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간도>의 포스터 포스터 속의 이 화면이 우리의 현실을 의미한다고 생각합니다. ⓒ 태창엔터테인먼트
<무간도>의 포스터 포스터 속의 이 화면이 우리의 현실을 의미한다고 생각합니다. ⓒ 태창엔터테인먼트

'이건희'와 <20세기 소년>의 '친구'

박인하 청강문화대 교수는, '삼성 엑스파일' 이슈가 달아오르던 2005년 8월 24일, <한겨레>에 칼럼 <세계정복의 꿈>에서 한편의 만화를 언급하며 기막힌 비교를 한 적이 있습니다. 그 만화는 다름아닌 우라사와 나오키의 <20세기 소년>입니다.

'삼성'이라는 키워드는 2007년 11월에도 파열음을 일으키고 있습니다. "은행 소유를 추진하려 했다"는 의혹과, "뇌물 공여로써 공직 사회를 관리하려 했다"는 의혹, 양심고백으로써 이 의혹들의 중심에 서 있는 김용철 변호사는, '이건희'라는 '친구'에 대항하는 '켄지'가 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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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 소년>은, 켄지 일당이 어린 시절에 장난처럼 꾸며대던 '지구 멸망 시나리오'를, '친구'를 자칭하는 정체불명의 '주변인'이 실행하면서 켄지 일당이 그것을 막아내려 한다는 이야기입니다. '친구'를 중심으로 한 모종의 집단은 세균병기를 이용해 전세계를 공격하면서 세계의 종말, 아니 '지구 정복'을 시도합니다. 미디어도, '친구'의 꼭두각시 정당 조직 '우민당'이 주도하는 정치도, 모조리 '친구'의 손아귀로 들어갑니다.

하필 '세균병기 살포'라는 설정을 그렸다는 점에서, '친구'의 행각은 지하철에 독가스를 살포한 오옴 진리교 집단을 연상시킨다는 지적도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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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쨌든, <20세기 소년>에서의 '세균병기'와 잇따른 '삼성 의혹'의 핵심 '돈'은 일맥상통하는 바가 있습니다. 사실 '엑스파일 파문' 당시에도, 상당수의 검사들이 일명 '떡값'이라는 이름의 뇌물을 받았다는 의혹이 있었습니다. 박인하 교수는 칼럼을 통해 이 의혹을 폭로한 민주노동당 노회찬 의원을 "기타 하나 들고 북쪽 끝에서 나타나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인 켄지와 닮아 보인다"고 표현했습니다.

한국의 '켄지'는 '노회찬' 뿐만 아니라 '심상정'과 '천주교 정의구현사제단' 등, 그 숫자는 늘어나게 됐습니다. 김용철 변호사는 '친구'의 비호 아래 '국민 가수'로 평가받으며 권세를 누리던 '하루 나미오'가 됐다고 할만 합니다. '하루 나미오'는 한편으로 '켄지 일당'과 연결돼 있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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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확히 표현하자면, '하루 나미오'가 '켄지 일당'임을 공개적으로 표방하며 아예 '켄지 일당'으로 가담한 것이나 다름없게 됐습니다.

과거, 유신독재 시절에도 김형욱 전 중앙정보부장이 미국 하원에서의 청문회나 회고록 출판 등을 매개로 끊임없이 박정희 전 대통령을 위협했다는 것을 감안하면, 절대권력자의 내부권력이란 '측근'을 얼마나 잘 관리하느냐에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듯합니다.

그래서 역사적으로 돌아보면 왕조국가에서도 알 수 있듯이, 절대권력자의 정치형태는 '측근 정치'가 되는 것 같습니다. 지켜야만 하는 비밀이 너무도 많기에, 그리고 그 비밀을 알고 있는 사람은 많지는 않지만 단 한 사람이라도 이탈하면 그 누수란 너무나도 치명적이기에 그런 것이겠죠.

발행 간격이 너무 길어 독자의 애를 태우곤 하는 <20세기 소년>에서, 한동안 독자들을 두근거리게 한 장면은, '켄지'가 사라진 상황에서 '켄지'로 추측되는 인물이 기타 하나만을 달랑 매고 나타나는 상황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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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 소년>에서 '기타'가 상징하는 바는, '켄지'가 이루고 싶어했지만 현실 속에서 잊어야만 했던 음악에 대한 열정, 그리고 그 음악으로써 '친구의 세상'을 해방하고자 하는 의지입니다. '천주교 정의구현사제단'의 '기타'는 다름아닌 '폭로 문건', 이 '문건'은 코앞에서 전국민적인 주목을 받으며 '친구'를 위협합니다. 형태 없이 어디든 흘러가 사람들의 귀를 기울이게 할 수 있는 '음악'처럼 말이죠.

'삼성 비자금 의혹'을 관통하는 영화 <무간도>

'천주교 정의구현사제단'이 공개한 '뇌물 수수 의혹 검사'의 일부, 그야말로 충격적이었습니다. 전략적인 선택일 수도 있습니다. 신임 검찰총장 후보자, 대검 중앙수사부장, 국가청렴위원장, 수사기관의 핵심을 이루는 인물들이었기 때문입니다.

이런 측면에서 떠오르는 영화가 한 편이 있죠. <무간도>라고. 범죄조직에 침투한 스파이 경찰과 경찰로 위장한 범죄조직 스파이가 서로를 의식하며 치밀한 대결을 펼치는 영화입니다.

이 영화에서 특히나 기억나는 장면이 있다면, 거의 끝무렵의 장면일 것입니다. '유건명(류더화)'가 경찰에 침투한 범죄조직의 스파이임을 눈치챈 '진영인(량차오웨이)'이 그동안 비밀접선장소로 활용했던 고층건물 옥상에서 '유건명'의 머리에 총구를 겨누는 장면, 그리고 경찰이 엘리베이터에서 오히려 '진영인'을 살해하고 '유건명'을 구출하는 장면일 것입니다. '경찰'은 '진영인'을 죽인 뒤에 '유건명'을 향해 이렇게 말합니다.

"겁낼 것 없어요. 우리는 '형제'니까. 녹음 테이프는 없애버렸어요. 걱정마세요. 제가 도와드릴게요."

누리꾼들이 '검찰'을 불신하면서 정치권이 '특검'을 추진하는 배경을 설명하는 대사일 수도 있습니다. 저로서는, 불의의 총알을 머리에 박힌 채 자신이 왜 죽어야 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는 눈빛만을 남긴 '진영인'의 표정이 유난히 기억에 남습니다. 그러면서, 다리가 걸터 있기에 제대로 닫히지 않는 엘리베이터 문의 차가운 마찰음, 실로 많은 것이 담긴 장면이었습니다.

<무간도> 3편 '종극무간'에 이르러서는, 한직으로 쫓겨난 '유건명'이 경찰 최고의 엘리트인 보안부 반장 '양금영(여명)'에게 흥미를 느끼면서 수상함을 느끼고 비밀리에 그를 뒷조사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양금영'의 정체도 자신과 똑같은 '스파이'였다는 것을 알고 경악을 금치 못하게 되는거죠.

이 상황을 보면서 "같은 덫에 걸린 이상 우리는 더이상 적이 아니다!"라는 <무간도> 1편의 메인카피가 유난히 떠올랐습니다. '뇌물 수수 의혹 검사'나 "검찰이 받은 돈에 0 하나는 더 붙여야 된다"는 김용철 변호사의 표현이 인상적이었던 '국세청', 김용철 변호사의 폭로가 사실로 드러난다면 저 메인카피처럼 상황에 잘 맞는 말은 없을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다시 한번 반복해봅니다.

"같은 덫에 걸린 우리는 더이상 적이 아니다!" '그들'이 <무간도>의 '진영인'이 되지 않으려면…

김용철 변호사가 '천주교 정의구현사제단'을 찾아간 것은 아주 절묘한 선택이었습니다. '천주교 정의구현사제단'도 참여연대·민변 등과 호흡을 맞추며 기막힌 폭로 시기 선택으로 국민들의 지지를 얻고 있습니다.

법과 원칙이 무너진 사회에서는, 그럴수록 법과 원칙, 양심을 찾아 움직이는 이들의 힘이 더욱 중요한 듯합니다. 제각각 절대권력과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는 고민으로 인해 괴로워했고, 어렵게 행동에 나섰던 <20세기 소년>의 '켄지'와 <무간도>의 '진영인', <무간도>의 '진영인'처럼 허무한 결말을 맞이하지 않으려면, 누구보다 엄정한 눈으로 사태를 주시하며 판단해줄 국민의 눈이 필요한 것 같습니다.

"같은 덫에 걸렸기에 더이상 적이 아니라"고 판단하며 행동할 수 있는 그들, 그들을 원래 위치로 돌려놓을 수 있는 사람들은 다름아닌 양심의 힘을 잊지 않는 국민이기 때문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무간도>의 마지막 장면에 나온 문구를 인용해봅니다. 신뢰를 잃은 공직 사회를 향한 '국민'의 경고로 봐도 무방할 것입니다.

"불경에 이르길, 무간지옥에 들어간 자는 영원히 죽지 않으며 무간지옥에서 극한의 고통을 받게 된다고 했다"

(*이 기사는 네티즌, 전문가, 기자가 참여한 <블로그> 기사로 한겨레의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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