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이 27일 정홍원 국무총리의 사의 표명에 대해 ‘선 수습, 후 사표 수리’ 방침을 밝혔다. 정 총리의 때이른 사의 표명은 참사 수습이 길어지면서 점점 커지는 청와대 책임론을 차단하려는 목적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참사 이후 12일째인 27일까지도 국정 최고 책임자인 박 대통령은 아직 제대로 된 사과 한마디 내놓고 있지 않은 점도 이런 비판을 키우고 있다.
결국 정 총리의 사의 표명은 민심 수습용 ‘고육책’으로 꺼내든 것으로 보이지만, 민심을 달래는 데 별 도움이 되지 않을 뿐 아니라, 사표 수리가 정해진 ‘시한부 총리’가 사태를 제대로 수습할 수 있을지도 의문이다. ‘재난 대응 컨트롤타워가 아니다’라고 밝혀온 청와대가 ‘총리 사퇴’ 이후 어떤 수습책을 구상하고 있는지도 여전히 불투명하다.
■ 정 총리-청와대, 손발 맞췄나? 정 총리의 사퇴 기자회견은 사전에 청와대와 긴밀한 조율을 거친 정치적 판단의 결과로 보인다. 지난주에 이뤄진 일부 여론조사에서 박 대통령의 국정지지도가 큰 폭으로 떨어지는 등 민심 수습 카드가 절박한 시점이기도 했다. 총리실 관계자는 기자회견 뒤 “청와대와 사전에 상의했다. 사퇴 회견문도 준비를 많이 했고, 행간에 궁금해할 만한 게 다 담겨 있다”고 설명했다. 박 대통령의 뜻이 반영됐다는 이야기다. 정 총리가 기자회견 뒤, 청와대가 이를 이어받아 ‘(총리의) 사태 수습이 마무리되면 사표를 수리하겠다’고 밝힌 것도 미리 예정돼 있었을 가능성이 크다. 박 대통령의 ‘선 수습, 후 사퇴’ 방침 역시 정 총리와 공유가 된 것으로 보인다.
정 총리가 정부의 사태 수습 문제점의 책임을 모두 떠안겠다는 태도를 취한 것은 박 대통령에게 향하는 정치적 책임을 막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정 총리가 “더는 (박 대통령의) 국정운영에 부담을 줄 수 없다”며 자신의 책임론을 들고나온 것도 이런 해석에 무게를 더해준다. 정 총리는 참사 수습에 대한 박 대통령의 질책이 쏟아진 다음날인 22일에도 국무회의에서 대통령을 대신해, 정부 대표로 ‘사과’를 한 바 있다.
■ ‘사표 총리’ 수습 주도…청와대 다음 대책은? 사표를 ‘잠시 되돌려 받은’ 정 총리가 다시 사고 수습을 맡게 되면서, 정부의 사고 대응 체계도 기존과 같은 방식으로 운영될 전망이다. 일부에선 사퇴 의사를 밝힌 총리가 각 부처를 제대로 지휘할 수 있는지 의문을 표시하고 있다. 정 총리가 수습 과정에서 유족 및 실종자 가족들에게 신뢰를 잃어 정 총리가 나서서 이들을 설득하고 이해를 구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많다. 이런 이유로 청와대 내부에서도 사표 수리를 마냥 늦추기 어렵다는 의견도 만만치 않다. 새누리당 일부에선 정 총리의 사의 표명 직후, ‘청와대가 사표를 수리하면서 전면에 나서지 않겠느냐’는 해석이 나오기도 했지만, 청와대는 오후 브리핑에서 “수습 이후 사표 처리”라고 밝힐 뿐, 책임을 지겠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박 대통령이 총리 사퇴와 세월호 참사에 대해 다시 공식적으로 언급하는 자리는 29일 국무회의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 자리를 통해 박 대통령의 공개 사과를 포함한 개각이나 청와대 개편 등의 특단의 추가 대책을 내놓을지 여부가 주목된다.
청와대는 이와 함께 정 총리 사의 표명에 맞춰 후임 총리 인선 준비를 시작했으며, 내부적으로는 개각에 필요한 인사 검증도 함께 검토하고 있다. 총리가 개각 대상에 들어간 만큼 ‘대폭 개각’이 예상된다. 정치권에서는 이번 사고의 대처에 직접적인 책임이 있거나 물의를 빚었던 안전행정부와 해양수산부, 교육부 장관 등이 개각 대상에서 빠지기 어려울 것으로 보고 있다. 다만 개각 시점은 인사청문회를 의식해 지방선거 이후로 미룰 것이라는 예상도 나온다. 하지만 여권 일각에서는 일부 각료에 대해선 지방선거 전이라도 교체해야 한다는 주장도 만만치 않다.
청와대 비서진 개편 여부도 주목된다. 일각에선 세월호 참사 대응 과정에서 “청와대 국가안보실 위기관리센터는 재난 컨트롤타워가 아니다”라는 발언으로 여론의 공분을 불러일으켰던 김장수 국가안보실장 등의 개편 가능성도 제기된다.
석진환 기자 soulfat@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