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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사회일반

기초 부실한 ‘문화 상품화’가 재앙 불렀다

등록 :2008-02-11 21:15수정 :2008-02-12 17:13

까만 잿더미로 무너져 내린 숭례문 앞에 하얀 국화꽃들이 애도하듯 누워 있다. 국보 제1호의 소실로 문화적 자긍심에 상처받고 낯익은 서울 풍경을 잃어버린 시민들은 11일 화재 현장을 찾아 헛헛한 마음을 한 송이씩 놓고 갔다. 박종식 기자 <A href="mailto:anaki@hani.co.kr">anaki@hani.co.kr</A>
까만 잿더미로 무너져 내린 숭례문 앞에 하얀 국화꽃들이 애도하듯 누워 있다. 국보 제1호의 소실로 문화적 자긍심에 상처받고 낯익은 서울 풍경을 잃어버린 시민들은 11일 화재 현장을 찾아 헛헛한 마음을 한 송이씩 놓고 갔다.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시민곁으로’ 홍보·관광 자원화 치우쳐 보존 소홀
숭례문 방재시스템 구축 순위 목조문화재 중 48위
수문장 교대식 수십억 쓰면서 스프링클러도 안갖춰
최근 몇년 사이 문화재에 대한 정부와 지방자치단체들의 관심은 부쩍 자란 듯했다. 고궁 등 옛 건축물이 잇따라 시민들에게 개방되고, ‘문화도시 만들기’ ‘역사본향 내세우기’ 바람이 지자체마다 불었다. 하지만 불타버린 숭례문은 이런 흐름이 문화재의 가치를 인식한 결과라기보다 ‘문화 상품화’의 경박함이었다는 점을 웅변하고 있다.

지난 2004년 7월 창덕궁 비원 관람이 허용된 것을 비롯해 몇년 사이 경회루, 숙정문, 신무문 등이 잇따라 시민들에게 돌아왔다. 유홍준 문화재청장은 2004년 9월 취임 이래 60~70차례나 기자회견을 하며 문화재 홍보에 힘을 썼다. 숭례문도 2005년 서울시 주도로 주변에 광장을 조성하고 그 앞에서 수문장 교대식을 연출하는 등 일반인에게 좀더 가까이 다가왔다.

그러나 급속한 문화재 개방과 관광자원화 과정에서 정작 기본 중의 기본이라 할 문화재 보호·유지 정책은 뒷전으로 밀렸다. 2005년 강원 양양군 낙산사 대화재를 겪고도 문화재 보존이나 방재 대책은 크게 나아지지 않았다. 문화재청은 지난 3년 동안 해인사, 봉정사, 무위사, 낙산사 등 네 곳에 방재 시스템을 갖추는 데 그쳤다. 숭례문은 방재 시스템 우선 구축대상인 중요 목조문화재 124곳에 포함돼 있으나 48번째 순위였다.

문화재 관리는 문화재청이 총괄하지만, 궁궐이나 왕릉 등 문화재청이 직접 관할하는 일부만 빼고는 지자체에 모든 걸 맡기고 있는 실정이다. 광역자치단체는 다시 기초자치단체로 관리를 넘기거나 민간 업체에 위탁하고 있다. 관리 책임의 분산은 관리 소홀로 이어졌다. 숭례문 관리를 맡고 있는 서울 중구청의 한 관계자는 “문화재청이 지자체에 관리 매뉴얼을 배부했지만 현지 실정에 맞지 않는 부분도 있어 잘 따르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문화재 관할이 시·도로 넘어가면 문화재 정책의 ‘관광자원화 위주’ 경향도 더욱 심해진다. 지난 2006년 5월 방화로 소실된 수원 화성 서장대의 무인경비 시스템 도입 공사가 이제야 진행되고 있다. 경기도와 수원시가 화성을 관광자원으로 홍보하는 데 엄청난 예산을 들인 것과 대조된다.

숭례문의 경우도 수문장 교대식 행사에 연간 17억원의 예산을 쓰는 반면, 설치된 소방방재 도구는 소화기 8대와 상수도 소화전이 전부였다. 숭례문을 관리하는 건 기초자치단체인 서울 중구청의 녹지공원과 직원 세 명이 전부였고, 그나마 저녁 8시~오전 10시 사이 야간 경비는 민간업체의 무인경비에 의존해 왔다. 문화재청과 중구청 어느 기관도 숭례문의 보험조차 들지 않은 상태였다.

이런 가운데 ‘1문화재 1지킴이’ 협약식은 어색한 뒷맛마저 남긴다. 문화재청은 지난해 에스에이치공사, 한글과컴퓨터 등 기업·기관 25곳과 문화재 자매결연을 맺었다. 숭례문은 지난해 5월 케이티텔레캅과 협약을 맺었는데, 이는 2005년부터 월 30만원을 받고 야간경비를 해주던 에스원의 업무를 케이티텔레캅이 이어받은 것이다. 차이는 공짜라는 점이다. 케이티텔레캅은 흥인지문, 전주풍남문, 통영충렬사, 숭례문과 고궁박물관 등과 지킴이 협약을 해 나름의 브랜드 홍보는 했지만, 정작 국보 1호를 지켜내지 못했다.

“문화재를 시민 곁으로”가 나쁜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문화재청과 시·도는 너무 바쁘게 달리던 사이에 기본을 잊었다. 임종업 선임기자, 이정훈 기자 blitz@hani.co.kr


유홍준 문화재청장이 11일 밤 불에 타버린 숭례문을 둘러본 뒤 현장을 떠나고 있다. 김태형 기자 xogud555@hani.co.kr
유홍준 문화재청장이 11일 밤 불에 타버린 숭례문을 둘러본 뒤 현장을 떠나고 있다. 김태형 기자 xogud555@hani.co.kr

숭례문 잔해서 찾은 라이터 2개, 사다리 2개 정밀감식
문화재청 “복원 3년걸릴것…200억 필요”
경찰, 방화용의자 70살 최아무개씨 조사중

숭례문 화재 사건을 수사 중인 경찰은 11일 전소된 숭례문 잔해 더미에서 방화 용의자가 사용한 것으로 보이는 사다리 두 개와 일회용 라이터 두 개를 발견했다. 경찰은 또 방화 용의자로 최아무개(70)씨를 조사 중이다.

화재 원인을 수사 중인 서울 남대문경찰서는 11일 “화재 현장에서 사다리 네 개를 발견했는데, 두 개는 소방서에서 사용한 것이고 나머지는 방화 용의자가 사용했을 가능성이 있어 국립과학수사연구소에 감식을 의뢰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또 서울 중부소방서 김만준 구조대 부대장(소방장)은 이날 <한겨레>와의 통화에서 “10일 밤 9시께 현장에 출동해 숭례문 내부 나무계단을 이용해 2층으로 올라갔는데, 3m 가량 떨어진 큰 나무기둥 앞에서 일회용 라이터 두 개를 발견했다”며 “라이터 두 개가 서로 30~40㎝ 가량 떨어져 있었는데, 워낙 경황이 없어 수거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김 부대장이 라이터를 발견한 위치는 소방당국이 추정하는 발화지점에서 2m 가량 떨어진 곳이다.

한편, 서울경찰청은 이날 2006년 4월 창경궁 문정전에 불을 질렀던 최아무개(70)씨를 붙잡아 방화 혐의에 대해 조사를 벌였다. 경찰 관계자는 “최씨로부터 자신이 불을 질렀다는 진술을 확보했지만, 이 진술은 완벽히 신뢰할 정도는 아니어서 아직 범인으로 단정할 단계는 아니다”고 말했다.

경찰은 이날 오전부터 소방당국, 문화재청, 전기안전공사 등과 함께 공동 현장 감식에 나서, 사다리와 라이터를 수습했다. 김영수 남대문경찰서장은 “라이터와 사다리가 방화에 이용됐는지, 용의자를 특정할 단서가 남아 있는지 등을 확인하기 위해 국과수에 정밀감식을 의뢰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검찰도 서울중앙지검에 문화재 전담 검사 등이 참여하는 특별수사반을 편성해 화재 원인 규명에 나섰다.

한편, 문화재청은 이날 화재 현장에서 긴급 문화재위원회 회의를 열고 “복원 작업은 3년 가량 걸릴 예정이며, 추정 소요예산은 200억원 정도”라고 밝혔다. 구체적인 복원 작업은 2006년 숭례문을 정밀 실측한 도면 182장을 기본으로 하고, 1960년대 발간한 수리보고서를 참고로 할 예정이다. 이순혁 구본준 기자 hyu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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