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나는 사람마다 드라마 <스카이(SKY) 캐슬> 이야기다. 대한민국 상류층이 자신들의 부와 지위를 대물림하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자식 교육에 목숨을 거는 과정을 그린 이 드라마는 상류층에 대한 풍자와 함께 치열한 입시 경쟁 현실을 날것 그대로 드러내 많은 이의 공감을 사고 있다. 최근 이 드라마는 제이티비시(JTBC) 드라마 역대 최고 시청률을 깼고, 19일엔 전국 시청률 22.3%(닐슨코리아 제공, 유료가구 기준)를 기록하며 비지상파 채널 최고의 시청률을 세웠다. 회가 거듭될수록 인기가 치솟는 이 드라마 내용을 둘러싸고 각종 교육 담론도 쏟아지고 있다. <한겨레>는 교육 담론의 당사자인 학생, 교사, 부모, 교육 전문가들에게 ‘내가 본 스카이 캐슬’이라는 주제로 다양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스카이 캐슬’이라는 프리즘을 통해 각자가 생각하는 현실의 이야기를 하다 보면, 어느 지점에선가 공감대를 마련할 수 있지 않을까. 학생과 교사들의 목소리를 들어본 1편에 이어 2편에서는 부모들과 교육 전문가의 다양한 의견을 들어봤다.

■ 부모들이 말하는 ‘내가 본 스카이 캐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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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갭(차이)이 느껴지죠. 제 주변에는 그렇게까지 하는 부모들은 없거든요. 기껏해야 아이가 원하는 학원 보내주는 정도죠. 그런데 그런 일들이 현실에서 있다고들 하고, 드라마 인기로 입시 코디네이터 찾는 사람이 늘었다는 기사를 보며 씁쓸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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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광역시에서 고등학교 3학년과 중학교 2학년 자녀를 키우는 학부모 이은영(가명)씨의 말이다. “누구나 내 자식이 좋은 대학 가면 좋겠고, 흙탕물은 안 밟았으면 하는 바람”은 있다. 그래서 드라마 속 한서진(배우 염정아)이 자식을 위해 물불 안 가리고 악바리처럼 사는 모습에 많은 이가 공감할 수 있다. 그러나 이씨는 한서진처럼 다른 가치를 배제하며 오로지 성적 올리기에 신경 쓰며 자식을 키우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이씨는 “드라마 속 영재나 예서처럼 부모가 만들어주는 점수로 좋은 대학에 가는 아이들은 결국 괴물이 될 것”이라며 “이미 그런 괴물들이 우리 사회에서 불법행위를 많이 저지르고 있는 것 아니겠냐”고 되물었다. 이씨는 “부모나 교사, 학교 등에서 아이들을 어떻게 키우고 교육할지 깊이 생각해봤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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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씨는 부모들의 사교육 의존, 공교육 불신도 문제지만, 공교육 교사들의 분발도 필요하다고 조심스럽게 말했다. 이씨는 “선생님들조차도 아무렇지도 않게 ‘강남 아이들은 어떻고’ ‘강남 학부모들은 어떻고’ 그런 말을 하세요. 그런 말들이 아이들과 학부모들을 무기력하게 만들거든요. 교사들이 수업 혁신도 더 했으면 좋겠고, 학부모가 학교를 믿을 수 있도록 만들어주면 좋겠어요.”

서울 압구정동에 살고 고등학교 3학년 자녀의 입시를 마친 김혜승(가명)씨는 드라마 속 아이들이 겪는 치열한 입시 경쟁이 현실과 흡사하다고 느낀다. 고급 입시 정보를 얻기 위해 부모가 눈에 보이지 않는 전쟁을 벌이는 모습도 일정 부분 현실을 반영했다고 본다. 그의 주변엔 전교 1등 아이가 어떤 학원에 다니고 어떻게 공부하는지 알기 위해 혈안이 된 엄마들이 있다. 공부를 썩 잘하지도, 못하지도 않은 딸은 학원에서 ‘내신 대비 소수정예반’에 못 들어갔지만, 전교 1등은 척척 들어가는 경우도 봤다. 아이들끼리 팀을 짜는 일도 엄마들이 좌지우지했다. 김씨는 “팀을 짤 수 있느냐 없느냐가 엄마들 간 주도권을 결정했다”며 “직장맘은 배제되고 아이 공부에 열의가 있으며 자신의 자녀보다 성적이 높은 아이들을 선호하는 경향이 있었다”고 전했다. 서울 대치동가 학원에 자녀를 보내본 그는 한편으로 이런 생각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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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물가에 아이를 데려갈 수는 있지만 물을 마시게 할 수는 없어요. 입시 결과를 보니 부모나 사교육이 아이에게 영향을 미치는 것이 한계가 있더라고요. 결국, 아이의 재능, 성격, 기질, 동기, 부모와의 관계가 중요하죠. 사회생활 하다 보면 또 좋은 대학 나온 사람이라고 다 잘되는 것도 아니고요. 분명한 건 부모가 아이 인생을 대신 살아줄 수 없다는 거죠.”

드라마 <스카이 캐슬>에서 자신의 손으로 딸을 죽였다는 사실을 알고 괴로워하는 강준상(배우 정준호).  제이티비시 <스카이캐슬> 누리집
드라마 <스카이 캐슬>에서 자신의 손으로 딸을 죽였다는 사실을 알고 괴로워하는 강준상(배우 정준호). 제이티비시 <스카이캐슬> 누리집

부모들이 느끼는 이러한 주제 의식이 드라마 후반부에 잘 드러나고 있다. 학창시절 내내 전교 1등, 학력고사 전국 수석에 서울대 의대를 졸업한 뒤 주남대학병원 의사가 된 강준상(배우 정준호)을 통해서다. 오로지 병원장이 되는 게 목표인 그는 자신의 딸 친구였던 혜나(배우 김보라)가 다쳐서 병원에 실려왔는데, 병원장 손자를 먼저 살리기 위해 혜나를 다른 병원으로 옮기라고 지시한다. 결국 혜나는 죽었고 준상은 뒤늦게 혜나가 자신의 친딸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준상은 평생 어머니 윤 여사(배우 정애리)에 의해 관리돼온 인물이다. 대치동 ‘돼지 엄마’의 원조 격인 윤 여사는 사교육이 법으로 금지됐던 80년대에도 남다른 교육열과 정보력을 발휘해 아들을 서울대 의대에 합격시켰다. 3대째 의사 가문을 만드는 것이 소원이고 병원장 아들을 만드는 것이 소원인 그는 시종일관 집안에서 전권을 휘두르며 나이 오십 먹은 아들 집안을 쥐락펴락한다. 자신의 손으로 친딸을 죽였다는 죄책감에 괴로워하는 준상은 뒤늦게 자신의 인생이 빈껍데기임을 각성하며 어머니 윤 여사를 찾아 통곡하며 이렇게 말한다.

“주남대 기조실장까지 올라온 제 인생이 빈껍데기인데도요. 제가 조금만 철이 들었더라면, 제가 위만 말고 옆도, 뒤도 돌아볼 수 있었다면, 혜나 저렇게 죽이지 않았을 겁니다. (중략) 언제까지 절 분장시키실 겁니까. 그만큼 박수 받으셨으면 됐잖아요. 어머님 뜻대로 분칠하시는 것 때문에 제가 어떻게 생겼는지도 모르고 근 오십 평생을 이렇게 살아왔잖아요.”

■ 교육 전문가가 본 ‘내가 본 스카이 캐슬’

“스카이 캐슬에 나오는 교육 방식은 소수의 비정상적인 방식입니다. 그런데 왜 이 드라마가 전국민적 공감을 불러일으키고 있을까요? 부모들의 과도한 욕망이 문제라는 해석도 봤는데, 무엇이 부모를 그렇게 만드는지도 봐야 한다고 봅니다. 과거 어느 시점까지 우리 사회에는 미우나 고우나 공교육을 믿고 지지해주는 중산층 학부모가 존재했어요. 그런데 이젠 그런 중산층 학부모들이 붕괴됐어요. 이렇게 된 데는 불평등이 심해지고 학벌 사회와 같은 사회구조적인 문제도 있지만, 사교육 업계의 책임도 크다고 봐요. 어떤 좋은 제도를 도입해도 그들은 끊임없이 공교육을 교란시키고, 부모들을 불안감에 빠뜨려 이익을 취해왔으니까요.”

교육 전문가이자 부모교육 전문가인 박재원 행복한공부연구소 소장(비영리 교육시민단체 아름다운배움 소속)이 힘주어 말했다. 한때 사교육 1번지 대치동에서 ‘박 보살’로 불렸던 그는 사교육 업계의 메커니즘을 잘 안다. 학부모 교육에 매진하는 그는 부모들의 고민도 잘 안다.

“스카이 캐슬에 나오는 입시 코디네이터는 80년대 중반에도 있었어요. 그때도 입주 과외 교사가 성적은 물론 생활 지도, 원서 내는 것까지 다 책임졌거든요. 그 당시에는 지금처럼 사교육이 고도화되지 않았기 때문에 그 정도만 한 거죠. 시간이 지날수록 사교육 업체들이 창궐하면서 상류층 아이들이 전략적으로 관리되기 시작합니다. 상류층은 언제나 공교육을 깔봅니다. 공교육이 잘되기를 바라지 않아요. 자신들을 남들과 구분 짓고 싶어 하고, 어떻게든 지배층이 되어 경제력을 독점하고 싶어 하니까요.”

박 소장은 작가의 의도와는 다르게 드라마 속 사교육 내용에 대한 관심이 늘면서 공교육 불신 분위기가 조장됐다고 본다. 한국의 상류층은 오래전부터 공교육 질서를 무너뜨려왔다. 조기 교육을 통해 ‘나이’라는 질서를 무너뜨렸고, 선행학습을 통해 ‘학년’도 무너뜨렸다. 박 소장은 “운전을 할 땐 누구나 교통질서를 잘 지킬 것이라는 신뢰가 필요하다”며 “최상류층이 과속을 하며 무한 경쟁을 시작했고 이제는 누구도 질서를 지키지 않는 상황까지 왔다”고 진단했다. 사교육의 힘은 이제 가수요를 창출할 정도로 힘이 세졌다. 이런 상황에서 이런 사교육의 힘을 꺾고 질서를 지켜줄 세력이 필요하지만 많은 학부모는 ‘교육 소비자’로 전락했다.

“해방 이후 우리는 한번도 제대로 공교육을 해본 적 없는 것 같아요. 사교육의 힘은 세졌고, 교육 당국도 대학들도 학부모들의 불안을 가중시키기만 했지요. 입시 제도를 자주 바꿨고, 대학들은 경쟁률 높여 인기를 끄는 방식으로 운영돼왔고요. 가장 가슴 아픈 것은 생각 있고 의식 있는 부모들마저 이런 현실에서 ‘학원 안 가면 손해 본다’는 경험을 하거나 교사들마저 학생이나 부모에게 ‘학원 가라’는 말을 하는 경우가 생겼다는 겁니다.”

박 소장은 무질서 그 자체인 교육 현실에서는 최소한의 공교육 기본 질서를 지키기 위한 긴급 처방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박 소장은 “선행학습 규제법이나 ‘교육 김영란법’ 등을 통해 사익을 위해 공교육을 교란시키는 일들에 대해 강력하게 대응하면서 대안을 찾아나가야 한다”고 제안했다. 내신 1등급에만 경시대회, 봉사활동 등을 몰아준다거나 사교육 업계의 공교육 교란 행위 등에 강력하게 대처해야 한다는 것이다.

“새로운 학부모 교육과 문화 운동이 절실합니다. 부모들이 공교육을 믿고 지지할 수 있는 경험을 할 수 있도록 모두가 머리를 맞대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교사들이 학부모와 더 소통하고 손을 잡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교사 집단에서 학부모들이 왜 공교육을 불신하는지 묻고 함께 대안을 찾으려는 노력을 해야 합니다. 학부모운영위원회나 학부모회를 형식적으로 운영하지 말고 실질적으로 운영하고요. 정부나 교사들도 공교육 정상화 프레임이나 교권 회복에만 머무르지 밀고 학부모들과 더 소통했으면 좋겠어요. 부모들에게는 정책은 멀지만 교사들은 가까운 존재거든요.”

양선아 기자 anmadang@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