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일 신한은행·농협 등 일부 금융기관과 <한국방송>(KBS) 등 주요 방송사의 전산망이 마비되면서 곳곳에서 피해가 이어졌다. 은행을 찾은 고객들은 발길을 돌려야 했고, 방송사 기자들은 컴퓨터 대신 볼펜으로 기사를 써야 했다.

■ “거래처에 돈 부쳐야 하는데” 은행 앞 발 동동 신한은행은 오후 2시께부터 본점 전산시스템이 다운되면서 일선 영업점과 자동화기기(ATM), 인터넷뱅킹 거래가 두시간가량 전면 중단됐다. 신한은행은 오후 4시께 전산망 복구를 완료해 거래를 정상화했다. 엔에이치(NH)농협과 제주은행 일부 지점에서도 영업창구 직원 개인용 단말기가 바이러스에 감염돼 파일이 삭제되면서 영업점 창구 거래가 한동안 마비됐다. 그 여파로 은행 계좌를 결제 계좌로 이용하는 체크카드와 현금서비스 이용도 지연됐다.

이들 은행을 방문한 고객들은 발길을 돌려야 했다. 오후 3시께 서울 세종로 신한은행 경희궁지점 입구에는 ‘전산장애로 인해 전반적인 은행 업무가 불가한 상황입니다. 불편을 끼쳐드려 죄송합니다(예상복구 시간 16:00)’라고 적힌 인쇄물이 나붙었다. 은행으로 들어서던 한 여성은 “모든 지점에서 거래가 안 되는 거냐”고 답답해했다. 은행을 찾은 강아무개(56)씨도 “지방에서 대학에 다니는 아들이 사고로 급하게 돈이 필요하다고 해서 나왔는데 거래가 안 된다니 이런 일이 있을 수가 있냐”며 분통을 터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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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 거래를 미룰 수 없어 전산망 복구를 마냥 기다리는 고객들도 있었다. 자영업자 최준희(43)씨는 “거래처에 오늘 꼭 부쳐야 할 돈이 있는데 은행 전산망이 망가졌다고 해서 깜짝 놀랐다. 곧 복구할 수 있다고 해서 별수 없이 기다렸다”고 말했다. 최씨는 전산망이 복구될 때까지 30여분을 기다려 돈을 부쳤다.

서울 서대문구에 있는 농협의 한 지점도 고객들의 원성으로 시끌시끌했다. 지방에서 대학에 다니는 딸에게 용돈을 보내주려고 들렀다는 최성훈(54)씨가 “이전에도 한번 이런 적이 있지 않았냐. 지금 급한데 어떡할 거냐”고 호통을 치자 직원들은 연방 고개를 숙이며 사과했다. 고국의 가족들에게 생활비를 보내주기 위해 은행에 들른 나이지리아인 니코(34)씨도 직원들이 막아서자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모든 은행이 안 되는 거냐”며 발길을 돌렸다. 입구를 지키던 청원경찰은 “오후 1시에서 4시 사이에 손님이 가장 많이 오는데 60~70명 정도가 그냥 돌아간 것 같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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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갑자기 컴퓨터 전원 뚝…뉴스 제작 비상 <한국방송>은 수백대의 피시 작동이 중단되자 전산망 작동을 중단시켜 외부에서 누리집에 접속하는 것까지 차단했다. 한국방송을 비롯해 전산망에 이상이 생긴 방송사들에서는 사내 데스크톱 피시뿐 아니라 외부에서 취재하는 기자들의 노트북도 전원이 갑자기 꺼지고 재부팅을 시도하면 “부팅 파일이 삭제됐다”는 메시지가 뜨면서 사용이 불가능해졌다. 사내 전산망에 접속했기 때문이다. 한국방송 관계자는 “핵심 서버로 문제가 번질 것을 우려해 사내 네트워크를 차단시켰다. 누군가 악성코드를 고의적으로 침투시킨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문화방송>(MBC)과 <와이티엔>(YTN)에서도 같은 문제로 기사 송고를 비롯해 네트워크로 처리하는 업무가 마비됐다. 일부 기자들에게는 회사로 들어와 업무를 처리하라는 지시가 내려졌고, 기자들은 종이에 손으로 기사를 써 뉴스를 내보내기도 했다. 기사 송고뿐 아니라 전산망을 이용하는 프로그램 작업에도 차질이 잇따랐다. 한국방송에서는 피디들이 영상을 편집하던 피시를 끄고 시스템 복구를 기다렸다. 한국방송의 한 피디는 “내일이 방송일이라 빨리 편집을 해야 하는데 혹시 컴퓨터를 켰다가 영상에 문제가 생길까봐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있다”며 발을 동동 굴렀다. 피디들은 피시에 저장한 자료가 사라질 것을 우려해 파일을 외장 하드로 옮기기도 했다. 라디오 프로그램들은 인터넷으로 시청자 사연을 받지 못해 전화 연결만으로 시청자들 목소리를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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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추가 피해 볼라…인터넷 연결 차단 금융위원회는 금융감독원, 한국은행, 한국거래소 등의 담당부서장들과 함께 금융전산위기관리협의회를 즉시 구성해 피해상황 파악과 사고원인 규명에 들어갔다. 송현 금융감독원 아이티(IT)감독국장은 “고객의 금융거래 이용에 따른 불편이나 피해가 발생하지 않도록 적극 대응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금감원은 증권사에서는 아직까지 피해가 접수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우리은행에도 사고 발생 시간에 디도스로 추정되는 공격이 있었으나 내부 시스템으로 방어해 실질적인 피해는 없었다. 엔에이치농협생명과 엔에이치농협손해보험 등 2개 보험사의 전산망에선 일부 직원들의 컴퓨터 파일이 삭제되는 현상이 확인돼 모든 컴퓨터의 인터넷 연결을 끊도록 조처했다.

방송사들은 전산망 마비에도 불구하고 당장 송출에는 문제가 없다고 설명했다. 방송에는 외부와는 차단된 시스템을 쓰기 때문이다. 하지만 상황이 장기화하면 차질이 생길 것을 우려하고 있다. <한국방송> 관계자는 “21일 오전까지는 비상 시스템으로 운영이 가능하지만 그때까지 복구가 안 되면 방송이 어려울 수 있다. 편성 내용 등이 컴퓨터에 입력돼 있어, 수동 작업을 하려고 해도 입력된 프로그램을 봐야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또 피시에 저장된 자료가 훼손될 것도 우려하고 있다. <와이티엔> 관계자는 “24시간 뉴스를 하기 때문에 상황이 장기화하면 문제가 생길 수 있다”고 말했다.

<에스비에스>(SBS)는 피해가 발생하지 않았지만 만일에 대비해 의심스러운 전자우편은 열어보지 말라고 직원들에게 급히 공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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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지원 최유빈 음성원 유선희 이재명 기자

umkija@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