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서초구 대검찰청 건물 청사. <한겨레> 자료사진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 건물 청사. <한겨레> 자료사진

“한 송이 매화처럼 고우십니다.”

소개팅의 한 장면이 아니다. 박근혜 정부 시절, 법무부의 청와대 업무보고 때 일이다. 어느 검사가 박근혜 전 대통령의 면전에 헌사를 바쳤다. 하고많은 꽃 중에 왜 하필 매화였을까. 그 ‘매화’는 경기도 의왕의 서울구치소에 있다. 그때 잘 나가던 그 검사는 지금도 잘 나간다.

“미네르바 처벌할 수 있다.”

광고

10년 전 이명박 정부 때다. 인터넷 논객 ‘미네르바’(박대성)가 경제위기를 경고하는 글을 인터넷에 올리자 검찰이 앞장서 처벌이 가능한지 검토했다. 어느 검사-물론 지시를 받은-가 인터넷을 통한 허위사실 유포죄(전기통신기본법 위반)로 처벌이 가능하다는 보고서를 올렸다. 미네르바는 결국 구속됐다가 나중에야 무죄를 받았다. 전기통신기본법의 해당 조항에 대해선 헌법재판소가 위헌 결정을 내렸다. 그래도 그 검사는 승승장구했다. 박근혜 정부 때 더 높은 지위에 오른 그는 당시 황교안 법무부 장관이 강조해 마지않은, 이른바 ‘대한민국의 정통성과 헌법 가치’를 알리는 데 앞장섰다. 그는 요즘 문재인 정부의 두 번째 검찰총장 후보로 이름이 오르내린다.

“해경 123정장은 처벌할 수 없다.”

광고
광고

2015년 세월호 침몰 현장에 출동하고도 멀뚱멀뚱 지켜본 해경 123정의 정장을 단죄해야 한다는 여론이 빗발쳤다. 그러나 해경 처벌이 곧 대통령과 정부의 책임 인정이라고 생각한 황교안 법무부 장관은 검찰에 ‘처벌 불가’ 사인을 보냈다. 업무상 과실치사상죄의 적용을 놓고 법무부와 대검이 반 년 넘게 줄다리기를 벌였다. 그때 검찰에서 장관과 똑같이 ‘처벌 불가’ 검토 보고서를 올린 검사가 있다. 그는 채동욱 전 검찰총장의 혼외자 의혹을 수집한 국정원 직원 등을 처벌할 수 없다는 보고서도 썼다. 그 검사는 문재인 정부 들어 ‘적폐수사’에서 명성을 떨치고 있다.

무리한 기소로 결국 무죄가 확정된 문화방송(MBC) ‘피디수첩’ 광우병 보도 사건 2차 수사팀의 핵심 검사는 문 정부 적폐수사에서 선봉장으로 변신했다. 대기업 두 군데를 손 보려는 정권의 ‘하명성’ 수사에서 통째로 무죄 판결이 났는데도 누구는 대검에서, 또 다른 누구는 중요 지검에서 요직을 차지했다.

광고

“대통령령·법무부령 개정으로 가능한 검찰개혁은 대부분 이루어졌습니다. 검찰의 불가역적 변화를 위해서는 법률적 차원의 개혁이 필요합니다.” 이 정부에서 사법개혁을 총괄한다는 조국 청와대 민정수석이 얼마 전 페이스북에 올린 글이다. 국회 입법으로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가 만들어지고, 검경 수사권이 조정되면 검찰개혁이 완성된다고 한다. 그러면 정말 검찰이 환골탈태라도 하는 걸까.

한마디로 글쎄다. 검찰개혁의 요체인 인사가 길을 잃었다. 문제적 ‘칼잡이’들을 제대로 걸러내지 못했다. 검사의 기본인 정의 관념을 저버리고 권력의 먹방에 상차림을 마다치 않은 검사들이 이런저런 연줄 덕에 살아남았고, 일부는 영전했다. 비비케이(BBK) 부실수사 책임에도 불구하고 전국에서 두 번째로 큰 지방검찰청의 검사장으로 부활한 조국 수석의 고교 후배는 ‘구멍 숭숭’ 검찰 인사의 상징이 됐다. 심지어 그는 과거 ‘우병우 사단’의 일원이기도 했다. “문 정부에 기대를 많이 했는데, 실망스럽다.” 그 인사 직후 어느 검사가 한 말이다.

과거 노무현 정부에서 청와대 행정관을 지낸 검사들을 핵심 요직인 법무부 검찰국장, 대검 반부패부장(옛 중수부장)에 나란히 앉힌 인사도 두고두고 화제다. 검찰국장으로 간 인사는 문 대통령의 민정수석 시절 직속 행정관으로. 네 기수를 건너뛴 파격이었다. 검찰 첫 인사부터 법무부 아닌 청와대가 서울중앙지검장 인사를 직접 발표해 검찰청법 위반이라는 비판을 자초했다. 보수 정권도 이러지는 않았다. 인사로 충성을 길들이는 역대 정권의 관행에서 문 정부는 얼마나 자유로운가. 공정하고 설득력 있는 인사는 뒷전인 채 몇 가지 부수적인 제도변화만으로 검찰개혁이 가능하다고 믿는다면 참 딱한 노릇이다.

이름 대면 알만한 어느 법조인은 “검찰 6급(김태우 수사관)이 정권 말기처럼 돌진할 때는 그 밑에 있는 더 큰 흐름을 읽어야 한다”고 했다. 문 정부는 검찰의 저류를 알고 있을까.

강희철 법조팀 선임기자 hckang@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