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무총리실 공직윤리지원관실(지원관실)이 이용훈 전 대법원장과 박원순 서울시장, 김문수 경기도지사,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 등을 사찰 대상에 올렸던 것으로 드러났다. 민간인 사찰과 증거인멸 사건을 재수사한 서울중앙지검 특별수사팀(팀장 박윤해)은 지원관실이 사회 각계각층 유력 인사들을 사찰한 사실은 확인했지만, 사찰 지시 및 보고의 ‘윗선’을 밝히는 데는 실패했다.

검찰은 13일 재수사 결과를 발표하며 지원관실을 지휘했던 이영호 전 청와대 고용노사비서관의 ‘윗선’으로, 이미 파이시티 인허가 비리로 구속된 박영준 전 총리실 국무차장을 지목했다. 대통령에까지 이어지는 비선 보고라인을 명시한 ‘공직윤리지원관실의 업무추진 지휘체계’ 문건을 발견하고도 진실을 밝히지 못한 것이다.

지난 3월24일 압수한 김아무개 주무관의 이동식저장장치(USB)에서 나온 이 문건은 “브이아이피(VIP·이 대통령을 뜻함)께 일심(一心)으로 충성하는 별도 비선을 통해 총괄지휘”라며 총리실에 설치된 지원관실이 이 대통령의 하명 사건을 비밀리에 처리하는 ‘엠비판 사직동팀’임을 밝혔다. “브이아이피 보고는 공직윤리지원관→비에이치(BH·청와대) 비선→브이아이피(또는 대통령실장)”라고 비선 보고라인을 적시하며, 사찰 보고의 최고 윗선이 이 대통령임을 분명히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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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검찰은 문건의 비선 보고라인 가운데 ‘이인규 지원관→이영호 비서관→박영준 국무차장’까지만 확인했다고 밝혔다. 박 전 차장은 이명박 정권을 만든 창업공신으로 최고 실세 중 하나였다. 당연히 박 전 차장이 이 대통령에게 사찰 내용 등을 보고했을 개연성이 높지만, 검찰 수사는 박 전 차장에서 멈췄다. 송찬엽 서울중앙지검 1차장검사는 “박 전 차장은 비선 보고를 받았다는 사실 자체를 부인한다”고 전했다.

검찰이 ‘윗선’ 수사에 얼마나 의지를 가졌는지도 의문이다. 검찰은 관련자들이 비선 보고를 부인하고 있어 “정정길 전 대통령실장을 불러봐야 물어볼 것도 없다”고 말하기도 했다. 검찰은 정 전 실장에게서 “지원관실 보고를 받은 적이 없다”는 간단한 서면답변서를 받고 수사를 끝냈다. 장진수 전 주무관에게 관봉 5000만원을 전달했다는 의혹의 당사자인 장석명 청와대 민정수석실 공직기강비서관의 집이나 사무실 압수수색도 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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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이번 사건의 핵심 피의자였던 진경락 전 지원관실 기획총괄과장을 수사한 과정도 심상찮았다. 검찰은 진 전 과장이 매달 지원관실 특수활동비 280만원을 이 전 비서관 등에게 상납했다는 진술을 일찌감치 받아놨다. 그러나 검찰은 출석 요구에 불응하는 진 전 과장에 대해 “참고인 신분이라 본인이 출석을 거부하면 소환이 어렵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그러던 검찰이 총선 다음날인 4월12일 오전 갑자기 진 전 과장 체포에 나섰다. 총선만 끝나길 기다리다가 수사에 나선 모양새였다.

검찰 안팎에서는 ‘사즉생의 각오로 재수사를 하겠다’던 검찰의 이런 석연찮은 행보의 배경에는 권재진 법무장관이 있다는 얘기가 나오고 있다. 권 장관은 2009년 8월부터 2011년 7월까지 청와대 민정수석이었고 이 시기에 불법사찰 사건 1차 수사가 시작됐다. 1차 수사의 불똥이 청와대로 튈 수 있는 위기상황에 권 장관은 이 대통령을 보호해야 하는 자리에 있었던 것이다. 재수사에 나선 검찰은 이제 법무부 장관으로 옮겨앉아 있는 권 장관에 대해 “조사할 필요가 없다”고 선을 긋다가, 이날 수사 발표를 하면서 권 장관이 자진해서 서면진술서를 보내왔다고 밝혔다. 외국 출장 전인 지난 8일치 소인이 찍힌 서면진술서에서 권 장관은 ‘민정수석실은 사찰과 증거인멸에 관여한 사실이 없다. (지난 3월) 장진수 전 주무관의 폭로가 있기 전에 이런 일이 있었는지도 몰랐다’며 의혹을 부인했다고 검찰은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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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중견 검사는 “장 전 주무관이 이미 지난해 1월 중앙징계위원회에서 청와대 관련 폭로를 했는데 그걸 모르고 있었다면 민정수석이 일을 안 한 것”이라며 “민정수석으로 있던 권 장관이 장관으로 있는 한 재수사의 실패는 예견됐다고 봐야 한다”고 말했다.

민주통합당의 ‘MB·새누리정권 부정부패 청산 국민위원회’ 위원장인 박영선 의원은 이날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청와대와 사조직이 불법사찰과 은폐에 직간접적으로 개입했음을 보여주는 증거들이 원숭이한테 검사복을 입혀놔도 충분히 알 수 있을 만큼 쏟아졌는데도 검찰이 또 다시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고 있다”고 비판했다.

김태규 기자 dokbul@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