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가에서 비자금으로 거액의 외국 현대 미술품들을 사들였다는 김용철 변호사의 폭로와 당사자들의 해명·반박 내용이 엇갈리면서 진실 공방이 뜨겁다.

김 변호사는 26일 삼성가에서 사들인 것이라면서 2002~2003년 외국 미술품 구입목록과 결제금 지급 내역 등을 공개했다. 그러나 이건희 삼성 회장의 부인인 홍라희 삼성미술관 리움관장, 이 회장의 여동생 이명희 신세계 회장, 이들 미술품을 중개한 것으로 알려진 서미갤러리의 홍송원 대표는 한결같이 비자금 사용은 물론, 거래 사실 자체를 대부분 부인하고 나섰다. 이에 김 변호사는 27일 라디오 방송에 나와 “삼성과 화랑 쪽이 입을 맞춘 것 같다”며 재반박해 논란은 더욱 치열해질 조짐이다.

초점은 김 변호사가 공개한 구입목록 첫째장에 기록된 주요 명품들을 삼성가 쪽이 소장했는지로 모아진다. 특히 구입품 가운데 가장 비싼 800만달러에 산 것으로 기록된 프랭크 스텔라의 대작 <베틀레헴 병원>과 715만달러에 사들인 팝아트 작가 리히텐슈타인의 <행복한 눈물>의 소장 여부가 관심사다. 김 변호사는 이재용 삼성 전무로부터 부친인 이 회장 집에 <행복한 눈물>이 걸려 있다는 말을 들었다고 회견장에서 밝혔다. 또 <한겨레> 기자에게는 “(<베틀레헴 …>의 특징과 비슷한) 화면이 온통 시커먼 색면으로 덮인 미니멀 회화를 약 100억원에 사들였다는 소식을 듣고 삼성 구조본 안에서 매입가의 적절성 논란이 일었다”는 증언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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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대해 삼성 쪽은 26일 <행복한 눈물>만 개인돈으로 사들여 소장 중이란 해명을 내놓았다가 일부 번복했다. “집에 이틀 동안 걸었다가 마음에 들지 않아 서미갤러리에 돌려줬다”고 말을 바꾼 것이다. 화랑주 홍씨도 27일 오전 일부 언론에 “<행복한 눈물>을 보관 중이며, 공개 용의도 있다”고 밝혔으나 이후 연락이 끊겼다. <행복한 눈물>은 구입품 목록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2002년 11월 크리스티 경매 출품작으로, 홍 대표는 지난 23일 <한겨레 21>과의 인터뷰에서 이 작품을 ‘다룬 바 없다’ ‘모른다’고 밝혔다. 이런 맥락에서 작품을 화랑에 돌려주었다는 삼성의 번복된 해명은 홍 대표의 애초 인터뷰 내용과 어긋난다.

또 삼성 쪽 해명이 번복된 뒤 갤러리 쪽이 <행복한 눈물>의 소장 사실을 외부에 알렸다는 점 등도 궁금증을 낳는다. 비자금 폭로 뒤 삼성과 서미 사이에 거래 작품을 놓고 ‘모종의 교감과 조율’이 있지 않았겠느냐는 의문이 제기될 수 있는 대목이다. 미술시장 딜러인 ㅂ씨도 “컬렉터의 강력한 주문 없이 일개 화랑이 국제시장에서 100억대의 고가 작품을 자의로 사서 구매를 권유하는 것은 상식적으로 불가능하다”고 말해 이를 뒷받침했다. 현재 잠적 중인 화랑주 홍씨는 27일 밤 <한겨레 21>과의 통화에서 “일방적 보도에 아무 생각이 없다. 가족 회의에서 방침을 정할 것”이라며 급히 전화를 끊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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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 쪽의 해명대로 2000년대 이전까지 삼성가의 미술품 컬렉션은 공사 구분이 엄격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개인 소장용, 삼성미술관, 문화재단의 컬렉션용 구입품이 구분되어 구입비 집행절차, 컬렉션 과정 등이 비교적 투명하게 관리되었다는 게 당시 근무했던 전직 직원들의 말이다. 그러나 일부 화랑가 관계자들은 2002년께부터 삼성가 사람들이 모종의 자금으로 개인컬렉션을 수집해 재단 컬렉션과 뒤섞어 관리하고 있다는 소문이 흘러나왔다고 증언하고 있다. 이들 소문이 떠돌았던 시기는 김 변호사가 주장하는, 비자금을 통한 미술품 구입 시점과 비슷하게 맞물려 있다.

이와 관련해 김 변호사는 27일 아침 방송된 문화방송 라디오 <손석희의 시선집중> 인터뷰에서 삼성 쪽 주장을 재반박하면서 “금융 감독원이 서미갤러리의 금융 거래 이상에 대해 검찰에 통보하자 이재용씨는 (모친) 홍라희씨가 홍송원씨로부터 그림을 많이 산 데 대해 걱정하면서 나와 의논했었다”고 증언했다. 그는 “서울지검 외사부에서 사건을 조사해 홍송원씨에게 가벼운 처벌을 내린 정도로 안다”며 “변호사 비용, 벌금 등까지 삼성 쪽에서 대줬다”고 주장했다.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