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김연수(오른쪽)씨가 31일 저녁 서울시청 앞 광장에서 열린 촛불문화제에 참가해 시민들과 함께 촛불을 들고 있다.  김정효 기자 <A href="mailto:hyopd@hani.co.kr">hyopd@hani.co.kr</A>
소설가 김연수(오른쪽)씨가 31일 저녁 서울시청 앞 광장에서 열린 촛불문화제에 참가해 시민들과 함께 촛불을 들고 있다. 김정효 기자 <A href="mailto:hyopd@hani.co.kr">hyopd@hani.co.kr</A>

그 햇살은 2008년 5월의 마지막 햇살이었고, 참으로 따뜻했다. 서울시청 앞 잔디밭에 앉은 내 오른쪽에는 여고생 두 명이 앉아 있었다. 왼쪽에는 유모차에 앉은 아이와 앞쪽 무대를 번갈아가며 보는 젊은 엄마가 피켓을 흔들었다. “이명박은 물러나라.” 다른 사람들은 다 박자에 맞게 구호를 외치는데, 뒤에서 엉성한 발음으로 한 박자 늦게 “이멍바근 무러나라”고 말하는 소리가 들렸다. 돌아보니, 세 살 정도밖에 안되는 꼬마였다. 어쩌면 나는 5월31일은 많은 가족들과 함께 정말 한가롭고도 따뜻했던 오월의 마지막 햇살을 즐기던 날로 기억했을 지도 모르겠다. 그러니까 그 다음날 새벽, 비폭력을 외치던 시민들을 향해 경찰이 무차별적으로 물대포를 쏘고 폭력적으로 진압하지 않았다면 말이다.

나는 아름다운 장면에 대해서만 말하고 싶다. 불과 몇 미터 거리에서 사람을 실신시킬 정도의 엄청난 수압으로 뿜어대던 그 치졸하고도 더럽던 물대포의 물줄기 같은 것은, 단지 도로를 점거했을 뿐 그 어떤 폭력 행위도 저지르지 않았던 시민들을 향해 협박을 서슴지 않았던 그 여경의 구역질나는 목소리 따위는, 결국에는 자신의 친구이며 가족과 같은 사람들이며, 어쩌면 훗날 자신이 사랑하게 될 지도 모르는 여성들이 마치 먹잇감이라도 되는 듯 으르렁대던 전경들의 그 구호 소리 따위는 말하지 않으련다.

하다못해 청와대 수석이라도 나와서 자신들의 이야기를 들어주지 않을까는 소박한 기대를 지닌 시민들이 무서워 물대포와 전경들과 그 구역질나는 여경의 협박 뒤에 숨어 있던 비겁한 자들 따위는, 경찰은 시민들을 지켜주기 위한 것이니 자기들이 먼저 폭력을 사용하지 않으면 그들이 자신들을 폭력적으로 진압할 리가 없으리라고 믿고 쉴 새 없이 ‘비폭력’을 외치는 시민들을 폭력적으로 진압하라고 명령을 내린 자들 따위는, 자신이 한국에 없는 동안 곧 해임시킬 장관에게 고시를 발표시켜 책임을 전가하고는 돌아와 제일 먼저 소고기 수입 재협상을 요구하며 끝까지 비폭력을 외쳤던 시민들에게 경찰특공대 투입으로 소통을 시작한 자 따위에 대해서는 정말이지 말하고 싶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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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것들 따위에 대해서 말하기에는 내가 본 젊은 친구들의 모습이 너무나 아름다웠기 때문이다. 밤이었으나, 가로등도 모두 꺼버린 어두움 밤이었으나, 수많은 사람들이 겁에 질린 채 경찰에게 폭력적으로 진압당하거나 그 모습을 지켜본, 그토록 어둡고 끔찍한 밤이었으나, 그럼에도 그 밤이 아름답고 행복한 밤일 수 있었던 건 전적으로 그 친구들 덕분이었다. 투구와 방패와 물대포로 무장한 진압경찰에 맞서 끝까지 인내심을 발휘하며 비폭력을 유지한 그 친구들이 있었기에 내게 그 밤은 한없이 밝고 환했던 밤으로 기억되리라.

나는 국민으로서 당연한 권리를 지켜내기 위해서 온몸으로 물줄기를 맞고 선 사람들을 보았다. 또 나는 그들을 향해 쏟아지는 물대포를 막기 위해 전경버스 위로 올라가 자신의 몸으로 물줄기를 가로막는 사람들을 보았다. 또 나는 앞쪽에서 물대포에 맞아 사람들이 쓰러지는 모습에도 분노를 애써 삼키며 “비폭력! 비폭력!”이라고, 또 “쏘지 마! 쏘지 마!”라고 애원하고 간청하고 부탁하던 사람들을 보았다. 그들은 그런 모습으로 내게 말했다. 왜 저들은 자신의 친구이며 가족과 같은 사람들이며, 어쩌면 훗날 자신이 사랑하게 될 지도 모르는 여성들에게 저토록 잔인한 폭력을 행사하느냐고. 지금이 2008년이고, 여기가 대한민국 서울이 맞느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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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31일 오후 7시 가까울 무렵, 여러 가족들이 옹기종기 모여 앉은 서울시청 앞 잔디밭에서 내가 느꼈던 그 따뜻했던 햇살은, “아, 흡사 이건 소풍 온 것과 같구나”며 생각하게 만들었던 그 햇살은, 어쩌면 정말 마지막 햇살이었는지도 모르겠다. 2008년 5월의 마지막 햇살이 아니라, 우리가 정상적인 나라의 국민들처럼 평화롭고도 한가롭게 자신이 원하는 바를 정부에 말할 수 있었던 시절의 마지막 햇살 말이다. 그냥 산책을 나가듯이 아이를 태운 유모차를 끌고 청계천이나 시청 앞으로 가서 서로 깔깔대고 웃으며 정부를 향해 “그건 국민들이 원하는 바가 아니니 다시 생각해봐달라”고 말할 수 있었던 시절의 마지막 햇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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