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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사회일반

청년에게 공정한 출발선을 ⑨ 취업·연애…‘좀 놀아본 언니들’이 고민 공유

등록 :2016-01-31 19:51수정 :2016-01-31 21:28

[더불어 행복한 세상]
은행 3차 면접에서 떨어진 ㄱ씨는 와르르 무너지는 느낌이 들었다. 한 단계씩 올라가 겨우 다다랐는데, 다시 원점으로 되돌아갔다. 또다시 서류부터 시작해야 한다. 이런 감정 탓에 남자친구에게는 자꾸 짜증이 난다. 요즘은 싸우는 일이 부쩍 늘었다. 남자친구도 3년 반째 취업준비를 하고 있다.

청년들이 만든 고민상담소 ‘언니들’
‘고립 청춘’ 해답보단 함께 고민해줘
연애 고민이 가장 많았지만 사실은
취업·진로 등으로 유발된 경우많아
결국은 개인 문제가 아닌 사회 문제
“큰 소통의 연대로 청년들은 힘 얻어”

온·오프라인으로 청춘들의 고민을 함께 나누는 비영리단체 ‘좀 놀아본 언니들’(언니들)에 들어온 사연 중 하나다. 취업준비생들 사이의 다툼은 특히나 많이 들어오는 사연이다. 언니들에 들어온 20대 1만여명의 상담사례 중 1, 2위가 연애(33.5%)와 취업(공무원시험 포함 30.6%)이다.

하지만 좀 더 깊은 얘기를 듣다 보면 단순한 연애와 취업 문제를 넘어서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남자친구가 3년 반째 취준생이어서 너무 힘들어하고 과민반응 한다고 하는데, 계속 듣다 보면 다른 얘기가 나와요. 사실 남자친구는 취업을 원치 않는다는 거예요. ‘사회적 경제’ 쪽에 관심 많은데, 돈 문제 때문에 시도조차 하지 않고 있다는 거죠.”

지난 8일 서울시가 청년들을 위한 개방공간으로 꾸민 동작구 대방동의 ‘무중력지대’에서 만난 언니들의 장재열(31) 대표는 이렇게 설명했다. 그는 “자기 고민이 주거문제일 수도 있다는 사실을 모르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친한 언니랑 매일 싸운다며 고민을 털어놔요. 그런데 듣다 보면 좁은 방에서 같이 살며 나오는 공간문제가 있어요. 그저 사이가 나빠졌다고만 생각하는데, 실은 다른 문제일 수도 있는 거예요.”

 지난달 11일 서울 서대문구 창천동, 한 청년이 만든 공유공간인 ‘상상하는 모든 것이 이루어지는 공간(상모)’에서 청년들의 고민상담을 하는 청년 비영리단체 ‘좀 놀아본 언니들’ 회원들이 모여 새해 계획 등에 대해 논의하고 있다. 이정용 선임기자 lee312@hani.co.kr
지난달 11일 서울 서대문구 창천동, 한 청년이 만든 공유공간인 ‘상상하는 모든 것이 이루어지는 공간(상모)’에서 청년들의 고민상담을 하는 청년 비영리단체 ‘좀 놀아본 언니들’ 회원들이 모여 새해 계획 등에 대해 논의하고 있다. 이정용 선임기자 lee312@hani.co.kr
언니들이 이런 복잡한 사회문제들까지 모두 품을 수는 없다. 다행히 최근에는 자신들의 문제를 스스로 고민하며 해법을 찾으려 하는 청년들의 커뮤니티가 크게 늘고 있다. 언니들은 상담 과정에서 사회적 문제가 도출되면 비슷한 색깔의 청년들의 커뮤니티에 서로를 연결하는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성격유형검사(MBTI)를 하듯 사회문제를 고민하는 청년단체들의 성격을 조사해 고민의 종류와 색깔이 같은 개인들을 서로 정확히 연결해주는 일이다. 개인이 맺던 소통의 단위보다 “더 큰 소통의 연대”가 만들어지면 청년문제도 얼마든지 해결할 수 있다는 것이 언니들의 생각이다. 장 대표는 “어떤 선택지를 택하든 그럭저럭 살아가는 모습을 보고, 불과 몇명뿐이더라도 서로 공감하는 사람들과 함께 고민을 나눌 기회가 있으면 청년들은 얼마든지 앞으로 걸어갈 힘을 얻는다”고 말했다.

청년 고민 상담소 ‘좀 놀아본 언니들’ 이정용 선임기자 lee312@hani.co.kr
청년 고민 상담소 ‘좀 놀아본 언니들’ 이정용 선임기자 lee312@hani.co.kr
취업이라는 무한경쟁 속에서 청년들은 위축될 수밖에 없다. 취업 이후에도 문제는 계속된다. 다양한 문화적 혜택을 받고 자라 다양성을 추구하지만, 정작 사회는 획일적인 기준을 요구하는 분위기다. 그 간극 속에서 청년들은 아파하고 고민에 빠진다. 장 대표의 경우가 꼭 그랬다. 서울대 미대를 졸업해 대기업에 입사했지만, 인사팀에 근무하며 매번 지원자들을 탈락시키는 일상 속에서 우울증에 시달리고 결국 회사를 그만둬야 했다.

청년들에게 ‘고민의 공유’는 그 자체로 큰 힘이라는 것을 장 대표는 언니들 활동 초기 단계부터 느꼈다고 한다. “상담을 시작한 지 2개월 정도 됐을 때 8차례씩 이메일을 주고받던 친구와 만나서 이야기를 나눠야겠다고 생각했어요. 만나려고 생각해보니, 또 다른 친구들도 함께 만나야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래서 동갑내기 5명을 모아서 각자 나머지 4명에게 자기 고민을 털어놓도록 해봤죠.” 각자가 고민 하나씩 안고 있다 보니 좀 더 진솔한 이야기가 나왔다. 단지 듣고 공감해주는 과정 속에서 치유가 이뤄졌다. 장 대표가 우울증을 직접 치료해 보려고 고민을 객관화하는 방식으로 시작한 자문자답 블로그는 어느새 고민 상담소가 됐다.

대기업을 박차고 나와 시민단체 활동을 하며 언니들 활동을 하는 강슬기(25)씨도 비슷하다. 그는 기성 사회가 마치 정답인 양 정해둔 입시와 취업의 컨베이어벨트에서 이탈할 수도 있다는 두려움을 안고 있는 수많은 청년들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고 했다. 강씨는 “언니들 활동은 비슷한 고민을 털어놓는 청년들 속에 스며들어 스스로 그 두려움을 직면하고 극복하는 과정을 거치게 해줬다”고 말했다. 언니들의 또 다른 상담자로 활동하는 김지원(29)씨는 “다른 길을 가더라도 충분히 잘 살 수 있다는 것을 스스로 증명하고 싶다”고 강조했다.

전효관 서울시 혁신기획관은 “존중받으며 자란 지금의 청년들이 사회로 나오면서부터는 전혀 존중받지 못하고 있다. 그 현실의 벽을 깨고 나오는 청년들의 움직임에 주목해야 한다”고 말했다.

음성원 기자 esw@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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