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아프리카에 살던 타미카(25·가명)는 2006년, 스물한 살의 나이에 몰래 집을 나섰다. 그러나 그의 탈출은 고난의 시작일 뿐이었다.

그의 나라는 공식적으로 ‘여성할례’를 금지하고 있지만, 일부 지역에선 여전히 몹쓸 전통이 남아 있었다. 부모 없이 함께 살던 할머니가 성기의 일부가 잘려나갈 손녀를 피신시켰다. 할버니는 세 달 뒤 친척들한테 붙잡히기 직전 손녀를 외국으로 탈출시켰다. 그렇게 타미카는 말도 통하지 않는 낯선 나라, 대한민국에 첫발을 내디뎠다.

타미카의 한국 생활도 평탄하지 못했다. 난민 신청을 했지만, 우리 정부는 이를 거절하고 대신 ‘인도적 지위’를 부여했다. 그는 전남의 어느 시골 마을에 정착해 이따금 미용실에서 레게 머리를 따주며 생계를 이어가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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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또다시 인생의 고비가 닥쳐왔다. 한 아프리카 남자와 사귀다 예정에 없던 임신을 하게 된 것이다. 문제는 그가 부모(에이즈로 사망)한테서 수직감염된 에이즈 환자라는 사실이었다. 타미카는 1주일에 35만원씩 드는 에이즈 약을 한국에 온 뒤 한 번도 복용하지 못했다.

미혼모 처지였으나 아이한테 에이즈를 물려줄 순 없었다. 가능성을 줄이기 위해선 자연분만이 아니라 감염내과가 있는 병원에서 제왕절개로 아이를 낳아야 했다. ‘난민인권센터’의 도움으로 국립의료원에서 아이를 낳을 수 있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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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2월24일, 타미카는 혼자 서울로 올라왔다. 수술 준비를 하던 중 진통 30분 만에 2.3㎏의 남자아이가 자연분만으로 태어났다. ‘순산’이지만 타미카 모자한테는 결코 기쁜 일이 아니었다. 아이가 에이즈에 걸릴 가능성이 높아졌기 때문이다. 국립의료원 의사는 “생후 18개월까진 에이즈 감염 여부를 알 수 없다”고 했다.

아이한테 하루 4번씩 꼬박꼬박 약을 먹여야 하고, 정기검사도 받아야 한다. 하지만 이 아이는 무국적자다. 우리 정부는 이 아이를 한국 사람으로 인정하지 않고, 난민신청을 했던 처지에 대사관에 가서 출생신고를 할 수도 없다. 의료보험이 없는 무국적자 아들의 비싼 약값과 병원비를 엄마는 감당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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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미카의 사연을 전한 김성인 난민인권센터 사무국장은 “난민신청자가 많아지고 사회가 복잡해지면서, 난민문제가 복합성을 띠게 됐다”며 “난민이면서 에이즈 환자, 미혼모가 되는 등 사회 소수성이 겹치는 경우가 많다”고 지적했다.

고정 수입이 없는 타미카는 당장 먹고살아야 하고, 에이즈 감염 확률이 높은 아이의 병원비를 대야 하고, 에이즈 환자로서 모유를 대신할 분유를 사서 먹여야 한다. ‘에이즈 환자인 게 알려질지도 모른다’는 불안감도 크다. 난민인권센터는 타미카 등의 후원을 받고 있다.

(국민은행 233001-04-225116·예금주: 난민인권센터)

김민경 기자 salmat@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