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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사회일반

‘칠성판 고문’ 법정서 호소해도 눈감은 법관들

등록 :2016-01-27 21:42수정 :2016-01-28 09:32

[탐사기획] ‘조작사건’ 책임자 사전 ② 책임 안지는 판검사
그때 그 재판장들
고문·허위자백 호소 눈감고 검찰 주장대로 유죄판결
전민학련·전민노련 반국가단체 조작 의혹 사건 담당 판검사들 (※클릭하면 확대됩니다.)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진실화해위)에서 재심을 권고해 재심 무죄 확정 판결을 받은 판결 224건의 1, 2심 판결문에는 92명(중복 제외)의 재판장이 등장한다. 재판장은 가장 큰 권한을 행사하지만 증거조작이나 가혹행위를 밝히지 못한 채 수사관과 검사의 주장대로 유죄 판결을 내렸다. 법정에서 피고인이 가혹행위를 폭로하는데도 이를 무시한 재판장도 적지 않았다.

과거사 사건 1, 2심 재판장 92명 중 절반이 넘는 50명이 아직도 변호사로 활동 중이며 41명은 사망·휴업하거나 근황이 확인되지 않았다. 1명은 명예교수다. 이들 중 45명이 이후 고법 부장(9명), 법원장(16명), 대법원장(2명), 대법관(13명), 헌법재판소장(1명), 헌재 재판관(4명) 등 고위 법관에 임명됐다.

‘법원조직법’을 보면, ‘사형, 무기 또는 단기 1년 이상의 징역 또는 금고에 해당하는 사건’은 합의부에서 재판하며 이때 ‘심판권은 판사 3명으로 구성된 합의부에서 행사한다’고 돼 있다. 따라서 판결서에 서명 날인한 3명의 판사 모두 일정한 책임이 있지만, 이 중 실제 재판 진행과 판결에 가장 큰 권한을 행사하는 재판장의 책임이 크다는 데 법조인들의 의견이 일치한다. 15년 이상 법원에 근무했던 판사 출신 변호사는 “재판장의 권한은 지금도 크지만 과거에는 더 심했기 때문에 법원의 경우 (과거사 사건에서) 재판장 책임이 가장 중하다”고 말했다.

과거사 사건 피고인들이 검사 앞에서 말 못하다 법정에서 최초로 고문 사실을 폭로하는데도 이를 무시한 재판장들이 먼저 눈에 띈다. ‘박동운 간첩조작 의혹 사건’의 피해자 5명은 1981년 1심 법정에서 “국가안전기획부에서 인간으로서는 감내할 수 없는 신체상 부당한 대우”를 받았다고 진술했다. 그러나 재판을 맡은 서울형사지법 14부 재판장인 김헌무 판사(배석판사 김병재, 이형하)는 박씨 등에게 사형 등을 선고했다. 김 판사는 이후 수원·청주지법원장 등을 지냈다. 그는 훗날 ‘구명서 간첩조작 의혹 사건’의 2심 재판장도 맡았다. 김 전 법원장은 외국에 있어 연락이 닿지 않았다.

92명 중 45명이 고위직 승진
아직도 50명 변호사로 활동
판사 믿고 고문 밝힌 피고인 진술
들어주긴커녕 중형 선고해

4건이상 담당한 재판장 6명
최다 6건 이재훈 판사
혐의 부인하자 가족접견 금지
재심재판부 “당시 원심
사법부 본연역할 다 못해”

‘아람회 사건’ 피해자인 박해전씨도 1981년 1심 법정에서 경찰청 대공분실 수사관들의 가혹행위를 폭로했다. 그러나 재판부인 대전지법 형사2부 재판장 김학세 판사(배석판사 황승연, 이인제)는 박씨 등에게 징역 10년을 선고했다. 재심 재판부는 “재심 대상 재판(대전지법 원심) 당시 법관들은 (피고인의) 호소를 외면한 채 진실을 밝히고 지켜내지 못함으로써 사법부 본연의 역할을 다하지 못하였다”고 밝혔다. 김학세 판사는 이후 서울고법 부장판사 등을 지냈다. 김 판사는 숨진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에 무죄 재심을 받은 과거사 사건 중 4건 이상의 원심 재판을 담당한 재판장도 6명에 달했다. 이재훈 전 판사는 1984~1986년 서울형사지법 13부와 인천지법 형사2부 재판장으로 재직하면서 ‘구명서 간첩조작 의혹 사건’ 등 6건의 과거사 사건을 판결해 가장 많은 재판에 관여했다. 이 전 판사는 1985년 서울 ‘미문화원 점거 농성 사건’ 재판장으로 피고인인 시위 학생들에게 판결과 별도로 훈계문을 낭독한 사실이 널리 알려져 있다. 4건의 과거사 사건을 맡은 사실이 밝혀진 강일원 헌재 재판관은 재판장인 이재훈 전 판사의 배석판사로 재판에 참여했다.

진실화해위 결정문을 보면, 이 전 판사는 1984년 인천지법 형사2부 재판장 때 ‘납북귀환자 정영 등 간첩조작 의혹 사건’ 피해자 정영씨가 공판에서 혐의를 부인하자 검찰의 요청을 받아들여 비공개 분리심문을 결정하고 접견금지 조치를 내렸다. 이 전 판사와는 연락이 닿지 않았다.

4건의 사건을 맡은 이재화 전 헌법재판소 재판관도 눈에 띈다. 이 전 재판관은 광주고법 형사1부 재판장으로 1983년 ‘오송회 사건’ 2심을 맡았다. 피고인들은 1·2심 법정에서도 고문으로 허위 자백했다고 주장했으나 재판부는 적절한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재심 재판부는 “재판부가 허위 자백이란 사실을 밝혀내려는 의지가 부족했다는 점에 커다란 아쉬움이 있다”고 밝혔다. 이 전 재판관과는 연락이 닿지 않았다.

대법원장과 헌법재판소장 상당수도 과거사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양승태 대법원장과 전직 대법원장 12명 중 7명, 전직 헌법재판소장 4명 중 3명이 재심 무죄 과거사 사건의 재판에 참여했다. 양승태 대법원장은 서울형사지법에 재직했던 1976년 재일동포 유학생 김동휘씨에게 반공법 위반 등의 혐의로 징역 5년을 선고했다. 김씨는 1심 법정에서 공포심 때문에 고문 사실을 폭로하지는 않았으나 핵심 혐의는 부인했다. 김씨는 진실화해위 조사에서 “1심 법정에 중앙정보부 직원이 방청석에 앉아 있는 걸 보니 다시 끌려갈지도 모른다는 두려운 생각에 진실(고문받은 사실)을 말할 수 없었다”고 밝혔다. 재심을 맡은 서울고법은 고문으로 인한 허위진술이 판결의 근거로 사용됐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당시 수사기록을 보면 김동휘씨는 20일간 불법구금됐으나 1심 재판부는 이를 지적하지 않았다.

김민경 고나무 김경욱 기자 salma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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