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비자금 의혹 사건을 수사 중인 특별수사·감찰본부(본부장 박한철)가 27일 노무현 대통령이 특검법을 수용할 뜻을 밝힘에 따라 특검법이 발효되면 사실상 수사를 중단할 뜻을 내비쳤다.
특본 핵심 관계자는 이날 밤 “특별검사에게 삼성 수사를 맡긴다는 법이 발효됐는데 우리가 수사를 계속할 수는 없지 않나 하는 고민이 있다”며 “압수수색과 소환조사 등도 수사 결과를 책임지는 특검이 하는 게 맞지 않을까 고민 중”이라고 말했다. 특본은 이날 오후 회의를 열고 수사 중단 문제 등을 논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노무현 대통령은 이날 삼성 비자금 특별검사 도입법안을 원안대로 수용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삼성 특검법’은 오는 12월4일 열리는 국무회의에서 심의·공표되고, 법안 발효 뒤 20일 동안의 준비기간을 거쳐 수사가 시작될 전망이다.
노 대통령은 이날 오전 11시30분 청와대 춘추관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이 특검법이 법리상으로나 정치적으로나 굉장히 많은 문제를 가지고 있는 법이라고 생각한다”며 “그럼에도 재의 요구를 하지 않기로 한 것은 이미 특검법이 국회에서 통과할 때 의결정족수인 찬성표 수가 압도적으로 많은 상황이 재의 요구를 한다고 해서 달라질 가능성이 매우 낮다고 판단됐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노 대통령은 “국회가 이런 법을 만들어 보내는 것은 국회의원들의 횡포이자 권한 남용”이라며 “특검법이 국회가 필요에 따라 언제든 쓸 수 있는 정치적 남용의 도구가 돼서는 안 된다”고 비판했다.
특본은 이에 앞서 김용철 변호사(49·전 삼성 구조조정본부 법무팀장)가 삼성에서 자신의 이름을 빌려 비자금 계좌로 이용했다고 지목한 차명계좌 네 가지에 대해 전날 밤 압수수색영장을 받아 이날부터 계좌추적에 나섰다고 밝혔다. 검찰은 또 이날 김 변호사를 참고인 신분으로 불러 조사했다.
검찰은 김 변호사 이름으로 우리은행 삼성센터 지점에 개설된 차명계좌 세 가지와 굿모닝신한증권 도곡동 지점에 개설된 차명계좌 한 가지에 대해 계좌추적에 나섰다. 김수남 특본 차장은 “우선 고발장에 나온 네 가지 계좌부터 들여다보고 다른 삼성 임원들의 계좌에 대한 추적을 확대할지를 검토해 보겠다”고 말했다.
검찰은 또 김 변호사를 상대로 삼성의 차명계좌 보유와 경영권 승계 과정, 로비 의혹 등 김 변호사가 제기한 의혹에 대해 개략적으로 조사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 변호사는 이날 최병모 변호사 등 변호인단과 함께 검찰에 출석해 그동안 자신이 제기한 주장에 대한 근거 자료를 제출했다. 그러나 이른바 ‘떡값 검사’ 명단은 내지 않았다고 검찰은 전했다. 검찰은 이날 밤 김 변호사를 돌려보내려 했으나 김 변호사가 더 조사해 달라고 요청해 28일 새벽까지 조사를 벌였다.
한편, 노 대통령은 이른바 ‘당선 축하금’ 의혹에 대한 특검 수사에 응할 것인지를 묻는 질문에는 “아무 근거가 없는 것을 (특검) 수사의 단서로 사용하겠다는 것은 대통령 흔들기”라면서도 “그동안 대통령을 겨냥한 수사를 많이 받아왔으니 법대로 양심껏 대응하겠다”고 말했다. 노 대통령은 또 이용철 전 법무비서관의 경우처럼 청와대 비서관들에 대한 삼성의 추가 로비가 있었을 가능성에 대해선 “적어도 삼성과 인맥을 뚫어놓고 거래하며 따뜻하게 비서를 한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고제규 신승근 기자 unju@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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