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인을 사랑하고 사소한 삶의 방식을 바꾸는 것만으로도 거대한 폭력에 맞설 수 있습니다.”

미국의 평화운동가 브루스 개그넌(57·사진)은 지난 16일 서울 중구 장충동 분도빌딩 교육관에서 열린 강연회에서 ‘비폭력의 길’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그는 전세계 평화단체들이 열고 있는 ‘평화와 비폭력을 위한 세계행진’의 한국 행사를 위해 지난 7일 방한했다. ‘우주 군사화’의 심각성과 비폭력 운동의 필요성을 알리고자 오는 25일까지 전국을 돌며 강연회도 이어갈 예정이다. 이날 강연도 ‘즉문즉설-우리 시대, 비폭력의 길을 묻다’이라는 이름으로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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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전 군인 출신 평화운동가원자력 이용한 ‘카시니호’ 제동“미사일 방어체제는 미 지배정책”

개그넌은 군인 시절 평화운동가가 되기로 결심했다는 독특한 이력을 갖고 있다. 아버지가 공군에 근무했고 미국 공화당을 지지했으며, 베트남전 당시 자원 입대하기도 했다. 그는 미국 캘리포니아 공군기지에 근무하면서, 전투병들을 태우고 베트남을 향해 떠난 비행기가 ‘주검 꾸러미’를 싣고 돌아오는 모습을 지켜봤다. 기지 바깥에서는 반전시위가 계속 벌어졌다. 덕분에 기지 안에서도 반전시위에 대한 토론이 벌어졌다.

“나는 군사기지 안에서 성장했기에 군사기지 안이 내가 아는 유일한 세상이었다. 하지만 군대 바깥의 시위를 접하고 꾸준한 토론을 거치면서 평화운동가로 바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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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운동에 뛰어든 그는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갖지 않는 우주 군사화의 심각성을 깨닫고, 1992년 ‘우주무기와 핵을 반대하는 글로벌 네트워크’를 만들었다. 이 단체는 1997년 미 항공우주국(나사)과 유럽우주기구가 토성과 그의 위성 타이탄을 탐사하고 온다는 ‘카시니 탐사계획’을 추진할 당시, 카시니호에 플루토늄이 사용되고 있다는 사실을 밝혀내 이를 경고하고 나섰다. 이에 미국 정부는 500마일 안쪽으로 지구궤도를 돌기로 있던 초기 계획을 수정해 500마일 밖 궤도로 수정했다. 플루토늄도 추진 연료로 사용되지 않았다.

그의 방한은 올해 들어 벌써 세 번째다. 지난 4월, 8월 방문했을 때는 비무장지대 말고도 경기 평택시 미군기지와 ‘용산 참사’ 현장 등을 방문했다. 한미 공동 군사 훈련에 반대하는 기자회견에 참석하기도 했다. “한국 정부는 제주 해군기지나 이지스 구축함, 미사일 방어체제 정책이 북한으로부터 남한을 보호하는 것이라 포장하고 있지만 그것은 환상이다. 미국의 전방위 세계 지배 프로그램의 일부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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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모든 국가들이 ‘우주의 평화적 이용’을 내세우지만 군사적 목적을 숨기고 있다고 경고했다. “군사지출을 확대할수록 교육이나 환경에 쓸 돈이 줄어듭니다. 이런 삶의 방식으로는 더는 생존할 수 없다. 우리는 미래 세대가 더 나은 삶을 사는 방법이 무엇인지 생각해야 합니다.”

글·사진 이경미 기자 kmlee@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