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민등록법 개정안이 ‘동성애 옹호 법안’이라고?
생년월일과 성별, 출생지 등이 표시되지 않는 ‘임의번호’를 주민등록번호로 부여하는 방안을 담은 ‘주민등록법 개정안’(대표발의 진선미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엉뚱한 공격에 시달리고 있다. 6일 현재 국회 입법예고 의견등록 게시판에는 이 개정안에 대한 의견이 1만건 이상 올라와 있다. 이례적으로 많은 숫자의 의견글 대부분은 개정안에 반대하는 내용이다. 주된 반대 이유는 “성별은 오직 남녀뿐”이니 주민등록번호에 ‘1’과 ‘2’ 등으로 나타나는 성별 표기 기준을 유지해야 한다는 것. 특히 일부 기독교 단체들은 “이 법안이 통과되면 남녀의 구별이 어렵다”며 “동성애를 옹호하고 조장하는 ‘차별금지법’으로 가기 위한 선제 입법”이라며 강력 저지 태세를 보이고 있다. 이들은 개정안을 철회하라며 법안에 이름을 올린 의원실과 지역 사무소 등에 지속적인 전화 항의를 이어 가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진 의원 등은 헌법재판소의 헌법불합치 결정에 따라 지난 5월 국회가 주민등록법을 개정했지만 “전국민의 주민등록번호가 유출된 상태에서 피해를 입은 뒤 변경하도록 하는 것은 사후 조처에 불과하다”는 지적이 나오자 아예 “예방적 조처인 임의번호를 도입하자”며 이번 재개정안을 내놓았다.
지난 5월 법 개정 이후 행정자치부는 ‘주민등록번호 유출로 인해 피해를 입은 것이 입증된 사람 등’에 한해 13자리 번호 가운데 뒤 6자리만 변경할 수 있게 했다. 하지만 ‘생년월일-성별 기호(1자리)+출생지역 일련번호(광역 2자리+동 2자리+출생신고 순서 1자리)+검증번호(1자리)’ 순으로 구성돼 있는 현재 주민등록번호에서 출생지역 일련번호 등 뒤쪽만 바꾸는 것이 개인정보 보호에 크게 실효성이 없다는 목소리가 커졌다. 실제로 이윤호 서울과학기술대 교수 연구팀이 2014년 페이스북에 공개된 생일과 출신 학교 등의 정보를 이용해 해당 인물의 주민등록번호를 재구성하는 실험을 한 결과, 11만5615명 중 5만2000여명의 주민번호를 정확히 알아낼 수 있었다.
엉뚱한 비난이 나오는 데 대해 정보인권단체 쪽에선 개정안이 동성애에 관한 의견과는 상관없는, 개인정보 보호를 위한 실효성 있는 방안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정보인권연구소의 이은우 변호사는 “주민등록번호는 법이 정한 목적 외로 사용돼서는 안 되는데, 현재는 번호만으로도 나이와 성별, 출신지역 등을 타인이 알고 법이 정한 목적 외로 사용될 가능성이 커 개인정보가 포함되지 않은 임의번호 도입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국민에게 개인식별기호를 부여하는 독일과 프랑스 등 대다수의 나라들이 임의번호를 부여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우리나라에서도 여권과 운전면허증 등에 임의번호를 사용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허승 기자 raison@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