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해녀들이 물질할 때 챙기는 필수품 세가지가 있다. 쑥과 껌과 뇌선이다. 쑥으로 물안경을 닦으면 코팅 효과가 있어 물속에서 김이 서리지 않는다. 귀에 물이 들어가는 것을 막기 위해 씹던 껌으로 귓구멍을 막는다. 수압의 두통을 이기기 위해 ‘뇌선’이라는 두통약을 먹는다. 그러면 과연 해녀는 하루 몇시간이나 물질을 할까? 물때에 따라 다르긴 하지만 보통 오전 8~9시에 바다에 들어가 오후 3~4시에 나온다. 중간에 쉬는 시간은 놀랍게도 없다. 아침·점심도 굶는다. 속이 부대끼는 것을 막기 위해서다. 일반인들은 상상할 수 없는 중노동인 셈이다.

해녀들의 ‘숨비’는 잘 알려져 있는 단어다. 물속에서 숨을 참다 참다 끊어지기 직전 수면 위로 올라와 내는 소리다. 해녀들 사이에 금기어가 한가지 있다. 바로 ‘물숨’이다. 사람의 숨이 아닌 물의 숨, 바로 죽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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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해녀의 삶을 기록한 다큐멘터리 감독 고희영(50·사진)씨는 그 의미를 알기까지 꼬박 6년이 걸렸다고 했다.

제주서 태어나 24살 때 뭍으로 ‘가출’방송작가·프로듀서·다큐감독으로“물숨은 곧 죽음…욕망의 유혹이었다”2008년 ‘강인한 해녀 명성’ 우도 선택처음 2년간 촬영 못하고 ‘빵 배달’만끈질긴 구애 끝 ‘해녀 삼촌’ 일상 기록

평생 물질을 한 해녀들도 일년에 몇명은 물숨을 쉬고 바다에서 죽는다. 죽을 줄 알고 쉬는 물숨, 왜 해녀들은 물숨의 치명적인 유혹을 참지 못하는 것일까? 숨비가 억눌렸던 삶의 숨이라고 하면, 물숨은 참고 참다가 내쉬는 죽음의 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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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나이 든 해녀는 “해녀들만이 물속에서 쉴 수 있는 고유의 것”이라고 물숨을 표현했다. 해녀들이 물속에서 ‘좋은 물건’을 발견했을 때 내는 마음의 숨이다. 그 숨을 내쉬지 못하고 삼키는 순간, 곧 죽음에 이른다. 해녀들은 안다. 욕망에 사로잡히는 순간 바다는 무덤이 되고, 욕망을 다스리면 바다는 인생의 넉넉한 품이 된다는 것을. 그래서 오래된 해녀들은 딸에게 맨 먼저 물숨부터 피하는 방법을 가르쳐준다고 한다. “욕심을 내지 말고 숨만큼만 따. 눈이 욕심이야. 욕심을 잘 다스려야 해.”

고씨는 해녀들의 물숨에서 자신의 인생을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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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똑같아 보이는 해녀들 사이에도 엄격한 계급이 있어요. 상군, 중군, 하군이죠. 한번 잠수해 2분가량 바닷속에 머무르는 상군은 수심 15m 이상의 바다에서 작업하는 베테랑 해녀이고, 중군은 수심 8~10m, 하군은 5~7m에서 작업해요. 물론 수심이 깊을수록 비싼 해산물을 채취할 수 있어요. 해산물이 많을 때 상군은 한달에 100만원, 중군은 60만원, 하군은 30만원 정도 벌어요. 이 계급은 노력에 의해 극복되는 것이 아니었어요. 그것은 태어나는 순간 결정이 돼요.”

제주에서 태어난 고씨는 끝없이 펼쳐진 수평선이 갑갑했다. 대학을 졸업한 뒤 24살 때 뭍으로 가출했다. <그것이 알고 싶다>의 방송작가로, <케이비에스(KBS) 스페셜>의 프로듀서로, 100여편의 다큐를 찍은 고씨는 어릴 때부터 보고 자란 해녀의 이야기를 영상에 담기로 결심했다. 그래서 우도로 갔다. 제주 해녀 중에서도 우도 해녀가 가장 강인하기로 소문나 있기 때문이다. 우도 698세대, 1600여명의 인구 가운데 해녀가 365명(2010년 기준)이었다. 해녀 가운데 70%가 65살 이상이고, 40대는 9명에 불과했다.

그는 2008년 봄부터 6년 동안 무려 1000일을 우도에 머물며 ‘해녀 삼춘’의 생활을 영상으로 담았다. 하지만 우도에 카메라를 들고 들어간 지 2년 동안 그는 한 장면도 찍지 못한 채 욕만 먹었다. 때로는 카메라를 향해 날아오는 돌을 피해야 했다. 해녀들이 촬영을 심하게 거부했기 때문이다. “해녀들이 싫어하는 이유가 있어요. 해녀는 절대 가난의 상징이었어요. 또 해녀는 천한 직업이라는 인식이 남아 있고, 물질하는 자신의 모습이 초라하다고 느끼기 때문이었어요. 그래서 그들에게 다가가기가 너무 어려웠어요.”

그래서 고씨는 한참 동안 빵 배달만 했다. 곡물이 귀해 제삿상에도 빵을 올리는 우도에 들어갈 때마다 제주도의 유명 보리빵을 사서 자전거에 싣고 안면을 튼 한 해녀의 집에 선물했다. 나중에는 자전거에 빵 상자를 30여개나 싣고 다녀 빵집을 한다는 오해를 사기도 했다. 끈질긴 ‘구애’ 끝에 마침내 해녀의 일상을 카메라에 담기로 ‘허락’을 받는다. 하지만 정작 물질하는 해녀의 촬영은 쉽지 않았다. 육지에선 꼬부랑 할머니가 바다에만 들어가면 인어공주로 변하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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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리가 불편해 유모차에 의지에 해변까지 겨우 걸어온 80대 할머니 해녀가 잠수복과 자맥질을 도와주는 납덩이(연철) 7~8㎏을 허리에 차고, 태왁(수확물을 담는 그물)을 들고 바다에 스며드는 장면은 경이롭기까지 해요.”

고씨는 “해녀가 바다에 들어가 숨을 멈춘 대가는 이승의 밥이 됐고, 남편들의 술이 됐고, 아이들의 공책과 연필이 됐어요. 바다는 그들의 애인이고 남편이며 하느님이죠”라며 해녀들에 대한 올바른 이해를 부탁한다.

“물질하다가 미역에 발이 감겨 죽은 딸이 떠올랐던 그 바다에, 할머니 해녀는 눈물을 흘리며 다시 들어가요. 같이 물질하던 친구가 상어에 물려 눈앞에서 죽어가는 모습을 본 해녀도 있어요. 무엇이 해녀들을 바닷속으로 부를까요?”

현재 다큐 <물숨>의 마지막 편집작업을 하고 있는 그는 최근 우도 해녀 취재 일지를 담은 책 <물숨>(나남)을 미리 펴냈다. <모래시계>의 송지나 작가가 시나리오를 쓴 이 영화는 올가을 개봉 예정이다.

“저도 나이 먹으면 해녀가 될 겁니다. ‘하군’보다 못한 ‘똥군’이 돼 바닷가 해초를 줍더라도 해녀가 될 겁니다. 바다는 친정엄마의 따뜻한 품이죠. 언제 가더라도 아무 말 없이 뭐든지 다 주거든요.”

글·사진 이길우 선임기자 nihao@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