맹견인 ‘핏불테리어’를 키우던 대형 증권사 부장 김아무개(48)씨는 2008년 애견 동호회에서 알게 된 회원으로부터 흥미로운 제안을 받았다. ‘핏불테리어만 참가하는 투견 도박장이 있는데 이기면 큰돈을 벌 수 있으니 참가해보라’는 얘기였다. 이후 김씨는 지난 5월까지 라아무개(44)씨 등이 개장한 투견 도박장에 개 주인으로 다섯 차례 출전했고 결국 동물보호법 위반 등의 혐의로 지난달 14일 구속기소됐다.

서울중앙지검 강력부(부장 윤재필)는 강원·경기·충청 등을 돌아다니며 1년 동안 28회에 걸쳐 모두 6억2000만원 규모의 투견 도박을 한 혐의로 37명을 적발했다고 1일 밝혔다. 검찰은 이 가운데 조직폭력배 조직원 장아무개(40)씨 등 도박 개장자와 개주인 김씨, 심판 이아무개(54)씨 등 9명을 도박 및 도박 개장 등의 혐의로 구속 기소하고, 같은 혐의로 다른 개 주인과 참가자 9명을 불구속 기소, 11명은 약식기소했다. 또 도망친 도박 주최자 등 8명을 지명수배했다. 이번에 붙잡힌 이들 가운데는 중소기업 사장, 전직 중학교 교사, 일반 음식점 사장 등도 포함돼있다.

검찰 설명을 종합하면, 이들은 투견 싸움을 주선하고 도박장 마련을 주도하는 도박 주최자(일명 프로모터), 참가자의 판돈을 관리하고 승패에 따라 수익금을 나누는 수금원, 승패를 판단하는 심판과 부심, 맹견을 제공하는 개주인과 주변 감시용 망꾼 등으로 철저히 역할 분담을 했다. 단속을 피하려고 도박 시작 직전까지 수시로 장소를 바꿨고, 도주가 쉽도록 주로 야산 같은 곳에서 밤 10시에서 새벽 4∼5시 사이에 도박장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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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박은 주로 두 가지 형태로 이뤄졌다. 프로모터가 여러 명의 개 주인을 섭외한 뒤 수십에서 수백명의 도박 참가자를 모집하는 ‘현장 게임’과 프로모터가 개 주인으로부터 투견의 체중 및 판돈 규모에 대한 조건을 제시받고 상대 개주인을 물색해 판을 만들어주는 ‘계약 게임’ 형식이다.

전체 판돈의 10%는 도박 개장자에게 돌아가고 나머지 90%는 현장게임의 경우 승리 투견에 베팅한 참가자에게, 계약게임은 승리 투견의 주인에게 분배된다. 1인당 최고 200만원씩 베팅을 했고, 도박장에 평균 200~300명이 모인다는 점을 감안하면 현장게임의 경우 판돈이 최고 6억원에 달했을 것으로 추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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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속을 피하기 위해 개주인 섭외도 은밀하게 이뤄졌다. 핏불테리어 인터넷 동호회를 통하거나 개인적으로 친분을 쌓은 사람들만 은밀하게 도박에 끌어들였다. 이런 식으로 투견에 눈 뜬 개주인들은 어린 핏불테리어를 사서 키우면서 조련사에게 월 100만원씩 주고 훈련을 시키기도 했다. 싸움에서 이긴 핏불테리어의 경우 최고 3000만원까지 값이 나가기 때문이다. 반면 싸움에서 진 개는 수십만원에 보신탕용으로 판매됐다. 검찰 관계자는 “어느 한 마리가 죽거나 심각한 상해를 입을 때까지 진행됐다. 따라서 도박개장 관련자 전원에게 동물보호법 위반 혐의도 적용했다”고 밝혔다.

김원철기자 wonchul@hani.co.kr 영상 : 서울중앙지방검찰청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