’이 개정돼 시행 예정이지만, 법 개정 이후에도 유사한 사고가 지속해서 발생하고 있다”며 “개정된 법률의 실효적인 적용과 이른바 ‘위험의 외주화’ 문제에 대한 정부의 근본적인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또 “국외에서 공장을 운영하는 대한민국 사업자가 현지 노동자에게 밀린 임금을 지급하지 않고 도주한 사건이 발생하는 등 국외 진출 대한민국 기업에 의한 현지 노동자 및 주민에 대한 인권침해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며 정부의 관련 실태조사 및 종합적인 대책 마련을 촉구했다.
인권위는 이어 ‘차별금지법’과 관련해 ‘포괄적 차별금지법 제정’을 조속히 마련할 것을 제안했다. 인권위는 “최근 한국 사회가 여성, 이주민과 난민, 성소수자 등 사회적 소수자에 대한 혐오표현이 심해지면서 이들에 대한 차별이 조장·강화되고 있는 상황”이라며 “2006년 7월 인권위가 차별금지법의 제정을 권고한 이후 현재까지 포괄적인 차별금지법 제정을 위한 정부의 구체적·가시적 진척은 확인하기 어렵고 정부의 이행 노력도 엿보이지 않으며, 유엔의 지속적인 권고에도 불구하고 포괄적인 차별금지법 제정을 전면적으로 드러내지 않고 있는 실정”이라고 지적했다. 이와 관련해 인권위는 지난 2월 ‘혐오차별대응특별추진위원회’를 구성해 혐오와 차별 문제에 대한 공론화와 실태조사와 연구, 예방을 위한 가이드라인 마련 등을 추진하고 있다. 인권위는 “날로 심각한 양상으로 치닫고 있는 대한민국 사회의 혐오와 차별의 문제를 법적 근거나 제도적 지원 없이 국가인권기구가 단독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라고 짚었다.
아울러 ‘노조 할 권리’와 관련해서는 “현행법상 교섭대표 노동조합에만 단체교섭 당사자의 지위를 부여함으로써 여전히 소수 노동조합의 단체교섭권이 침해되는 등 여전히 해고자 등 일부 노동자와 공무원이 부분적으로 단결권 행사가 제한되고 있다”며 “노동기본권 행사에 있어 배제되는 노동자가 없도록 지난해 12월 인권위가 권고한 국제노동기구(ILO) 제87호·제98호(결사의 자유·단결권 보장) 기본협약을 조속히 비준하여야 한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앞서 사회권위는 2017년 10월 △한국 기업의 국외 인권침해 대응 △포괄적 차별금지법 제정 △노조 할 권리 보장 등을 주된 내용으로 하는 ‘제4차 대한민국 정보보고서’를 통해 최종 견해를 발표하고, 한국 정부에 이 견해를 국가인권행동기본계획에 반영할 것을 권고하고, 18개월 안에 후속 보고서를 제출하도록 요청한 바 있다. 이에 정부는 지난 4월 사회권위의 주요 권고 이행상황 등을 담은 후속 보고서를 사회권위에 제출했다. 유엔 사회권위는 정부가 보고한 후속 조처와는 별도로 정부의 이행상황 등을 보다 정확하게 파악하기 위해 국가인권기구와 시민단체로부터 의견을 받는 절차를 마련해 놓고 있다.
권지담 기자 gonji@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