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이스북에서 활동하는 미군 프로필 가짜 계정(왼쪽)과 나이지리아·가나 등 서아프리카에 본부를 두고 활동하는 국제사기조직 스캠네트워크 조직원이 피해자에게 페이스북 메시지를 보내 돈을 요구하고 있는 화면(오른쪽). 서울지방경찰청 제공
페이스북에서 활동하는 미군 프로필 가짜 계정(왼쪽)과 나이지리아·가나 등 서아프리카에 본부를 두고 활동하는 국제사기조직 스캠네트워크 조직원이 피해자에게 페이스북 메시지를 보내 돈을 요구하고 있는 화면(오른쪽). 서울지방경찰청 제공

“저는 이라크에 파병 중인 미군 장군이에요. 교통사고로 아내와 아이들이 죽었습니다. 포상금과 재산을 보내줄테니 나와 같이 살자.”

미혼인 ㄱ(57)씨는 지난해 4월 카카오스토리에서 자신을 미군이라고 소개하는 스티브(가명)로부터 메시지를 받았다. ㄱ씨는 스티브와 매일 카카오톡으로 메시지를 주고받으며 친분을 쌓았다. 스티브는 카톡으로 ㄱ씨에게 자신의 신분증까지 보여줬다. 친분을 쌓아가던 중 스티브는 ㄱ씨에게 “아내와 아이들이 교통사고로 모두 죽어 당신과 함께 살고 싶다”며 청혼을 했다. 그러면서 포상금과 재산을 한국으로 보낼테니 그 돈으로 함께 살자고 말했다. 이후 스티브는 ㄱ씨에게 “내 재산을 한국으로 옮겨줄 해운회사를 섭외했다. 재산을 보낼 운송료를 보내달라”고 말했다. ㄱ씨는 적게는 수백만원에서 많게는 9천만원까지 여러 차례 스티브의 계좌로 돈을 보냈다. 그러던 그해 6월, 매일 오던 스티브의 카톡 메시지가 갑자기 뚝 끊겼다. 이후 스티브는 잠적했다. ㄱ씨가 스티브에게 두달 동안 보낸 돈은 4억3천만원에 달했다.

서울지방경찰청 외사과(국제범죄수사2대)는 이른바 ‘로맨스 스캠’ 등의 수법으로 ㄱ씨 등 23명에게 약 14억원을 뜯어낸 혐의(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로 국제사기조직 ‘스캠네트워크(Scam Network)’의 한국 지부장인 40살 나이지리아인 1명과 한국인 ㄴ(64)씨 등 조직원 7명을 구속했다고 2일 밝혔다. 로맨스 스캠은 에스엔에스(SNS)를 통해 접근해 친분을 쌓은 뒤 거액의 돈을 가로채는 감정 사기를 일컫는다. 경찰은 이들이 나이지리아와 가나 등 서아프리카에 본부를 두고, 한국·중국·홍콩·인도 등에서 범행을 저질렀다고 밝혔다.

광고

경찰의 설명을 종합하면, 이들은 페이스북이나 카카오톡 등으로 피해자에게 접근해 친분 관계를 쌓은 뒤 돈을 요구하는 전형적인 ‘스캠’ 수법을 범죄에 이용했다. 경찰은 이들이 2017년 8월부터 지난해 6월까지 페이스북 등 에스엔에스나 카카오톡 등 메신저를 통해 자신을 ‘시리아에서 포상금을 얻은 미군’ ‘거액을 상속받은 미국 외교관’ 등으로 소개하며 피해자들에게 접근했다고 밝혔다. 피의자들은 이런 방법으로 친분을 쌓은 뒤 피해자들에게 한국으로 재산을 보내는 데 필요한 항공료·통관비·보관비 등을 요구한 뒤 대포통장으로 송금받았다. 경찰은 현재 나이지리아 본부 총책 등 9명을 추적 중이며 실제 피해 액수는 1백억원대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이들은 친분을 쌓는 데만 짧게는 2주에서 길게는 1년 동안 시간을 들이는 등 치밀한 수법을 썼다. 피의자들은 “나는 미국 국적의 군인”이라며 데이비드·윌리엄 등 가짜 이름으로 자신을 소개한 뒤 자신이 이곳에서 어떻게 생활을 하고 있는지 안부 얘기를 주로 하며 자연스럽게 접근했다. 이후 피해자의 인적사항이 드러날 수 있는 질문을 하고 이들이 흥미를 가질 만한 주제들로 대화를 나누며 친분을 쌓았다. 피의자들은 “나는 원유시추선 직원인데 허리케인으로 고장 난 드릴과 파이프 수리비를 30% 이율로 빌려달라”고 하고 돈을 받은 뒤 잠적하는 이른바 ‘비즈니스 스캠 ’수법도 범행에 사용했다. 피의자들은 돈을 뜯어낸 뒤 즉시 잠적해 ‘머니그램’ 등으로 가나·나이지리아 등 현지로 직접 송금했다. 머니그램은 우편환송금의 일종으로, 돈을 받는 사람의 국가·이름·주소·비밀번호 등을 기재하면 외국에서 신분과 비밀번호 확인 뒤 돈을 수령하는 방법이다.

광고
광고

경찰은 이들이 2012년부터 한국과 본국을 오가며 체류 기간을 늘려가면서 범행을 저질렀다고 밝혔다. 경찰 관계자는 “구속된 7명 가운데 한국인 1명과 한국 국적의 나이지리아인 1명을 제외한 5명 모두 난민 신청을 한 상황이다. 난민 신청을 통해 체류 기간을 벌다가 난민 소송이 끝나면 한국에서 나갔다 다시 들어와서 관광비자로 체류하며 범행을 저지르는 방식이 반복됐다”고 말했다.

경찰은 “심리적으로 외로운 중·장년층이 스캠 수법에 잘 속는다”며 “특히 외국인에게 송금할 때는 확인을 거듭하는 등 신중해야 한다”고 밝혔다. 아울러 경찰은 “인터폴 등을 통해 나이지리아 등 서아프리카 국가에 공조수사를 요청할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오연서 기자 loveletter@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