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량 밀어내기’를 강요해 이른바 ‘갑질’ 논란을 일으킨 남양유업이 당시 대리점주들이 입은 피해를 구체적으로 밝힐 수 있던 주문 자료를 폐기했다는 주장이 나왔다.
민병두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은 15일 “남양유업이 올해 발주프로그램(PAMS21)을 업데이트하면서 로그기록을 복구가 불가능한 형태로 지운 사실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로그기록에는 프로그램에서는 볼 수 없는 2013년 이전의 물량 주문 시간과 주문 상품, 개수 등이 상세하게 담겨 있다. 남양유업이 대리점주에게 주문량에 견줘 얼마나 과도하게 구입 강제 행위(물량 밀어내기)를 했는지 파악할 수 있는 중요한 기록이다.
민 의원과 남양유업 대리점주들 말을 종합하면, 남양유업이 지난해 발주프로그램 업데이트를 진행하면서 로그파일이 담긴 폴더가 사라졌다고 한다. 공정위가 불공정행위에 대해 역대 최고 액수인 123억원의 과징금을 부과하자, 회사 쪽이 과징금 부과처분 취소 소송을 벌이던 때였다. 대법원은 지난 6월 공정위의 구입 강제 피해액 산정이 과도하다며 남양유업이 낸 과징금 가운데 119억원을 취소하라고 판결했다.
그 뒤 대리점주들은 하드디스크를 복원해 발주프로그램 로그기록을 복구했지만, 올해 들어 다시 업데이트를 한 뒤에는 이마저도 불가능해졌다고 한다. 김대형 남양유업 대리점협의회 실장은 “대리점주들 가운데 일부는 당시 복원한 로그기록으로 보상을 받을 수 있겠다며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그런데 업데이트 뒤 로그파일을 복구하지 못하게 된 것은 회사 쪽에서 조처를 취한 것으로밖에 볼 수 없다”고 했다. 그러나 남양유업 관계자는 “프로그램을 잠시 바꾸는 과정에서 로그폴더가 다른 위치로 옮겨졌을 수 있지만 지운 일은 없다. 일부 대리점주들의 잘못된 주장”이라고 반박했다. 남양유업은 이날 “삭제되지 않은 로그파일 폴더를 보여주겠다”고 했지만, 이후 “대리점 섭외가 어렵다”며 실행에 옮기지는 않았다.
공정위는 로그파일이 있는지도 몰랐다. 안병훈 공정위 송무담당관 과장은 “소송 뒤 로그파일의 존재를 알게 됐다. 설령 소송 중에 알았더라도 관련 매출액 전체를 두고 과징금을 산정했기 때문에 로그파일을 통해 세세하게 피해액을 산정하는 것이 소송 승패와 관련은 없었을 것”이라고 했다. 민 의원은 “남양유업 피해자들의 피해 보상액과 과징금을 합쳐 1000억원에 가까운 회사 책임 역시 증거 은폐로 사라졌다. 공정위가 초기 증거 확보에 실패하고 잘못된 법리를 적용해 과징금 소송에서 지면서 피해자들을 두번 울렸다”고 했다.
방준호 기자 whorun@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