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기훈씨 유서대필 조작사건 일지
강기훈씨 유서대필 조작사건 일지

1991년 유서대필 조작사건으로 옥고를 치른 강기훈(사진)씨의 변호인들이 4일 대법원에 의견서를 냈다. 간암 수술을 받은 강씨의 건강이 악화되고 있어 제대로 법정에 서기 어려운 상황이 올 수도 있으니, 재심 결정을 3년째 미루고 있는 대법원이 서둘러 달라고 호소하는 내용이다. 고통 속에 21년을 보내고 이제 육신의 건강마저 잃어버린 쉰살의 강씨에겐 마지막 탄원이 될 수 있다.

변호인단은 의견서에서 서울고등법원 형사10부(재판장 이강원)가 2009년 9월15일 강씨에 대한 재심 개시를 결정한 뒤 검찰이 대법원에 즉시항고를 한 것도 이제 2년10개월이 되어간다며, “본안에 대한 실체판단을 하는 것도 아닌데 도대체 무슨 이유로 대법원의 결정이 늦어지고 있는지 도저히 납득할 수 없다”고 밝혔다. 변호인단은 “대법원이 의도적으로 사건을 지연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지울 수 없다”며 재판 진행을 협의하기 위한 재판부와의 면담을 신청했다.

변호인단은 강씨의 건강 상태로는 더는 재심 결정을 미룰 일이 아니라고 강조했다. 강씨가 5월23일 간암 수술을 받은 뒤 심각한 합병증으로 다시 입원치료를 받았고, 간암이 재발하거나 더욱 악화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것이다. 변호인단은 “2007년 11월 진실화해위원회가 유서대필 사건이 조작일 가능성을 밝힌 뒤에도 강씨의 아버지와 어머니는 재심을 통해 아들의 누명이 풀리는 것을 끝내 보지 못하고 간암으로 별세했다”며 “진실의 문이 열릴 듯 열리지 않은 채 대법원에서 3년 가까이 사건이 방치되는 동안 강씨의 정신적 고통과 스트레스가 지속됐고, 결국 이것이 고스란히 간암으로 이어졌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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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서대필 혐의로 옥살이를 한 강기훈씨가 출소 이후인 지난 1998년 3월 경기도 마석 모란공원 내 김기설씨의 묘소를 찾았다.(왼쪽) 1991년 6월
유서대필 혐의로 옥살이를 한 강기훈씨가 출소 이후인 지난 1998년 3월 경기도 마석 모란공원 내 김기설씨의 묘소를 찾았다.(왼쪽) 1991년 6월

변호인단은 “무엇보다 강씨가 자신에게 남은 시간이 많지 않을 수 있다는 생각에, 법정에서 자신의 억울함에 대하여 진술할 기회조차 없을 수도 있다는 생각에, 누구보다 힘들어하고 있다”며 “만에 하나 강씨의 건강이 더욱 악화돼 제대로 법정에서 변론하기 어려운 상황이 생긴다면 법원 역시 그 책임에서 결코 자유로울 수 없을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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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씨는 이날 <한겨레>와의 통화에서 대법원의 재심 결정이 미뤄지고 있는 데 대해 “갈 길이 먼데…”라며 안타까워했다. 그는 “잘못된 판결을 재심을 통해 바로잡는 일만으로도 시간이 만만찮게 걸릴 것인데, 제가 그 시간까지 갈 수 있을는지조차 모르겠다”고 말했다.

강씨는 전국민족민주운동연합(전민련) 총무부장이던 1991년 5월8일 노태우 정권에 반대해 서강대에서 분신자살한 김기설(당시 25살) 전민련 사회부장의 유서를 대필한 혐의로 옥고를 치렀으나, 이후 새로운 증거가 드러나 2009년 재심 개시 결정을 받았다. 그러나 검찰은 대법원에 즉시항고했으며, 대법원은 현재까지 재심 개시 여부를 결정하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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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원 관계자는 “법률적 쟁점이 많아 여러 측면에서 검토중인 것으로 안다”며 “아직 결정 선고 기일은 정해지지 않았다”고 말했다. 대법원은 2부(주심 양창수 대법관)에 배당된 이 사건을 대법관 전원이 참여하는 전원합의체에서 심리하는 방안도 검토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이에 따라 이 사건의 재심 결정 선고는 일러도 7월 말이나 8월에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여현호 선임기자 yeopo@hani.co.kr

“시효때문에 처벌 못해도, 사건 조작자 역사앞에 밝혀야” 간암 합병증 고통받는 강기훈씨 [%%IMAGE4%%] 잘못된 판결 시정돼야 하는데 그때까지 내가 갈 수 있을지…

“갈 길이 먼데… 제가 그 시간까지 갈 수 있을는지 모르겠네요….” 스물아홉의 젊은이는 이제 걷는 것도 힘들어하는 쉰살의 환자가 됐다. 1991년 유서대필 조작사건의 강기훈씨는 간암 수술 뒤 요양 치료를 위해 지방의 한 치유센터에 머물고 있다. 4일 <한겨레>와 전화통화를 한 강씨는 내내 힘들어하면서도, 사법부가 더는 시간을 끌지 말아야 한다고 촉구했다.

-건강은 어떤가?

“별로 좋은 편은 아니다. 지난 5월23일 입원해 간 한쪽의 절반가량을 잘라내는 수술을 했다. 종양이 2개 나왔다. 6월11일 퇴원했는데 합병증이 도져서 6월27일 다시 입원해 어제 퇴원하고 여기로 내려왔다. 합병증은 간 정맥류인데, 처음엔 간 위쪽에서 터져서 피를 토했고 다음엔 간 아래쪽에서 터졌다. 이제 치료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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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 암에 걸린 것을 알았나?

“부모님이 모두 간암으로 돌아가신 뒤 3개월마다 시티(CT) 촬영을 하면서 정기적으로 검진을 받아왔다. 1월엔 이상이 없었는데 4월 말에 이상이 나타났다. 정밀검사를 해보니 악성종양이었다. 즐겁게 지내야 암도 이겨낼 수 있다고 하는데, 그게 말처럼 쉽지 않다.”

강씨의 아버지는 2007년 11월 진실화해위원회의 진실규명 결정 뒤 재심을 통해 아들의 누명이 풀리는 것을 보지 못한 채 2008년 12월 간암으로 별세했다. 어머니도 간암이 뼈로 전이되면서 2010년 4월 별세했다. 강씨는 이런 일로 더욱 괴로워했고,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와 우울증 치료를 받아야 했다. 간암 발병은 가족력과 함께 이런 스트레스 때문으로 보인다.

-대법원의 재심 결정이 늦어지고 있는데?

“사법부가 재심의 기회를 기약 없이 봉쇄하고 있다. 공직자라면 공직자로서의 역할을 다해야 할 것인데, 주어진 권한을 남용해 이렇게 시간을 끄는 것은 곤란하다. 어떻게 보면 내 몸 상태가 이 지경에 이르는 상황을 바라는 게 아닐까 의심스러울 정도다. 사법부도 사건 조작에 책임이 있는 일종의 공범이기 때문이 아니냐는 생각도 든다. 사법부가 자기 잘못을 되돌릴 기회라고 적극적으로 생각해야 하는 게 아닌가. 이미 고등법원에서 재심 사유에 해당한다고 결정했는데도 대법원이 아무런 이유 없이 시간을 끄는 것은 옳지 않다. 재심을 열라고 하는 것이니, 본안에 대한 판단은 재심에서 해도 되는 것 아니냐. 대법원이 쥐고 있을 이유가 없다. 나쁜 행동이다. 나중에 비판받지 말고 얼른 결정을 내려줬으면 한다. 시간이 없지 않은가.”

-재심 법정이 열리면 꼭 하고 싶은 말은 무엇인가?

“그건 정말 머나먼 얘기다. 갈 길이 먼데…. 이번 일은 나의 신원 문제뿐 아니라, 사건을 만들어내고 지휘한 사람들까지 조사해야 한다. 시효 때문에 처벌은 하지 못해도 누가 그렇게 사건을 조작했는지는 역사 앞에 밝혀내야 한다. 하지만 그러기에는 갈 길이 멀다. 지금은 어떻게든 잘못된 판결을 바로잡는 것까지만이라도 됐으면 좋겠다. 그것도 시간이 만만찮게 걸릴 텐데… 내가 그 시간까지 갈 수 있을는지조차 모르겠다.”

강씨는 체력이 아직 살아나지 않아 걷는 것도 힘들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혼잣말처럼 “갈 길이 먼데…”라는 말을 거듭했다.

여현호 선임기자 yeopo@hani.co.kr

‘강기훈 유서대필’ 사건은 6공 “유서 대신 써줘 분신종용” 민주화세력 매도국과수 “김기설씨 유서 스스로 작성했다” 번복진실화해위, 2007년에 “대필 아니다” 재심 물꼬 강기훈 유서대필 사건의 시작은 1991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해 4월26일 명지대 1학년 강경대씨가 시위 도중 경찰의 쇠파이프에 맞아 숨지는 사건이 일어났다. 그러자 전국 곳곳에서 대학생과 재야단체 인사들이 이에 항의해 잇따라 분신하는 이른바 ‘분신정국’이 이어졌고, 5월8일에는 서강대 본관 옥상에서 전국민족민주운동연합(전민련) 사회부장 김기설씨가 유서를 남기고 몸에 불을 붙인 뒤 투신해 숨졌다. 그러자 박홍 당시 서강대 총장은 “죽음을 선동하고 이용하려는 어둠의 세력이 있다”고 주장했고, 열흘 뒤인 5월18일 검찰은 “김기설씨의 유서와 가족이 제출한 김씨의 필적이 다르다”고 발표했다. 검찰은 김씨의 유서를 대신 쓴 인물로 강기훈 당시 전민련 총무부장을 지목했고, 6월24일 강씨를 자살방조 혐의로 구속 기소했다. 노태우 정권은 “유서까지 대신 써주며 분신을 종용했다”고 민주화운동 세력을 매도하고 나섰다. 강씨는 수사와 재판 과정에서 유서를 대필하지 않았다고 일관되게 주장했지만, 이듬해 7월24일 대법원은 강씨에게 징역 3년과 자격정지 1년6월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치열한 법정 공방이 벌어지는 동안 이 사건은 ‘한국판 드레퓌스 사건’이라는 별칭을 얻기도 했다. 1994년 8월17일 형기를 모두 채우고 출소한 강씨에게 명예회복의 기회를 열어준 것은 노무현 정부의 과거사 정리 작업이었다. 2005년 12월 경찰청 과거사위원회는 “(김기설씨의) 유서는 김씨 친필로 보이나 명확한 결론을 내리지는 못했다”고 발표했다. 1991년 사건 당시 김씨의 유서 필적감정을 했던 국립과학수사연구소도 ‘김씨의 유서는 김씨 본인이 작성한 것’이라는 필적 재감정 결과를 내놓았다.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위원회(진실화해위·당시 위원장 송기인)는 2007년 11월13일 “강씨가 김씨의 유서를 대신 쓰지 않았다”며 진실규명 결정을 내렸고, 국가에 재심을 권고했다. 강씨는 2008년 1월31일 법원에 재심을 청구했고, 2009년 9월16일 서울고법 형사10부(재판장 이강원)는 재심 개시 결정을 내렸다. 재판부는 “분신한 김기설씨의 유서가 김씨의 필적과 일치한다는 국립과학수사연구소와 감정기관의 감정 결과가 나왔다”며 “유죄의 확정판결을 더이상 유지할 수 없는 고도의 개연성이 인정된다”고 밝혔다. 하지만 강씨의 명예회복 노력은 검찰과 보수세력의 반발에 발목이 잡혔다. 서울고검 공판부(부장 임권수)는 재심 개시 결정에 불복해 대법원에 즉시항고했다. 대법원은 검찰의 즉시항고 이후 2년10개월이 지나도록 결정을 미루고 있다.유신재 기자 ohora@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