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순신 동상의 얼굴(오른쪽)과 조각가 김세중의 얼굴(왼쪽). 동상의 얼굴이 이순신 장군의 표준 영정과 다르며 조각가의 얼굴을 닮았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영상화면 갈무리.
이순신 동상의 얼굴(오른쪽)과 조각가 김세중의 얼굴(왼쪽). 동상의 얼굴이 이순신 장군의 표준 영정과 다르며 조각가의 얼굴을 닮았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영상화면 갈무리.

지난 23일 서울 광화문 이순신 동상 복귀 환영식 현장. 40일간 대수술을 마치고 돌아온 이순신 동상은 청와대를 등진 채 광화문 네거리를 굽어보며 옛 위용을 자랑했다. 독전을 알리는 북이 울렸고, 해군 의장대는 돌아온 영웅에게 경의를 표하며 도열했다. 천안함과 연평도 포격으로 떨어진 군 사기를 진작하기 위해 시민들이 부치는 위문편지를 담을 ‘이순신 우체통’도 장군의 옆에 섰다. 축하행사를 지켜본 시민들은 기념사진을 찍으며 영웅의 귀환을 반기는듯했다.

 돌아온 이순신 동상의 겉모습은 예전과 다르지 않았다. 그러나 40일간 자리를 비운 사이 이순신 동상의 심각한 결함을 뜯어고쳐야 한다는 여론이 들끓었다. 외침에 항거해 나라를 지킨 영웅의 동상이 되려 일본식이라는 치명적 결함이 있다는 것이었다. 환영식 자리에서도 일부 시민들은 “이순신 동상을 다시 제작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관련기사] <훅> 이순신 장군 동상의 5대 문제점/ 혜문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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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헌종(인천 갈산동)씨는 “고증에 문제가 있다면 돈이 들어가더라도 우리 것으로 바꾸는 것이 옳다”고 말했다. 주부 이재영(경기 청덕동)씨도 “일반 시민들이 봐선 동상에 어떤 문제가 있는지 알기 어렵기 때문에 역사학자 등이 좀 더 깊은 연구를 해서 고증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숱한 논란을 안고 돌아온 지금의 이순신 장군 동상이 안고 있는 문제점은 무엇일까?

 # 중국 갑옷을 입고 오른손에 일본도를 든 이순신 동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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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왕조실록 환수위원회 간사이자 삼성문화재단과 현등사 사리구 반환소송을 진행중인 혜문스님. 이정아 기자
조선왕조실록 환수위원회 간사이자 삼성문화재단과 현등사 사리구 반환소송을 진행중인 혜문스님. 이정아 기자


이순신 동상이 안고 있는 문제점은 크게 다섯 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오른손에 칼을 쥐고 있어 패장의 모습이라는 점(장군이 왼손잡이가 아님에도 오른손에 칼집에 든 칼을 쥐어 뽑기 어렵기 때문에 항복하는 장수와 같다는 지적) △쥐고 있는 칼이 일본도라는 점 △입고 있는 갑옷이 ‘중국 갑옷’이라는 점 △동상의 얼굴이 이순신 장군의 표준 영정과 다른 점 △동상 앞의 독전고(전투를 독려하는 북)이 뉘어 있다는 점 등이다.

 이와 같은 지적은 동상이 광화문광장에 들어선 1968년 뒤로 끊임없이 제기됐다. 그러나 해결을 보지 못하고 이어져 내려와 지난 23일 동상의 복귀 때에도 웃지 못할 아이러니를 가져왔다. 이날 오세훈 서울시장은 장군의 복귀를 알리고자 장군 앞에서 힘껏 북을 쳐서 울렸다. 그러나 북 치는 오 시장 뒤편에 놓여있는 장군의 독전고는 맥빠지게 누워 있는 상태 그대로였다. 환영 행사가 동상이 안고 있는 문제점을 웅변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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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상의 제작자인 조각가 김세중 유족 쪽을 비롯해 동상을 옹호하는 쪽에서는 언론 인터뷰 등을 통해 이와 같은 지적이 다음과 같은 점을 간과하고 있다고 밝혔다. △동상은 전시가 아닌 평시를 상정하고 만들었기 때문에 오른손에 칼을 쥐고 있는 것 △현충사에 있는 실제 장군의 칼이 일본도이고 이를 참조해 제작 △중국식 갑옷은 이당 김은호 화백의 장군 영정을 참조 △장군의 표준 영정은 동상이 제작된 지 5년이 지난 1973년에 지정됐다는 것이다. 또한, 이미 40여년 동안 광화문 네거리를 지키고 있는 것 자체가 역사적인 가치라는 주장이 현재의 이순신 동상의 보존을 지탱하는 주요한 근거로 자리 잡고 있다.

 # 1979년 다시 제작하려다 박정희 죽음으로 흐지부지

 그러나 동상의 문제점을 지적해온 ‘문화재 제자리 찾기 운동’의 사무총장 혜문 스님은 이에 대해 “이해할 수 없는 이유”라고 말했다. 혜문 스님은 “김세중 조각가가 참조했다는 이당의 영정은 칼을 왼손에 쥐고 있는데 이를 두고 중국 갑옷만 참조했다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으며, 현충사에 소장된 칼은 1m 97cm에 달하는 의전용 칼로서 현재 동상에 맞게 묘사한다면 장군이 패용했던 실전용 칼, 쌍용검을 택했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와 같은 동상의 문제점은 이미 1977년 5월 문화공보부의 영정심의위원회에서도 지적됐다. 당시 최아무개 위원은 “제작 때 고증에 다음과 같은 잘못이 있었다”며 △(동상 앞에 놓인) 거북선의 폭은 더 좁고 길어야 하며 △투구 갑옷도 그대로는 곤란하고 △안형(얼굴 모양)이 서양인 닮았다고 지적했다. 이런 논의를 바탕으로 서울시에서는 1979년 동상을 다시 제작할 것을 요청해 문공부에 허가를 받기도 했으나, 박정희 대통령의 죽음 뒤에 흐지부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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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시의회 ‘짝퉁 동상 보류’ 결의안…논란은 계속될 전망 

서울시가 환영식까지 성대하게 열며 이순신 동상은 광화문광장에 복귀했지만, 논란은 그치지 않을 전망이다. 우선, 민주당이 다수를 점한 서울시의회가 이순신 동상에 대한 문제제기를 계속할 태세다. 시울시의회 문상모(민주당) 의원을 비롯한 25명은 동상의 복귀에 앞서 지난 21일 ‘짝퉁 광화문 충무공 이순신 동상 복귀 보류 결의안’을 냈다. 이 결의안은 서울시의회가 예산공방으로 공전하면서 처리되지 못했지만 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민주당의 압도적인 지지를 받았다. 문 의원 쪽은 “동상 보수를 두고 오세훈 시장이 여론 수렴을 충분히 거치지 않았다”며 “지속적으로 계속 문제제기를 하겠다”고 밝혔다.

 혜문 스님도 지난 1979년 서울시가 철거를 결정한 동상이라며 행정심판을 청구하는 등 법적인 절차를 밟고 있다. 그는 지난 11월 서울시에 ‘1979년 광화문 이순신 장군 동상 철거 결정 문서’에 대한 정보공개를 청구했으나 “보존하고 있는 문서가 없다”는 대답을 들었다. 이에 혜문 스님은 “문공부 문서 등을 참조하면 분명히 관련 문서가 있음에도 서울시가 발뺌하고 있다”며 행정심판을 청구했다.

# “짝퉁 이순신 동상은 대한민국의 현실 보여주는 상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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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문 스님은 광화문에 다시 돌아온 이순신 동상을 두고 “우리나라의 현실을 보여주는 상징”이라고 말했다. “이순신 장군은 우리나라의 가장 큰 위인이고, 광화문광장은 우리나라의 대표 동상이 들어설 터라고 할 수 있다. 그 자리에 일본도에 중국 갑옷 입은 장군의 동상이 서 있는데도 우리가 그것을 바로잡지 못한다면 대체 무엇을 바꿀 수 있을지 개탄스럽다.”

 올해는 구국의 영웅 이순신 장군이 태어난 지 465년이 되는 해다. 광화문에 장군의 동상이 들어선지 42년 된 해이기도 하다. 465년과 42년의 역사가 광화문의 이순신 장군 동상을 둘러싸고 맞닥뜨려 있다. 두 역사의 무게는 후손에게 현명한 답이 무엇인지 묻고 있다. 권오성 기자 sage5th@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