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에는 보이는 자본과 보이지 않은 자본이 있다.
보이는 자본은 경제적 형태의 자본인 산업자본, 상업자본, 그리고 금융자본이다. 그럼 보이지 않은 자본도 있는 것인가? 우호적 인간관계, 제도에 대한 신뢰, 준법의식 등은 경제의 각 요소별 생산성을 크게 높여 주는 역할을 하고 있는데 이와 같은 무형의 자산을 사회자본(Social Capital)이라 한다.
사회자본에 관한 연구는 1980년대 중후반 서구에서 시작되었고, 1990년대 들어오면서 사회학의 가장 중요한 연구과제로 자리 잡게 되었다. 프랑스의 후기 마르크스주의자로 알려진 부르디외(Pierre Bourdieu)는 사회자본이란 개념을 자본주의 사회의 계급 불평등이 지속되는 이유를 설명하기 위하여 도입했다. 즉 부르주아 계급은 경제자본의 축적만이 아니라 경제자본으로 언제든지 전환될 수 있지만 구체적 모습은 명확히 들어내지 않는 문화자본이나 사회자본과 같은 은폐된 형태의 자본을 축적하여 불평등을 재생산한다고 보았다.
미국의 사회학자 콜먼(James Samuel Coleman)은 사회자본은 일정한 사회구조의 측면과 사회적 구조에 속한 개인들이 일정한 행동양식을 일어키는 요소라고 정의했다. 퍼트남(Robert Putman)은 협동적 행위를 촉진시킴으로써 사회의 효율성을 제고시키는 신뢰, 규범, 네트워크를 사회자본이라고 했다. 한편 후쿠야마(Francis Fukuyama)는 사회자본은 그룹과 조직에서 공통목적을 위해 함께 일하도록 하는 사람들의 능력이며, 사람들 사이의 협력을 가능케 하는 한 집단의 회원들 사이에 공유된 일단의 비공식적인 가치 또는 규범 내지는 신뢰의 존재로 정의하고 있다. 이 처럼 사회자본의 정의는 다양하다.
이상의 이론들을 종합하면 사회자본의 핵심은 사회에 존재하는 상호간의 신뢰, 공통적인 비전과 시스템에 관한 믿음, 준법정신, 상호간 커뮤니케이션과 네트워크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이와 같은 요소들은 사회구성원간의 협력을 촉진함으로써 생산성을 높여주는 자산이라는 것이다. 요약하면 개인과 사회를 연결해 주는 신뢰하는 문화가 모든 사회자본의 원천이 된다고 말할 수 있다.
우리의 신뢰수준은 어떠한가?
세계가치관조사(World Value Survey)에 따르면 한국인은 대체로 10명 중 3명만을 믿을 수 있다는 대답을 했다고 한다. 이 수치는 신뢰의 비율이 가장 높은 스웨덴(6.8명)의 절반에도 못 미치고, 중국(5.2명), 베트남(5.2명)보다도 낮다. 한국은 정부와 기업, 종교단체 등에 대한 신뢰도가 매우 낮으며 특히 국회를 신뢰한다는 답변은 71개 조사 대상국 중 최하위를 기록하고 있다.
삼성경제연구소 이동원 수석연구원은 “사회적 자본 확충을 위한 정책과제”란 보고서에서 OECD 29개 회원국 중 우리나라는 22위라고 분석하고 가장 뒤떨어진 분야는 24위에 머무른 신뢰지수로 10점 만점에 5.21점(OECD 평균 6.18점)이라 했다. 탈세와 뇌물수수 등에 대한 시민의식, 부패, 법질서 준수 등을 반영하는 시회규범지수는 5.19점, 소득 불균형을 나타내는 시회구조지수는 5.77점으로 나타났다. 이 보고서는 정부에 대한 신뢰가 부족해 정부정책에 반대하는 사례가 잦고 법을 지키면 손해라는 인식이 팽배할 정도로 법질서 준수의식도 낮다는 것이다. 혈연, 지연 학연 중심의 폐쇄적 네트워크와 배타적 집단주의도 문제라고 지적했다. 한마디로 사회자본의 빈곤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세계은행은 무형의 자산으로 불리는 사회자본이 국부를 창출하는데 기여하는 부분은 전체 국부의 80%에 이르는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우호적 인간관계, 제도에 대한 믿음, 준법의식 등의 사회자본은 보이지 않는 손이 돼 경제의 각 요소별 생산성을 크게 높여주는 역할을 한다는 평가다. 세계경제에서 자본은 두뇌를 쫓아 이동하고 두뇌는 사회자본이 풍부한 국가를 찾아 모여드는 추세이므로 사회자본의 형성여부는 개인이나 사회 나아가 국가 전체의 이익을 증진시키는 문제로 이어진다.
우리나라는 소득격차가 클수록 서로에게 배타적 성향이 강하고 혈연, 지연, 학연에서 배경이 유사한 사람끼리 뭉치는 “끼리끼리”문화가 위험수준에 이르고 있다. 때문에 분절된 사회구성원의 상호관계를 봉합하고, 압축성장의 신화 속에서 간과해 왔던 의식의 선진화를 이루기 위해 사회자본 투자에 우선적으로 관심을 기울일 필요가 있다.
사회자본에 대한 투자에는 돈이 들지 않는다. 서로 신뢰하는 사회풍토를 조성하기 위해서는 우선 자기 자신이 상대를 신뢰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경우에 따라 불이익으로 돌아올 경우도 있겠지만 신뢰에서 오는 반대급부는 기대 이상일 수 있다. 비근한 예로 식사를 하고 문을 나설 때 종업원들에게 만족한 표정으로 칭찬하는 말 한마디는 다시 찾았을 때 더 만족한 표정을 지울 수 있게 해 줄 것이다.
우리의 연고주의는 나라발전에 걸림돌이 된다고 하지만 지방의 연고주의가 그 지방의 지역자본이라 한다면 타 지역과의 연계를 통하여 사회자본을 형성할 수도 있고, 한 학교의 학연은 타 학교와의 네트워크를 형성하여 보다 큰 자본을 만들 수 있다.
법질서의 확립은 사회자본의 핵심요소다. 국민 개개인이 법을 준수하는 행위자체는 스스로 사회자본에 투자하는 것이 된다. 국가는 공정한 법집행을 통해 국민의 사회제도에 대한 신뢰를 얻어야 한다. 노동조합, NGO를 비롯한 사회운동 주체들은 각종 정책토론과 발전 프로젝트에 참여하여 체제에 대한 위협적이 아닌 사회자본 세력으로 육성되어야 한다.
오늘의 선진국은 단순히 국민소득으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며, 소득은 단지 필요조건일 뿐이며, 사화자본이 풍부해서 누구라도 공정하고 품격있는 삶을 누릴 수 있어야 가능하다. 서로 믿고 의지하는 유대감이 있어야 삶의 질도 높아지고 사회안정도 가능하다. 그래야만 경제성장의 비용도 줄어들고 사회적 통합도 가능하며 선진화도 앞당겨 질 뿐 아니라 국민의 품위와 나라의 격(格)을 높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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