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동작구의 한 중학교를 졸업한 ㄱ군은 ‘조금 다른’ 소년이었다. 또래 남자아이들처럼 운동장을 뛰어다니기보다 십자수를 하거나 도서실에서 책 읽는 것을 좋아했다. 50대 영어교사는 소년을 ‘시시’(Sissy)라고 불렀다. ‘계집애 같은 남자애’라는 뜻이다. “시시, 불결해. 닿으면 살이 썩을 거야.” 아이들은 낄낄거리며 교사를 따라했다. ㄱ군은 두려움 속에 3년을 보냈다.

성정체성을 알아가는 10대들에게 학교는 은신처가 아니다. 전전긍긍하는 먹잇감 같은 그들에게 학교는 사냥터에 가깝다. 특히 교사의 태도는 또래들에게 준거가 된다는 점에서 막강한 영향력이 있다. 올해 초 ‘성소수자차별반대 무지개행동’(무지개행동)의 청소년 성소수자 인권연구 모임인 ‘이반스쿨’이 발표한 ‘서울 성소수자 학생 인권실태조사’ 결과를 보면, 응답자 255명 가운데 23.1%는 ‘가장 심하게 차별을 느끼게 하는 대상’으로 교사를 꼽았다.

성소수자들이 학교를 바꿔보겠다며 직접 펜을 들었다. 절망을 안겨줬던 모교의 교사들에게 솔직한 고백과 당부를 담은 편지를 보냈다. 이반스쿨은 6월1일부터 한달여간 성소수자들이 졸업한 학교의 교사와 후배들에게 쓴 편지를 모아 서울시내 전 고등학교에 전달하는 ‘모교에 보내는 편지’ 사업을 펼쳤다고 21일 밝혔다. ‘모교에 보내는 편지’는 영국의 동성애자 인권단체 ‘스톤월’이 학교를 변화시키는 프로젝트로 기획해 긍정적인 효과를 거둔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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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지들에 새겨진 상흔은 깊다. “‘동성애는 퇴학인 거 알지? 더럽게 그게 뭐하는 거야?’ 선생님은 웃으면서 말씀하셨습니다. 왜 더럽다는 건지, 전 잘 모르겠습니다. 왜 숨으라고 강요하는지도요.” 자신을 동성애자라고 밝힌 한 고등학생은 재학중인 학교의 교사들에게 보낸 편지에서 물었다. 이 학생은 “동성애자임이 드러난 한 선배는 ‘저런 애랑은 말도 섞지 말라’는 어느 교사의 말에 친구들로부터도 왕따를 당했고 결국 자퇴서를 냈다”고 적었다.

정체성에 대해 진지한 상담이 필요한 때에 성소수자들은 교사들의 무지에 되레 더 큰 상처를 받는다. 광주시 소재 고등학교를 졸업한 한 여성은 “교내에서 성정체성을 밝힌 뒤 나를 상담하던 치료사는 내가 에이즈(AIDS·후천성면역결핍증)에 걸려 몸이 아픈 거라며 기도원으로 보냈다”고 고백했다. 그는 에이즈에 걸린 것도, 다른 어떤 병에 걸린 것도 아니었다. 다른 여자아이를 좋아했을 뿐이다. 편지를 보내온 60여명의 성소수자들은 “성소수자들은 정신질환 환자가 아니다. 동성애를 옹호하기 어렵다면, 적어도 왜곡된 시각으로 교육하진 않았으면 좋겠다”고 입을 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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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반스쿨은 편지를 1만3000여장 복사해 지난 9일 서울시내 공·사립학교 교사 등에게 우편으로 부쳤다. ‘나는 성소수자 학생을 지지합니다’ 등의 글귀가 적힌 무지개색 스티커와 ‘성소수자 학생을 위한 가이드라인’을 담은 홍보책자도 보냈다.

오김현주 무지개행동 활동가는 “서울학생인권조례 시행 2년째이지만 여전히 학교 현장에서 실질적 변화는 나타나지 않고 있다. 선생님의 태도야말로 변화를 위해 가장 중요한 동력인 만큼 편지를 읽고 자발적인 변화를 만들어가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엄지원 기자 umkija@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