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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사회일반

8살 혜진이는 그렇게 또 버려졌다
“아빠 일감 늘길” 밤마다 기도

등록 :2013-01-20 20:31수정 :2013-01-21 11:06

지난 11일 오후, 경기도 의정부시 녹양동 경기북부 아동일시보호소에서 혜진(가명)이가 또다른 보호시설로 떠나기 전 옷을 갈아입기 위해 방으로 올라가고 있다.  의정부/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지난 11일 오후, 경기도 의정부시 녹양동 경기북부 아동일시보호소에서 혜진(가명)이가 또다른 보호시설로 떠나기 전 옷을 갈아입기 위해 방으로 올라가고 있다. 의정부/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2013 기획 격차사회를 넘어]
밀려난 삶의 공간 ④ 아동 일시보호소
아이들은 끊임없이 버려진다. 보건복지부 통계를 보면, 2011년 한해에만 8400여명에 달한다. 주로 부모의 이혼이나 미혼 출산, 아동학대 등이 직접적인 원인으로 꼽히는데, 아동복지 전문가들은 그 근저에 빈곤의 문제가 얽혀 있다고 본다. 2013년 1월 현재 부모의 품에서 떨어진 아이들 1만7000여명이 전국 280개 시설에 분산돼 생활을 하고 있다. <한겨레> 신년기획 ‘격차사회를 넘어-밀려난 삶들의 공간’ 4회는 가정에서 밀려난 아이들이 보육원에 가기 전 잠시 머무르는 중간 기착지, 경기북부 아동일시보호소를 찾았다. 아이들의 이름은 모두 가명이다.

8살 아이는 왜 두번 버려졌나
지체장애 아빠는 일 없어 실업자로
지적장애 엄마는 보살필 능력 없어
혜진이는 보육원서 6년을 지냈다
“죽어도 데려가 키우겠다”던 아빠는
9달만에 다시 보호시설 문 두드려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의 72번째 생일잔치가 열린 지난 9일, 잔치에 참석한 이 회장 손주들의 귀티나는 차림새와 그에 어울리는 환한 표정이 누리꾼들 사이에서 화제가 됐다. “입에 은수저도 아닌 다이아몬드 수저를 물고 태어났구나.” 누리꾼들은 부러움 반, 시기 반의 촌평을 남겼다.

이날 경기도 의정부시에 있는 경기북부 아동일시보호소(일시보호소)에서 만난 여덟살 혜진이의 표정은 밝았다. 경제 사정 때문에 부모한테 두번씩이나 버려진 아픔을 아이의 얼굴에서 찾아보기는 힘들었다. 일시보호소는 갖가지 이유로 부모와 사회에서 외면받은 아이들이 잠시 동안 보호받는 곳이다. 아이들은 이곳에서 3개월 정도 머문 뒤 흔히 ‘보육원’이라고 부르는 아동복지시설로 옮겨 간다.

혜진이는 태어나자마자 부모의 손을 떠났다. 이 세상에 대한 의식이 형성되는 급속한 각인의 시기, 혜진이는 6년의 긴 시간을 아동복지시설에서 보냈다. 지난해 2월 그리운 엄마·아빠의 품으로 복귀했지만, 행복은 오래 가지 않았다. 아홉 달이 채 지나지 않아 혜진이 부모는 혜진이에게 다시 이별을 통고했다. 부모의 따뜻한 품속에서 어리광부리는 보통의 아이들은 존재조차 모르는 장소에 혜진이가 온 게 벌써 두번째다.

일시보호소 지하 1층에 고사리 학교가 있고 그 옆에는 놀이방이 있다. 혜진이는 놀이방 바닥에 앉아 혼자 놀고 있었다. 혜진이는 “같이 놀자”며 낯선 기자의 손을 잡아 끌었다. 보호소 생활에 익숙한 느낌이다. “친한 아이들이 별로 없어요.” 주방놀이를 하던 혜진이가 혼자 노는 이유를 설명했다. 정에 굶주린 걸까. 다른 아이들도 “놀아달라”며 달려들었다. 주변이 소란스러워지자 혜진이는 조용히 옆방으로 옮겨 갔다. ‘고사리 학교’ 문패가 보였다.

오후 자유시간이라서 놀이방에 있었지만, 원래 혜진이가 이곳에서 가장 좋아하는 공간은 ‘고사리 학교’ 교실이다. 고사리 학교는 일시보호소 안에서 운영중인 일종의 대안 교육시설이다. ‘보호’를 받는 아이들이기 때문에 부득이하게 단절될 수 있는 학업을 이어나가게 해주고, 음악·미술·연극 치료 등을 통해 상처받은 ‘고사리손’들을 어루만진다.

혜진이가 고사리 학교 교실을 좋아하는 것은 책 때문이다. 친구보다 책을 더 좋아한다. 500여권의 책이 있는 교실은 혜진이에겐 천국이다. 그 가운데 <신데렐라>는 ‘완소’(완전소중한) 동화책이다. 하지만 혜진이는 이제 고사리 교실을 떠나야 한다. ‘일시’보호소가 아니라 ‘장기’ 보호시설인, 그룹홈(소규모 가정식 아동복지시설)으로 가야 하기 때문이다.

■ 가난과 장애가 두번이나 갈라놓은 가족 2006년 7월, 혜진이는 오른쪽 다리를 못 쓰는 지체장애 3급 아빠(55)와 사리분별이 겨우 가능한 지적장애 2급 엄마(33) 사이에서 태어났다. 먹고사는 것 자체가 어려운 아빠는 난 지 석달도 되지 않은 혜진이를 경기 안양시의 경기남부 아동일시보호소에 맡겼다. 석달을 지낸 뒤 혜진이는 수원의 한 보육원으로 둥지를 옮겼다. 혜진이의 머리에는 보육원에서의 기억만 남아 있다. “그 전은 기억이 안 나요.” 아이는 고개를 갸우뚱했다.

다리가 불편한 혜진이 아빠는 작은 트럭을 몰며 퀵서비스 일을 했다. 하지만 평소 우울증과 알코올의존 증세를 보이던 아빠에게 일감은 많지 않았다. 돈이 떨어지자 그나마 있던 트럭도 팔아치웠다. 국민기초생활수급자로 지정돼 실업상태의 삶을 이어나갔다. 지적장애가 있는 엄마는 혜진이에게 충분한 보살핌을 주기 힘들었다. 부모는 혜진이를 지극히 사랑했지만, 사랑만으로 아이를 키울 수는 없었다. 홀로 양육을 할 수 없다는 것을 안 아빠는 갓난쟁이 혜진이를 일시보호소에 맡겼다.

그 뒤로 죽 혜진이는 시설에서 컸다. 가끔 아빠가 면회를 오긴 했지만 기억의 대부분은 보육원 생활이 차지하고 있다. 그렇게 5년여를 살았다.

지난해 2월, 혜진이는 보육원을 떠나야 했다. 6살 이하의 아이들만 지낼 수 있는 곳이었기 때문이다. 보육원 쪽이 더 큰 아이들도 지낼 수 있는 다른 보육시설로 보내려고 하자, 혜진이 아빠는 “내가 굶어 죽는 한이 있어도 아이를 키우겠다”며 혜진이를 데려갔다. 부모와 함께 지낼 수 있는 보편적 권리가 혜진에게도 찾아오는가 싶었다.

문제는 그때부터였다. 아빠는 다른 아이보다 말도 많고 궁금한 것도 많은 혜진이를 마음에 들어하지 않았다. 술에 취해 누워 있는 아빠에게 혜진이는 자꾸 달려들어 말을 걸었다. 혜진이의 수다는 애정결핍에서 비롯된 신호였지만, 아빠는 이해하지 못했다. 급기야 혜진이를 때리기 시작했다. 아빠의 우울증도 심해졌다.

지난해 11월 말, 혜진이를 데리고 온 지 9달 만에 아빠는 혜진이의 양육을 다시 포기했다. 파주시청에 찾아가 아이를 시설에 맡겨달라는 요청서를 작성했다. 요청서와 함께 작성한 경위서에는 혜진이에게 두번째 상처를 안길 수밖에 없는 아빠의 절박함이 드러나 있다.

“기초생활수급 받아서 생활하는 저는 지체장애 3급, 엄마는 정신지체 2급으로 능력이 안되어서, 아이만이라도 제대로 살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시설로의 입소를 간절히 원합니다.”

그렇게 혜진이는 또 버려졌다.

■ “아빠 일감 많이 생겼으면…” 혜진이의 기도 혜진이를 처음 만난 건, 경기북부 아동일시보호소에서 한달 남짓을 지낸 혜진이가 이곳을 떠나기 사흘 전이었다. “저는 이제 그룹홈으로 가요.” 혜진이는 아무렇지 않은 듯 말했다. 자신이 일반 보육원이 아닌 그룹홈으로 간다는 것도 정확히 알고 있었다.

혜진이는 과거에 머문 보육원 얘기를 잘 하지 않으려 했다. 지하의 고사리 학교에서 자리를 옮겨 1층의 ‘민들레 방’으로 갔다. 민들레 방은 4살 이상의 아이들이 잠을 자는 방이다. 아이들이 활동을 하는 낮시간이어서 방은 비어 있었다. 조용하고 따뜻한 온돌방에 앉자 혜진이의 입이 조금씩 열렸다. 혜진이는 지금의 일시보호소가 더 좋다고 말했다. “그곳(보육원)에선 선생님들이 많이 혼냈어요. 여기 선생님들은 혼도 안 내고 좋아요.” 밝은 얼굴 표정 뒤에 감춰진 마음속의 상처가 어렴풋이 보였다.

혜진이에게 친구 사귀기는 쉽지 않았다. 놀이방에서 놀기보다 텅 빈 고사리 학교 교실에서 책읽는 것을 좋아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한살 어린 예빈이, 동갑인 선혜와 그나마 친한데, 아이들이 자꾸 달라붙어서 귀찮다고 했다. 또래들보다 성숙한 혜진이의 특성 탓인 듯했다.

여덟살 혜진이가 부모님과 함께한 시간은 9달에 불과하다. 비록 짧은 시간이었지만, 혜진이에게는 많은 추억을 안겨줬다. 그때 처음으로 놀이동산에 가봤다. 회전목마가 제일 재밌었다. 언제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엄마와 또 같이 가고 싶다.

혜진이의 원래 꿈은 가수였지만 금세 의사로 바뀌었다. 그것도 아프리카의 아픈 아이들을 돌봐주는 의사가 멋져 보였다. “사실 노래도 잘 못해요”라며 혜진이는 자지러지게 웃었다. “의사가 되면 아빠 다리도 고쳐줄 수 있잖아요.” 혜진이가 눈에 힘을 줬다.

자신을 버린 부모님을 미워하지는 않을까. 혜진이는 밤마다 기도를 한다고 했다. “성부·성자…아 뭐더라. 아무튼 엄마·아빠 건강하게 해주시고요. 그리고 참, 아빠 일감이 많이 생겼으면 좋겠어요.” 혜진이는 자신이 버려진 이유를 알고 있었다. 그것은 ‘가난’이었다.

경기북부 아동 일시보호소엔
가정학대·궁핍 겪은 아이 41명 생활
고사리학교서 배우고 치료 받지만
애정에 목말라 보채고 잦은 다툼도
‘아이 찾으러 오마’는 기약없는 약속
얘들은 “아빠 언제 와요?” 또 묻는다

■ 상처입은 ‘고사리손’이 모이는 곳 ‘고사리 학교’ 현재 41명의 아이들이 경기북부 아동일시보호소에서 생활한다. 이 가운데 20명은 태어난 지 몇 달도 되지 않은 영아들이다. 대부분 미혼모가 낳은 아이들이다. 부모도 모른 채 버려진 아이도 2명이나 된다. 이 아이들은 대부분 다른 가정으로 입양된다.

나머지 21명의 아이들은 취학반인 ‘나무반’과 미취학반인 ‘새싹반’으로 나뉜다. 나무반은 고사리 학교에서 수업을 받는다. 혜진이도 올해 들어 새싹반에서 나무반으로 옮겼다.

고사리 학교는 전국의 일시보호시설 가운데 처음으로 2011년 9월 설립됐다. 15평 정도의 크기에 달랑 책상 9개가 놓인 단출한 교실이지만, 일시보호소 가운데는 여전히 유일한 학교다. 수업은 개별학습으로 진행된다. 나무반 9명의 나이대가 다양하기 때문에 일괄적인 수업은 불가능하다. 나이가 많은 아이들은 <교육방송>의 동영상 강의를 보거나 학습지 등을 풀고, 어린아이들은 동화책을 읽는다. 치료학습도 중요한 과정이다.

아이들이 이곳에 들어온 이유는 크게 두가지다. 학대와 경제적 이유다. 학대에는 성적 학대도 포함된다. 하지만 일부 부모의 인격적 문제를 빼고는 대부분 아이들의 입소 배경에 빈곤의 문제가 깔려 있다. 학대를 당한 아동의 부모도 대부분 경제적으로 사정이 어렵긴 마찬가지다. 일시보호소는 아이들을 분류할 때 이 중 어떤 부분이 더 결정적으로 작용했는지를 볼 뿐이다. 일시보호소의 최서현 사회복지사는 “경제적으로 문제가 없는 가정의 아이는 1~2명도 안 된다. 대부분 정상적인 가정생활이 힘들 정도로 경제적 상황이 열악하다”고 말했다.

■ 폭력에 길들여지고 애정에 목마른 아이들 지난 10일 고사리 학교에서는 요가 수업이 한창이었다. 아이들은 집중을 하지 못했다. 또래 아이들이 그렇듯, 수시로 일어나 교실을 돌아다니고 자기들끼리 티격태격 싸움을 했다. 동시에 아이들은 애정에 목말라했다. 낯선 사람을 보면 달려들어 안아달라고 보챈다. 때로는 자기가 받은 상처를 폭력으로 표출하기도 한다. 자기들끼리 싸움도 잦고, 질투도 심하다. 앞뒤로 앉은 병철(10)이와 민수(12)는 독서수업 시간에 벌떡 일어나 서로 치고받았다. 교사가 겨우 말렸지만, 아이들은 분에 못 이겨 씩씩거렸다. 이런 풍경은 자주 벌어진다. 최서현 사회복지사는 “대부분 학대나 애정결핍 상황을 경험했던 아이들이라 주의력결핍과잉행동장애(ADHD) 성향을 가진 아이들이 많다. 특히 학대를 당한 경험이 있는 아이들은 다른 아이들이 잘 때도 때린다”고 말했다. 폭력이 전이되는 것이다.

이곳에서 생활하고 있는 41명의 아이들 가운데 8쌍은 형제나 자매다. 아이를 모두 보호소에 맡길 만큼 경제적으로 어려운 부모들이 적지 않다는 의미다. 혜민(1)·혜영(4) 자매를 모두 시설에 맡긴 민수영(가명·33)씨는 자신도 입양아 출신이다. 사회 적응에 실패한 민씨는 결국 양부모로부터 파양되고 정처없이 거리를 떠돌아다녔다. 그러다 남편을 만나 두 아이를 낳았다. 하지만 남편과는 곧 별거에 들어갔고, 아이들은 아빠가 데려갔다. 이런 와중에 새 동거남을 만나 혜민·혜영 자매를 낳았지만, 그 역시 곧 떠나갔고 민씨는 모텔을 전전하며 생활했다. 본인의 파양에 따른 성본소송이 진행중이라 아이들 출생신고조차 하지 못한 상태다. 전남편과의 이혼절차도 끝나지 않았다. 최씨는 기관에 찾아와 “분유를 살 돈도 없다”며 사정했다. 직장을 잡으면 아이를 꼭 찾으러 오겠다고 했지만, 그게 언제인지는 알 수 없다.

윤서(4)·윤만(5) 형제는 친할머니가 신고를 해 들어온 경우다. 두 아이를 맡긴 최민현(가명·33)씨는 목공일로 생계를 유지했다. 두 아이를 낳은 뒤 이혼으로 가정이 쪼개졌다. 최씨는 전국을 떠돌아다니면서 일을 해야 했기 때문에 집을 밥 먹듯이 비웠다. 처음에는 할머니가 아이들을 봐주었지만, 노환으로 인해 아이들을 자주 봐줄 수 없는 상태가 됐다. 아이들은 홀로 방치됐고, 이를 보다 못한 할머니가 아동보호전문기관에 신고를 한 것이다. 윤서는 일시보호소에 들어오면서부터 아빠를 찾고 있다. 지금도 “아빠가 언제 오느냐”며 수시로 보육교사를 보챈다.

지난 11일 오전 경기도 의정부시 녹양동 경기북부 아동일시보호소 고사리 학교 교실에서 아이들이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에게 보내는 편지를 쓰고 있다.   의정부/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지난 11일 오전 경기도 의정부시 녹양동 경기북부 아동일시보호소 고사리 학교 교실에서 아이들이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에게 보내는 편지를 쓰고 있다. 의정부/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 혜진이의 미래는… 혜진이의 하루 일과는 단순하다. 아침 7시30분에 일어나, 세수를 하고 2층에 있는 식당으로 가 아침을 먹는다. 그리고 나서 9시께 고사리 학교 수업을 시작한다. 오전 수업을 마치고 점심을 먹고 나면 주로 음악과 미술 치료를 받는다. 그밖에는 자유시간이다. 놀이방에서 놀기도 하고 고사리 학교 교실에서 책을 본다. 저녁이 되면 케이블 티브이의 만화채널을 보다가 밤 9시30분께 잠이 든다.

보호소를 떠나던 11일에도 혜진이는 변함없이 7시30분에 하루 일과를 시작했다. 오전 수업시간엔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께 드리는 편지’를 썼다. 혜진이는 “먹을 거 좀 주세요”라는 짤막한 편지를 썼다. 평소 초콜릿을 좋아하는데, 일시보호소에서는 먹을 수 없어서 부린 투정이었다. 다른 아이들도 “장난감이 갖고 싶어요”, “여기서 나가게 해주세요” 같은 소박한 바람을 적었다. 친부의 성학대로 이곳에 들어온 한 아이는 “왜 대통령이 되려고 하셨나요. 국민의 소리를 들어주는 올바른 대통령이 되시길…”이라는 어른스런 말을 남겼다.

오전 수업을 마친 혜진이는 사골곰국과 깍두기로 점심을 먹었다. 일시보호시설에서 먹는 마지막 밥이었다. “그룹홈 가면 초콜릿 많이 먹을 수 있겠죠?” 혜진이는 밝게 웃었다. 점심을 마친 혜진이는 다시 고사리 교실로 가 책을 집어 들었다. 고사리 교실에서 보는 마지막 책이다. 책 제목은 <한여름의 크리스마스>. 추위를 피해 열대 지방으로 간 어느 두더쥐 가족이 행복한 크리스마스를 보낸다는 내용이다. 크리스마스 얘기를 꺼내자 혜진이의 표정이 갑자기 어두워졌다. “산타 할아버지가 나한테만 안 와요. 다른 아이들한테는 다 가는데….”

책을 읽고 나선 다른 아이들 가운데 그나마 친한 예빈이·선혜와 함께 음악치료 수업을 받았다. 아이들은 북 주변에 둘러앉아 있는 힘껏 북을 두드리며 노래를 불렀다. “아이들의 억눌려 있던 감정을 표출하는 효과가 있다”고 교사는 설명했다.

아이들은 이어 교사의 반주에 맞춰 노래를 불렀다. 혜진이의 마지막 수업이었다. 예빈이와 선혜도 조만간 떠날 예정이지만, 먼저 가는 친구에게 “잘 가라”며 손을 흔들었다. 교실을 나온 혜진이는 교사의 손을 잡고 민들레 방으로 갔다. 입소 때 가져온 짐을 챙기기 위해서다. 일시보호소에서 준 꽃무늬 원피스를 벗은 혜진이는 들어올 때 입었던 투박한 패딩으로 갈아입었다. 보육교사는 혜진이가 좋아하는 초콜릿을 감기약 봉지에 담아주었다.

그룹홈에서 자라게 될 혜진이의 미래는 어떻게 될까. 밝지만은 않은 것이 냉정한 현실이다. 2011년 중앙아동자립지원센터는 보건복지부의 의뢰로 18살까지 시설에 머물다 퇴소한 이들의 실태조사 보고서를 내놨다. 보고서를 보면, 2011년 기준으로 시설 퇴소자의 월평균 소득은 101만~150만원이 61.1%로 가장 많았고 월소득 100만원 이하도 22.5%에 달했다. 퇴소자 10명 가운데 8명은 월 150만원 미만의 소득에 그친 것이다. 정규직 비율은 56.2%로, 2009년도의 63.6%보다 하락했다. 취업 분야도 기능직(19.9%)과 단순노무직(19.4%)이 가장 높게 나타났다. 부모의 양육에서 밀려난 아이들은 커가면서도 주거·진학·취업 등에서 계속 어려움을 겪고, 결국 성인이 돼서도 빈곤계층으로 접어들고 있다는 게 보고서의 결론이다.

한 수녀가 중학생으로 보이는 아이와 함께 일시보호소 사무실로 들어왔다. 혜진이가 갈 곳은 천주교에서 운영하는 그룹홈이다. 파주에 있다. “좋은 곳으로 가게 돼 다행이다”라며 직원들이 안도했다. 수녀와 같이 온 아이도 이곳 출신이다. 선생님들께 인사하러 들렀다고 했다. 오후 3시40분. 혜진이는 수녀의 손을 잡고 은색 승합차에 올라탔다. 배웅하는 어른들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혜진이는 계속 웃었다. “안녕.”

의정부/이정국 기자 jg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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