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데자뷔(Deja-vu)’. 처음 본 것인데도 이전에 봤던 것처럼 느끼는 것을 말합니다. 숙명여대 축제 의상 논란을 보며 ‘드레스코드’에 관한 데자뷔를 느꼈습니다. 먼저 기억나는 건, 우리은행입니다. 이 은행은 2007년 4월초 26쪽 분량의 <우리 드레스 코드(표준 옷차림)> 책자를 1만4000여부 만들어 모든 직원들에게 배포했습니다.
- <한겨레> 2007년 4월15일(▷바로가기 : ‘우리은행’ 드레스코드는 용의검사?)
우리은행은 책자에서 “평상복 차림으로 의원 선서를 했던 유시민 의원과 록 가수의 공연 차림으로 방송 토론 프로그램에 나왔던 신해철씨를 빗대 ‘직업과 상황에 맞지 않는 옷차림은 꼴불견’으로 비쳐질 수 있다”고 강조했습니다.
또 다른 기억은 아시아나 항공이었습니다. 이 항공사는 지난해 3월까지 여성 승무원에게 치마만을 입도록 했습니다. 바지를 고집한 이유에 대해선 “‘승무원 이미지와 바지가 어울리지 않는다’는 디자이너의 판단을 존중해 바지를 만들지 않고 있다”는 빈약한 논리로 해명했습니다.
- <한겨레> 2012년 3월5일(▷관련기사 : ‘“속옷 보일까 걱정…” 아시아나 왜 치마만 입나요’)
이에 국가인권위원회는 지난해 2월4일 “아시아나항공이 여성 승무원에게 바지를 입지 못하게 하고 용모의 세세한 부분까지 규정한 것은 ‘아름다움’과 ‘단정함’이라는 규범적인 여성의 모습과 서비스 제공자로서의 여성을 전제하는 것으로, 성차별적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며 여성 승무원이 바지 근무복도 선택해 입을 수 있도록 아시아나항공에 권고했습니다.
이날 권고는 2012년 6월 공공운수사회서비스노동조합이 인권위에 진정을 제기하고 <한겨레>가 이를 보도한 뒤 나온 것입니다. 인권위는 “이번 판단은 여성 노동자의 모집·채용은 물론 고용관계 속에서도 성별 고정관념을 강화하는 용모 기준을 요구하는 것은 성차별로 인정될 수 있다는 점을 확인한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결국 아시아나항공은 지난해 4월부터 바지를 입도록 허용했습니다. (<한겨레> 2013년 3월25일 ▷관련기사 : 승무원에 ‘치마강요’ 아시아나 드디어 바지 입는다 )
자, 이제 숙명여대로 돌아가 보자구요. 숙명여대 총학생회는 24일부터 열리는 축제에 앞서 인터넷 카페에 ‘2014 청파제 규정안’을 지난 17일 내놓았습니다. ‘안전하고 건전한 숙명인의 축제를 보여주세요’라는 말로 시작되는 이 규정안에는 ‘손을 들었을 때 살이 드러나는 크롭티는 입을 수 없다. 짧은 하의를 입었다면 이를 가릴 수 있는 담요를 마련해야 한다. 맨살이 비치지 않도록 레깅스나 검정스타깅을 착용해야 한다’ 같은 내용이 담겨 있습니다. 숙대 총학은 이런 의상을 입는 학생에게는 축제 스태프와 단과대 학생회장의 권한으로 벌금 10만원을 부과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숙대 총학의 이런 규정안을 놓고, 대학 축제가 지나치게 선정적으로 변질돼 가고 있어 어쩔 수 없는 고육책이라는 말도 있습니다. 대학생들이 1년에 한 번 열리는 축제에서 큰 돈을 벌기 위해 성(性)을 상품화한다는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한 것 역시 현실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드레스코드’를 강요한 이런 대응은 세련되지 못해 보입니다. ‘안전하고 건전한’ 축제가 되기 위해선 아랍 여인들이 쓰는 ‘차도르’와 ‘부르카’가 필요한 걸까요? ‘규정안’은 별로 쿨(Cool)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한마디로 꼰대스럽네요.
정혁준 기자 june@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