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터니 : 귀국 유학생

영국의 한 대학에서 관광경영을 공부한 김선용(가명·27)씨는 현지 호텔에 취업하려던 계획을 지난 8월 포기했다. 졸업을 앞둔 지난 4월 영국 정부가 외국 유학생의 취업을 허용해주는 취업준비 비자(PSW) 제도를 폐지했기 때문이다. 영국 정부는 2008년 세계 금융위기 이후 자국민의 일자리를 보호한다며 반이민 정책을 펴고 있다.

결국 한국으로 돌아왔지만 김씨를 반기는 국내 기업도 없었다. 김씨는 올가을 포스코, 현대그룹, 케이티(KT) 등 국내 대기업 12곳에 원서를 넣었지만 1차 서류심사에서 모두 탈락했다. 뛰어난 영어 실력과 유학파라는 ‘스펙’은 도움이 되지 않았다. 김씨는 “올해 취업은 포기했다”며 “컴퓨터 자격증부터 다시 따려 한다”고 씁쓸하게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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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스트레일리아에서 대학을 졸업하고 이민까지 생각했던 서동현(가명·27)씨도 2010년 영주권 취득 요건이 강화되는 바람에 지난 7월 귀국했다. 같은 달 오스트레일리아 정부는 종전 영주권 발급 대상인 ‘인력부족 직업군’을 408개에서 181개로 줄였다. 미국 정부도 2009년 2월 ‘근로자고용법’을 만들어 구제금융 수혜 기업에 대해서는 외국인의 취업을 제한했다.

김씨와 서씨처럼 현지에서 취업을 하지 못하고 국내로 돌아오는 귀국 유학생들인 ‘리터니’(returnee)들이 크게 늘고 있다. 2008년 세계 금융위기 이후 각국에서 확산되고 있는 반이민 정책 때문이다. 국외에서 1년 이상 체류하다가 국내로 돌아온 만 21~30살 입국자는 2002년 2만3710명에서 2010년 4만113명으로 2배 가까이 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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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학 경력에도 불구하고 국내 취업에 어려움을 겪는 것은 주로 유명 대학을 졸업하지 않은 리터니들이다. 홍준기 이커리어 컨설턴트 대표는 “미국 아이비리그 등 명문대 출신들은 일부 대기업이 우대하고 있지만 외국 중위권 대학을 졸업한 이들은 기업들이 국내 명문대 출신보다 우대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국내 기업의 취업 절차도 리터니들에게 생소하다. 미국에서 대학을 졸업했으나 취업비자를 발급받지 못해 지난 2월 귀국한 이윤지(가명·29)씨는 “자기소개서, 압박 면접, 인·적성 검사 등 미국과 너무 다른 채용 절차 때문에 힘들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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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 등 일부 대기업은 영문 인·적성 검사 등 유학생 전형을 따로 운영하고 있지만, 리터니들에겐 인·적성 검사 자체가 낯설다. 한 대기업 관계자는 “짧은 시간 안에 다양한 분야의 많은 문제를 푸는 수능 스타일의 인·적성 검사를 리터니들이 어려워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리터니들을 대상으로 한 취업 전문 학원까지 등장했다. 지난해 8월 문을 연 서울 강남구 논현동의 ‘ㅌ커리어아카데미’는 리터니를 대상으로 8주 동안 자기소개서 작성, 면접, 인·적성 검사 등을 대비하는 과정을 열어 100만~300만원의 수강료를 받는다. 현재 40여명이 이 과정을 수강하고 있다.

한국노동연구원의 남재량 박사는 “리터니들이 늘면서 일종의 사회현상이 됐는데 그동안 우리 사회는 이들에 대한 관심 자체가 없었다”며 “리터니 규모가 급증하면서 국내 취업 시장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만큼 이들의 상황에 대한 연구나 대책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허승 기자 raison@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