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일 한나라당이 국회 본회의에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비준동의안을 기습적으로 표결처리하자, 시민사회단체들은 서울 도심에서 대규모 집회를 열며 강하게 반발했다. 이 과정에서 경찰이 물대포를 발사하고, 시위 참가자 일부가 연행됐다.
한-미 에프티에이 저지 범국민운동본부(이하 범국본)와 시민 3000여명(주최 쪽 추산, 경찰 추산 2500명)은 이날 저녁 8시30분 서울 중구 명동에 모여 비준동의안 폐기를 요구했다. 범국본은 “이번 비준안 날치기 처리는 민주주의를 유린하고 의회를 부정하는 쿠데타”라며 “주권을 포기한 퍼주기 협정인 한-미 에프티에이를 폐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 “날치기에 동참한 의원들을 내년 총선에서 전원 낙선시키기 위한 운동에 돌입하겠다”고 선언했다.
시위 참가자들은 경찰 저지선을 뚫고 명동성당 옆 삼일대로 왕복 7차선 전체를 점거한 채 을지로 2가 네거리 쪽으로 행진을 시도했다. 이에 맞서 경찰이 물대포 3대를 동원해 해산 시도를 하면서 양쪽 간 충돌이 발생했고, 시위 참가자 19명이 집시법 위반 등의 혐의로 연행됐다. 시위대의 도로 점거로 한 시간가량 차량 통행이 통제됐다가 10시께부터 부분적으로 풀리기 시작했다.
앞서 범국본은 오후 5시부터 여의도 산업은행 본점 앞에서 1000여명이 모인 가운데 한-미 에프티에이 비준동의안 국회 통과를 규탄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광석 전국농민회총연맹 의장은 “1%가 99%를 지배하겠다는 폭거”라며 “농민들은 삶의 비전을 만들어보고자 여기까지 투쟁해왔는데 앞으로 나갈 길이 없다는 절망감이 농민의 심정일 것”이라고 말했다. 국회 본회의장에서 최루탄을 터뜨린 민주노동당 김선동 의원은 집회에 참석해 “국회에서 비준안을 막지 못해 너무 죄송하다”며 “진짜 폭탄이 있었다면 정부를 폭파시키고 싶다”고 말했다.
허영구 투기자본감시센터 공동대표는 “한-미 에프티에이가 발효돼도 한쪽이 상대 국가에 폐기를 선언하면 무효가 될 수 있기 때문에 이 조항을 걸고 나온 후보를 (내년 선거에서) 뽑자”고 주장했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 등 여러 시민사회단체도 성명을 내거나 입장 발표를 통해 한나라당의 비준동의안 날치기 처리를 강력히 비판했다. 정호희 민주노총 대변인은 “국가 간의 조약을 이런 식으로 처리한다는 건 국회가 입법부임을 포기한 것”이라고 성토했다.
시민들의 비판도 잇따랐다. 희귀병을 앓고 있다는 대학생 이아무개(19)씨는 “수업을 듣다 소식을 듣고 급하게 집회에 나왔다”며 “현재까지는 특수질병보험 적용을 받아 전체 치료비의 10%만 지출하는데, 한-미 에프티에이가 발효된 뒤에는 보험 적용을 받지 못할 가능성이 커 걱정스럽다”고 말했다.
트위터에서도 비준동의안이 기습 처리된 상황을 비꼬며 “오뚜기 3분 국회”(@Chocoberryp)라고 하거나, “중고나라에 올린 대한민국이 미국에 판매 완료됐다”(@islandshow)라는 식의 비난 글이 잇따랐다.
이경미 김선식 최우리 기자 kmlee@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