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 주> 올해는 3·1운동과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입니다. 역사적인 해를 맞아 <한겨레>는 독자 여러분을 100년 전인 기미년(1919)의 오늘로 초대하려 합니다. 살아 숨 쉬는 독립운동가, 우리를 닮은 장삼이사들을 함께 만나고 오늘의 역사를 닮은 어제의 역사를 함께 써나가려 합니다. <한겨레>와 함께 기미년 1919년으로 시간여행을 떠날 준비, 되셨습니까?

거사일을 하루 앞둔 28일 독립선언서 2만1천매가 무사히 전국으로 배포됐다. 종교계와 학생들이 힘을 합쳐 이뤄낸 개가였다. 보성사에서 선언서를 인쇄한 지 하루만의 일로 통신과 교통의 제약을 고려하면 실로 기적에 가까운 일이다.

먼저 천도교는 북부 지방을 중심으로 배포에 나섰다. 천도교 신자인 안상덕(39)은 2천매를 가지고 강원도와 함경도로 향했다. 김상열은 3천매를 가지고 평안도로 출발하였고 이경섭(45)은 1천매를 받아 황해도 지역 배포에 나섰다. 보성사 직원 인종익도 2만매를 받아 전라북도와 충청북도로 떠났다.

기독교계 인사 중에는 이갑성(33)과 함태영(46)이 배포를 주도했다. 청년층을 대신해 민족대표로 이름을 올린 이갑성은 강기덕에게 1500매를 보내 학생들로 하여금 경성지역에 배포하도록 요청하였다. 이날 밤 정동교회에는 10여 명의 중등학교 학생 지도자들이 모여 선언서를 나눠 가졌다. 또한 이갑성은 이용상에게 300~400매를 주어 경상도에 배포하도록 하였다. 세브란스 의전에 다니던 김병수(21)에게는 100매쯤 주면서 고향 김제와 가까운 전북 군산 지방에 배포하도록 지시하였다. 함태영은 600매 정도를 평양에 보내고 남은 600매를 최연소 민족대표로 참여한 김창준(29)에게 전달하였다. 불교계에서는 한용운(40)이 배포를 맡았다. 28일 밤, 보성사 사장 이종일(61)로부터 3천매의 선언서를 넘겨받은 한용운은 계동의 자택으로 학생들을 긴급 소집하였다. 잡지 <유심>을 만들기도 한 그의 자택은 그를 따르던 학생들의 사랑방이었다. 이날 모인 학생들은 중앙학림(혜화전문학교 전신, 현 동국대)에 다니던 ‘유심회원’ 9명으로 한용운은 이들에게 경성과 남부지방에 배포하도록 지시하였다. 거사의 기획과 실행까지 종교계와 학생들은 하나였다.


△참고문헌
김정인, <오늘과 마주한 3·1운동>(책과함께·2019)
조한성, <만세열전>(생각정원·2019)
정운현, <3·1혁명을 이끈 민족대표 33인>(역사인·20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