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하늘을 수놓은 연인의 폭죽’ ‘도시 야경을 보며 벌이는 삼겹살 파티’ ‘친구들과 기타 치고 노래 부르는 낭만’….
대학생 김선유(23)씨는 최근 ‘옥탑방’ 구하기에 나섰다. 김씨는 “텔레비전 드라마나 예능 프로그램에 옥탑방이 자주 나오는데, 자꾸 보니 옥탑방도 살기에 괜찮아 보였다. 살고 있는 원룸에서 옥탑방으로 갈아탈까 생각중”이라고 했다.
과거 ‘반지하’와 함께 대표적인 취약 주거지로 꼽혔던 옥탑방을 낭만적으로 그려내는 방송 프로그램이 늘고 있다. 좁고 덥고 춥고 습하고 방범에도 취약하다는 부정적 이미지보다 넓은 ‘옥상 마당’에 멋진 야경, 시원한 바람 등 낭만적 이미지가 강조된다. ‘도심의 펜트하우스’인 것처럼 포장되다 보니 김씨처럼 옥탑방을 일부러 찾는 수요층까지 생겨났다.
서울 동대문구 제기동에서 부동산중개업소를 운영하는 유기수(51)씨는 6일 “예전에는 대체로 경제적으로 어려운 사람들이나 노인들이 옥탑방을 찾았는데, 최근에는 ‘한번 살아보고 싶다’며 옥탑방이 있는지 문의하는 학생들이 많다”고 말했다.
그러나 현실의 옥탑방은 방송이 보여주는 이미지와는 딴판이다. 옥탑방은 비주거용 공간을 주거시설로 개조한 건축물이다. 대개 공간이 비좁고 도시가스, 주방, 화장실, 욕실 등 생활기반시설도 갖추지 못했거나 열악하다. 특히 가연성 소재를 사용한 조립식 옥탑방이 많아 화재 등 사고에 취약하다. 지난달 29일 서울 영등포구 도림동 3층짜리 빌라의 옥탑방에서 불이 나 남아무개(40)씨가 숨졌다. 불은 전기 배선이 불량했던 옥탑방 주방에서 일어났다. 불길은 옥탑방 샌드위치 패널에 빠르게 옮겨붙었다. 남씨는 불을 피하려 옥탑방에서 뛰어내리다 숨졌다.
장마가 끝나고 숨이 턱턱 막히는 폭염이 시작된 요즘이 ‘옥탑방살이’가 가장 고될 때다. 직사광선에 그대로 노출된 옥탑방은 찜통 그 자체다. 서울 동대문구 용신동 옥탑방에서 8년째 혼자 살고 있는 양아무개(78)씨는 “해가 질 때까지 움직이지 않고 죽은 듯이 누워 있는다”고 했다. 몸을 움직이면 열이 나니 그마저도 최소화한다는 것이다. 기초생활수급자인 양씨 집에는 선풍기가 없다. 살 돈도 없고 전기요금이 무서워 부채 하나로 여름을 난다.
양씨가 사는 13.2㎡ 크기의 옥탑방은 보증금 500만원에 월세를 30만원씩 내는데도 부엌이 없다. 방 밖에 ‘조리 공간’을 마련했는데 문이 따로 없어 한겨울이면 수도관이 얼기 일쑤다. 양씨의 옥탑방 ‘전망’도 100m 떨어진 곳에서 진행되는 아파트 신축 공사 때문에 사라질 판이다.
대학생 오아무개(28)씨도 제기동 원룸 주택 옥탑방에 살고 있다. 옥탑방 아래 원룸 월세는 50만원이지만 옥탑방은 35만원이다. 대학 졸업 뒤 취업을 준비하는 오씨는 “한푼이라도 아끼려고 옥탑방에 산다”고 했다. 요즘은 옥상에 설치해놓은 에어컨 실외기들 때문에 오씨의 옥탑방 온도가 더 올라간다. 오씨의 옥탑방은 무허가 건축물이라 주민등록이나 전입신고도 할 수 없다. 관공서에서 오는 우편물은 친구 집에 주민등록을 해놓고 받는다. 오씨는 “우편물을 받지 못해 건강보험료를 연체한 적도 있다. 옥탑방에 올라오는 길에 가끔 원룸 사는 친구들을 만나면 부럽기도 하다”고 했다.
국토교통부에서 2년마다 실시하는 ‘주거실태조사’를 보면, 2012년 전국 1773만여가구 중에 옥탑방 거주 가구 수는 7350가구(전체의 0.04%)다. 2010년 조사에서는 4만7708가구(0.3%)가 옥탑방에 사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사이 주거환경 개선이 이뤄진 면도 있지만, 상당수가 무허가 건축물이어서 통계에 잡히지 않은 옥탑방은 훨씬 더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
서울 중랑구 묵동에서 보증금 500만원에 월세 25만원짜리 옥탑방에 신혼집을 마련한 전아무개(27)씨는 “옥탑방살이에 무슨 낭만이 있겠나. 눈앞에 닥친 현실일 뿐이지”라고 했다.
이재욱 기자 uk@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