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행학습을 홍보하는 학원 차량의 현수막. 한겨레 자료 사진
선행학습을 홍보하는 학원 차량의 현수막. 한겨레 자료 사진

“지난 1학기에 1학년 300여명을 대상으로 정서·행동 특성 검사를 해보니 우울지수가 높게 나타난 아이들이 30~40명이나 됐어요. 수행평가를 준비하려면 심지어 줄넘기까지 과외를 받아야 하니 여가활동을 즐길 시간은 없고, 결국 속으로 곪는 거죠.”

4일 경남의 한 중학교 전문상담교사가 전한 학교 현실처럼, 한국에서 자라는 많은 아이들은 행복하지 않다. 숙제나 시험 등 학업에 따른 스트레스는 많은 반면, 친구를 만나거나 취미생활을 즐길 여유는 상대적으로 적은 탓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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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건복지부는 이날 ‘2013 한국 아동 종합실태조사’ 결과를 내고 한국 아동의 ‘삶의 만족도’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가운데 가장 낮은 수준이라고 밝혔다. 한국 아동이 주관적으로 평가한 삶의 질은 60.3점(100점 만점)으로 오이시디 국가 중 최하위로 나타났다. 루마니아(76.6점)와 폴란드(79.7점) 등이 가장 낮은 편에 속한다.

삶의 질이 떨어지는 주된 원인은 과도한 학업 스트레스다. 아동 스트레스 수치는 5년 전 조사(2008년 아동청소년종합실태조사) 때보다 높아졌다. 9~11살 아동의 스트레스 수치(1.82→2.02)와 12~17살 아동의 수치(2.14→2.16) 모두 높아지는 추세다. 스트레스가 적을수록 1점에, 많을수록 4점에 가까워진다. 숙제와 시험, 성적 등 학업에 따른 압박감이 주요 원인으로 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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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만족도가 내려가는 만큼 ‘아동 결핍지수’는 올라간다. 서울 강남의 한 초등학교에 다니는 윤민구(가명·12)군은 지난달 반 대항 축구시합 대표선수로 뽑혔다. 시합을 앞두고 친구들과 호흡을 맞추던 아들한테 윤군의 엄마는 ‘훈련 및 출전 금지’를 명령했다. ‘쓸데없는 짓 하다가 다치면 안 된다’는 게 엄마의 말이었다. 윤군은 “영어와 수학, 논술, 태권도 등 모두 4개 학원을 다녀야 하니 시간이 없는 건 사실”이라고 말했다. 취미활동이나 친구와의 교류 등이 부족할 때 느끼는 아동 결핍지수는 한국이 54.8%로 역시 오이시디 나라 가운데 가장 높았다. 결핍을 느끼는 대상을 항목별로 살피니, 음악이나 스포츠 등 정기적 취미활동을 하지 못해 부족감을 느낀다는 응답(52.8%)이 가장 많았다.

이번 2013 한국 아동 종합실태조사는 빈곤가구 1499가구를 비롯해 18살 미만의 아동을 양육하는 4007가구를 대상으로 했다. 송준헌 복지부 아동복지정책과장은 “유엔 아동권리위원회가 2011년 경쟁으로 내모는 한국의 교육을 개선하라고 권고한 바 있는데 이번 조사를 계기로 아동의 ‘학업과 여가의 불균형’ 문제를 중요 의제로 삼겠다”고 말했다.

박수지 최성진 기자 suji@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