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16일 오전 ‘팔달산 토막살인 사건’ 피고인인 박춘풍(55)씨가 이화여대 뇌융합과학연구원에 모습을 드러냈다. 하늘색 수의에 하얀 마스크를 하고, 수갑을 차고 있었다. 그는 동거녀를 죽이고, 시신을 잔혹하게 훼손해 팔달산 등에 버린 혐의로 1심에서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다. 박씨가 이곳에 나타난 것은 사이코패스(반사회적 인격장애) 감정을 받기 위해서였다.
1심은 박씨에게 사이코패스 진단을 내렸다. 재판부는 “충돌조절을 하지 못하고, 통제력을 잃거나 내면의 적대감과 공격성을 표출할 수 있는 사이코패스 진단 기준에 상당 부분 충족하고 있다”고 했다. 사이코패스 진단(PCL-R) 결과 24점을 넘으면 사이코패스로 판단한다. 박씨는 20점을 받았지만 재판부는 전문가의 종합적인 의견을 고려해 사이코패스로 진단했다. 이 진단이 나오면 살인의 고의성이 인정돼 대부분 중형이 선고된다.
박씨의 국선변호인은 1심에 불복해 항소하면서 “박씨는 어릴 때 사고로 오른 눈을 다쳐 의안을 하고 있다. 이것이 뇌에 영향을 미쳤다”고 주장했다. 서울고법 형사5부(재판장 김상준)는 이 주장을 받아들여 사법사상 처음으로 범죄자의 뇌 영상 촬영과 사이코패스 검사를 진행했다.
이번 검사에서 박씨는 사이코패스 진단을 받지 않았다. 사이코패스 진단점수는 1심 때보다 낮은 16.8점을 받았다. 다만 “경제적 상황, 교육 배경, 정신건강 등에 따라서 재범 위험성은 달라질 수 있기 때문에 주의를 요한다”는 결과를 받았다. 또 뇌 영상 촬영 결과 박씨의 뇌는 일부 손상된 것으로 드러났다. 검사를 진행한 김지은 교수는 지난 22일 열린 4차 공판에 출석해 “기억력과 사고력 등을 담당하는 뇌 부위인 ‘전전두엽’이 손상됐다. 박씨의 뇌손상이 인지행동 및 정신장애에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은 25~50% 정도로 보인다”고 밝혔다.
항소심 선고를 앞두고 박씨의 뇌 검사 결과가 양형에 얼마나 영향을 미칠지 관심이 모아졌다. 결과적으로 사이코패스 여부는 재판 결과에 큰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 재판부는 29일 박씨에게 1심과 같은 무기징역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정신적 상태가 완전하지 못한 상태에서 우발적으로 범행을 저지른 점 등을 보면 검사의 주장처럼 사형을 선고하기는 어렵다”면서도 “범죄의 잔혹성과 엽기적인 측면을 고려하면 1심의 형이 너무 중하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판단했다. 다만 1심에서 선고된 위치추적 전자장치(전자발찌) 부착 30년 명령은 “재범 위험성이 있는지에 대해선 증거가 부족하다고 본다”며 받아들이지 않았다.
한편 이날 이 재판부는 아내를 목 졸라 살해한 뒤 시신을 훼손해 시화호에 유기한 혐의로 기소된 김하일(47·중국동포)씨에 대해서도 1심과 같이 징역 30년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피해자의 사체를 엽기적인 방법으로 훼손하고 여러 곳에 유기한 행위는 박씨와 마찬가지로 엄한 평가를 받아야 한다”고 밝혔다.
서영지 기자 yj@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